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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학인권센터 설치의무화법' 발의…앞으로 남은 과제들

[취재파일] '대학인권센터 설치의무화법' 발의…앞으로 남은 과제들
지난 27일, 잇따른 '갑질 교수'를 막기 위한 의미있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습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은 대학원생 인권침해 피해자, 전국대학원총학생회 관계자들과 함께 '대학인권센터 설치의무화법 (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출했습니다.

앞서 노웅래 의원실과 교육부가 전국 237개 대학 인권센터 설치 현황을 조사한 결과, 조사에 응답한 97개 대학 중 인권센터가 설치된 학교는 20%가 채 안되는 19개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번에 제출된 법안은 이처럼 많은 대학원생들이 교수에게 인권 침해를 당해도 찾아갈 곳이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만들어졌습니다. 통과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학내에 대학원생 인권 보호 기관이 생기면, 그동안 남몰래 '을의 눈물'을 삼켜야 했던 많은 대학원생들에겐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인권센터가 설치돼 수년 동안 운영돼 온 대학에서도 끊임없이 '갑질 교수'들의 사례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인권센터 설치 의무화’ 말고도 함께 추진돼야 할 제도 개선 지점이 많다는 얘기입니다. 이번 취재파일에서는 지난 27일 국회 간담회에서 나온 대학원생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대학원생 인권 보장을 위해 풀어야 할 숙제들을 정리해봤습니다.

● 인력은 부족하고 권한도 적어…인권센터 내실 보강 필요
  
인권센터 설치도 중요하지만, 인권센터가 내실 있게 운영돼야 대학원생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많은 대학 인권센터들은 인력과 예산 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간담회에서 발언한 여러 대학원생들은 "인권센터의 전담 인력이 부족해 다른 상담센터 직원이 인권센터 일을 같이 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인권센터 전담 인력이 확충되지 않으면 전문성도 담보하기 어렵습니다. 때문에 인권센터 설치 의무화는 물론, 운영 인력에 대한 규정도 필요합니다.

학내 인권보호기관의 권한이 너무 적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지도교수로부터 욕설과 폭언, 외모지적, 술시중 들기, 잡일 등 온갖 ‘갑질’ 피해를 당한 체육대학원생 A씨는 학내 양성평등센터에 신고했지만 별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양성평등센터가 아무런 권한이 없어 A씨가 지도교수를 변경하거나 휴학, 복학을 하려면 가해 교수에게 모두 승낙을 받아야 했던 겁니다. 학내 인권보호기관이 2차 피해를 적극적으로 막을 수 있도록 권한과 규정을 보강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인권센터 설치가 의무화된다 하더라도, 독립기구로 존재하지 않고 학교 소속기관으로 전락한다면 허울뿐인 인권센터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습니다. 교원 등 학교 관계자들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인권센터의 제도적 독립성을 보장하고, 운영 실태를 정기적으로 감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대학원생들은 입을 모았습니다.

● 채찍은 없고 솜방망이만…교수 징계 제도 개선 없인 대학원생 인권도 없다
 
지난 취재파일에서 지적했듯이, 현행 교수 징계제도에서 '갑질 교수' 대부분은 정직 3개월만 받고 강단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 [취재파일] 징계 확정 전에도…'갑질 교수'의 카톡 상태 메시지는 "또 한 학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간담회에서도 대학원생들은 교수 징계제도 개선이 필수적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습니다. 이에 따라 현재 3개월이 최고인 정직 개월 수를 학생 정학 기준과 비슷하게 1년 정도로 늘리는 것, 파면과 해임 외에도 면직이나 강등 (정교수->부교수) 제도를 교수 징계 제도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상습적인 인권 침해 교수에게는 적어도 ‘투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가해 교수가 계속 교수직을 유지하고 있을 경우 학계에서 유무형의 권력 행사를 대학원생에게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만큼, 상습적인 인권 침해 교수에 대해서는 훨씬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현행 3년인 교원징계시효를 연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많은 대학원생 인권 침해 사건들이 피해 학생들이 가해 교수의 영향력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을 때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징계 시효가 3년에 불과해, 훗날 피해 대학원생이 용기를 내더라도 교수를 처벌할 방법이 없는 경우도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교수들의 징계 시효를 연장하는 법안이 제출됐지만, 아직 국회에 계류중입니다.

징계 제도 강화뿐 아니라 자체 정화를 위한 제도 도입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한 대학원생은 외국의 경우 대학별로 교수에 대한 연구실 대학원생의 평가를 공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인권 보장 측면에 있어서 대학원생들의 교수 평가를 실시해 다양한 경로로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습니다.

● '제식구 감싸기', '셀프징계'…대학 징계위 구성과 운영 개선 목소리도
  
교육공무원 징계령 및 사립학교법 62조 (교원징계위원회의 설치 및 구성 등)에 따르면 대학 징계위원회에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위원 구성이 주로 해당 학교 교원과 법조인, 공무원 출신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입니다. 인권침해 사안의 주요 당사자인 학생 대표자는 징계위 참여가 원천 불가능하고, 대학원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한 활동가들이 대학 교원징계위에 참여하는 경우는 현실적으로 거의 없습니다.

때문에 징계위의 솜방망이 처벌에는 종종 ‘셀프 징계', '제식구 감싸기'라는 논란이 뒤따랐습니다. 폐쇄적인 현행 대학 징계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을 바꾸지 않고서는 대학원 인권 침해 사건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또 대학이 '교원징계위원회에 참석한 사람은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는 사립학교법 66조의5(비밀누설의 금지) 조항을 보수적으로 해석해 가해 교수에 대한 징계 과정과 결과가 잘 공개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그간 대학원생 인권침해 사례는 수없이 터져나왔지만, 대학원생의 인권과 관련된 법령과 제도는 만들어질 당시인 20여년 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대학원생들의 외침이 허공에 흩어지고 마는 상아탑의 환경은 언제쯤 바뀔수 있을까요? 간담회에 참석한 한 대학원생은 "연이어 등장하는 '갑질 교수'에 대한 분노도 필요하겠지만, 대학원생의 인권 환경에 대한 사회의 지속적 관심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제출된 '인권센터 설치 의무화 법안'의 통과는 물론, 간담회에서 나온 대학원생들의 목소리가 또다른 법안 제출로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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