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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열악 처우' 사고 출동 처리기사, 퇴직금 소송 나선다

[취재파일] '열악 처우' 사고 출동 처리기사, 퇴직금 소송 나선다
자동차 사고 긴급출동 서비스 기사들을 만난 건, 찌는 듯 무더운 여름이었습니다. 어느 정비소 한 켠에 마련된 골방에서 기사님들 여러 명이 휴대전화를 쉴 새 없이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언제든지 사고가 나면 15분 안에 출동해야 하고, 30분이 늦으면 고객 평가 점수가 추락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통해 들은 근무 조건은 비좁고 어두컴컴한 ‘골방’보다 훨씬 더 열악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우선 출동 기사들은 고객이 렌터카를 이용하는지, 특정 정비소에 가는지에 따라 출동 기사의 ‘실적’이 크게 달라집니다. 특히 삼성화재의 경우,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고객이 병원에 가서 검사만 받더라도 기사의 실적을 깎았습니다.

기사의 실적, 즉 임금과 연관되는 이 기준들이 고객들에게 폭 넓은 혜택을 주는 것과는 아무 상관없이, 회사의 ‘비용 절감’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에 따라 결정되고 있었습니다. 즉, 기사들은 위급한 순간에도 고객들의 안전보다 자신의 실적을 먼저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문자메시지 내용 가운데 ‘대인’은 ‘고객이 병원에 갔는지 여부’, ‘대물’은 ‘사고 접수된 차량들 중 수리는 해야 하지만 경미한 사고 중, 보험처리 안하고 개인 현금으로 수리하도록 유도한 비율’, ‘입고율’은 ‘사고차량이 삼성화재에서 지정하는 정비업체에 입고된 비율’
또 다른 문제는, 실적에 따라 등급이 나뉘고, 등급에 따라 출동 기사들이 본사에서 받는 출동지시, 일명 ‘콜’ 수에도 차이가 있다는 점입니다. 기사들은 “사고가 나면 거리가 가까운 기사에게 먼저 출동 지시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등급이 높은 기사들에게 먼저 지시가 가면서 고객들은 오히려 더 오래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고객들의 민원 앞에선 더욱 매몰찹니다. 고객들이 회사를 통해 민원을 한 건만 넣어도 등급이 급격히 깎이고, 임금이 줄어드는 겁니다. 삼성화재의 경우 사고 출동 한 건 당 2만3천원을 받는데, 민원이 들어와서 등급이 한 단계 내려갈 때 마다, 모든 출동 수당에서 4천 원 씩 깎습니다. 고객의 민원에 현금으로 무마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터뷰를 했던 기사들은 “고객이 손해 보는 것도 없었고, 단순 민원만 제기했을 뿐인데도 회사는 일정 금액의 현금을 건네고 무마시키길 요구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돈을 건넨 경험이 없는 기사들을 찾기가 오히려 힘들 정도였습니다. 금감원을 통해 민원이 한 건이라도 들어오면 아예 재계약을 하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금감원을 통한 민원이 발생하는 기사들의 재개약을 모두 금지한다는 공지.
그러면서 회사는 이들을 정규직이나 계약직이 아닌 개인사업자와 유사한 ‘에이전트’ 제도로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개인사업자들은 근로기준법 등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4대 보험은 물론, 퇴직금도 받을 수 없습니다. 대신 회사가 업무 내용과 장소, 시간을 지정해 지휘, 감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본사 직원이 이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보면, 업무 내용이 근무 시간을 지정해 요구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눈이 오는 등 기상 상황이 나빠 사고가 많이 날 것으로 보이는 날은 전원 대기를 요구하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기상 상황이 나빠지자, 전원 출동 대기 공지로 근무시간 지정.
기사가 나간 뒤 얼마 후, 삼성화재 퇴직자들 7명은 법원에 퇴직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앞으로 60명이 추가로 소송을 하겠다고 밝혔고, 소송 추이를 지켜보면서 참가 의지를 밝힌 전,현직자도 200명 정도라고 합니다.

마침 비슷한 상황인 가전제품 AS업체와 대행 계약을 맺은 수리 기사, 인터넷 설치를 하는 수리기사 등 개인사업자들이 법원에서 퇴직금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사례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소송을 담당하고 있는 홍정석 변호사는 “기사들이 사용자의 관리감독을 받았는지, 근로 기준표나 근로 성과표에 따라서 종속적인 관계에 있었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또 “형식적으로 고용계약의 형태가 아닌 근로자들에 대해서 대법원이 점차 근로자성의 범위를 넓히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이들도 구제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 된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삼성화재 퇴직자들이 받을 수 있는 퇴직금은 많지 않습니다. 수당이 깎이면서 월급이 점점 줄어들어 그만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퇴직금을 산정하는 퇴직 직전의 월급은 그리 많지 않은 겁니다.

하지만 그동안의 부당함을 조금이나마 밝히기 위해, 삼성화재와 비슷한 규정을 따르는 또 다른 보험회사 퇴직자들을 위해 대기업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법원에서 어떤 판결이 내려질지 저도 관심있게 지켜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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