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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여자배구 내홍' 홍성진 감독은 왜 뒷짐만 지고 있나

[취재파일] '여자배구 내홍' 홍성진 감독은 왜 뒷짐만 지고 있나
최근 한국 여자배구는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습니다.

여자 대표팀의 '절반 비즈니스' 논란으로 시작된 내홍은 주장 김연경의 말 한마디로 심화됐습니다. 김연경은 지난 7일 아시아선수권대회 참가를 위해 필리핀으로 출국하던 중 취재진에 여자 대표팀이 엔트리를 채우지 못하고 대회에 나서는 안타까움을 토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연경은 후배 이재영의 실명을 거론하며 "고생하는 선수들만 고생하게 된다. 부상으로 빠진 이재영 선수도 대표팀에 들어왔어야 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김연경의 발언으로 이재영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습니다. 이재영의 소속 팀 흥국생명의 박미희 감독이 "이재영은 경기에 뛸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다. 휴가를 반납하면서 재활하고 있다"고 반박했지만, 비난 여론은 더욱 커졌습니다.
배구선수 김연경(왼쪽), 이재영(오른쪽)
자신의 발언으로 파장이 일파만파 커지자 김연경은 소속사를 통해 공식 해명했습니다.

김연경은 "내 의견은 대표선수 관리뿐 아니라 인재 발굴 및 육성할 수 있는 시스템의 필요성이었다"며 "이를 설명하는 중에 이재영 선수의 실명이 거론됐다. 하지만, 이는 이재영 선수뿐 아니라 나를 포함한 모든 선수에게 해당하는 내용이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처음 보도와 다르게 이후 보도된 내용이 취지에 크게 벗어나 다른 의미로 해석됐다는 생각이 든다"며 "특히 나와 이재영 선수에 대한 추측성 기사와 악성 댓글이 달리고 있다. 실명이 거론돼 상처받았을 이재영 선수에게 미안하다. 추측성 기사와 악성 댓글은 자제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습니다.

김연경은 여자배구를 대표하는 스타입니다. 자신의 말 한 마디가 얼마나 큰 파급력을 지니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김연경이 후배의 실명을 거론하면서까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배구협회의 '무계획적인 행정'과 국가대표팀에 '무관심하고 비협조적인 국내 구단들의 행태'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당면한 문제들을 선수 신분인 김연경이 언급하고 지적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배구계에서는 "김연경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후배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면서 비판한 건 경솔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김연경 역시 자신으로부터 촉발된 이재영에 대한 비난이 도를 넘자 매우 난감해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사진=연합뉴스)
이번 내홍의 근원적인 문제는 빡빡한 국제대회 일정과 대표팀 엔트리입니다.

배구협회는 올해 국제대회 스케줄이 빡빡하다는 걸 알고도 딱히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내년 아시안게임과 2020년 도쿄올림픽을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매 대회마다 최정예 명단을 꾸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계속되는 국제대회로 체력이 떨어진 선수단에 불만이 쌓이는 건 당연했습니다.

배구협회의 '무계획적인 행정'과 '선수들의 불만'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줘야 하는 인물이 홍성진 여자 대표팀 감독입니다. 하지만, 홍성진 감독은 중재자 역할도, 해결책도 내놓지 못하고 방관했습니다. 김연경의 발언으로 파문이 일파만파 커지는 상황에서도 침묵만 지켰습니다.

홍성진 감독은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켰습니다. 여자 대표팀은 지난달 열린 그랑프리에서 14인 엔트리를 채우지 않고, 12명으로 대회를 치렀습니다. 경기가 거듭될수록 주축 선수들의 체력은 떨어졌고, 결국 결승에서 폴란드에 패하며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14인 엔트리 운용이 선수단 체력 문제와 직결된다는 건 홍성진 감독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홍성진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
그러나 홍 감독은 이번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또다시 엔트리를 채우지 않았습니다. 배구협회에 문의한 결과 홍 감독은 추가 선수 발탁 의사를 밝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홍 감독은 지난 7일 출국을 앞두고 취재진으로부터 '14인 엔트리를 채우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즉답을 피했습니다.

대신 "김연경을 포함한 주요 선수들의 체력 관리를 위해 가용 엔트리를 잘 활용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채우지 않은 한 자리는 김연경이 언급한 이재영의 자리였습니다. 김연경이 이재영의 실명을 거론하는 빌미를 제공한 셈입니다.

홍성진 감독은 '대화와 소통의 리더십'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도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여자 대표팀의 운영은 대화와 소통보다 '방관과 침묵'에 가까워 보입니다. 배구계 한 인사는 "김연경의 발언은 선수가 아닌 홍성진 감독이 했어야 하는 내용이다. 홍성진 감독은 배구협회에 딱히 불만을 나타내지 않는 것으로 안다. '국가대표 감독'이라는 자리보전에 급급한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습니다.

여자배구 대표팀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홍성진 감독은 이제라도 뒷짐을 풀어야 합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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