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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국민의 나라'를 위한 '악마의 변론(Devil's Advocate)'

시장의 힘 인정하고 타협해야 비전 현실화 가능하다

[칼럼] '국민의 나라'를 위한 '악마의 변론(Devil's Advocate)'
지난 19일 문재인 정부가 앞으로 5년 동안을 '국민의 나라'로 선포하고, '국정운영 5개년 계획'과 1백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국민들이 참여하는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국정운영을 하고, 그 과실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겠다는 비전이다.

지금까지는 국민들이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체제였다면, 이제부터는 국가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패러다임 전환이다. 국민이 주인인 정부, 더불어 잘사는 경제,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라는 5대 국정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20대 국정전략과 1백 개의 국정과제를 제시한 것이다.

비전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도 윤곽을 드러냈다. 권력기관의 개혁을 위해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공직자들의 비리를 감시하고 처벌하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를 신설하고, 검찰의 기소권과 수사권을 분리해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고 권력기관의 '견제와 균형(Check & Balance)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경제정의 구현을 위해 공정거래위원장으로 경제개혁의 아이콘으로 통하는 김상조 위원장을 임명했다. 김상조 위원장은 피자와 치킨 프랜차이즈 등 불공정 거래의 온상으로 지목돼온 프랜차이즈 업계를 겨냥하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관련업계는 백기 투항하는 모습이다.

아직 구체화되지는 않았지만 재벌기업으로 대표되는 대기업의 편법상속과 증여, 내부거래 문제에 대한 수습 방안도 곧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를 줄일 불공정 거래 근절도 과제다.

분배 정의를 통한 양극화 해소와 이를 통한 저소득층의 소득증대, 이를 통해 저소득층의 소비여력을 늘려 경제성장을 이룬다는 '소득주도 경제성장' 정책도 모습을 드러냈다. 대표적인 것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최저임금을 임기 내에 1만 원으로 인상하는 정책이다.

국민들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지키기 위해 공약했던 '탈원전'도 공식화하고, 오래된 원전 폐쇄와 신규 원전 중단도 본격화하고 있다.
김진표 국정운영 5개년 계획 발표(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이런 정책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집중된 권력과 부를 분산해 국가의 전체 부를 증대하고, 모두가 잘사는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것이다. 이렇게 패러다임을 전환하면 연 3%의 경제성장을 달성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새 정부가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이 너무 이상적이고 성급하며, 실험적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의 종언』의 공동저자인 한국교통대학교 임동욱 교수는 "지금은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높아 무엇을 해도 다 되는듯 한 분위기이지만, 대통령 임기 5년은 짧은 기간이다.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기보다는 소수의 국정과제에 집중해야 한다. 노동자 편들기는 있지만 동반성장은 없다. 그렇게 성공한 나라는 없다"고 평가했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장덕진 교수는 "단번에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하기보다는 기존의 경직된 노동시장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종합적인 접근을 통해 노사정합의를 이끌어 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법인세나 소득세 인상 문제도 기존의 비과세 감면은 어떻게 할 것인지를 먼저 검토한 뒤 정책을 결정했어야 한다고 본다. 기존의 것들을 모두 적폐로 규정하고 그냥 바꾸려는 접근은 문제인 것 같다"고 말했다.

권력기관의 민주적 개혁을 주장하면서도 정작 최종 사법권력 기관인 법원의 개혁이 빠져 있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노무현 정부시절 추진했던 사법개혁에서 가장 핵심 요소였던 시민참여재판이 현재 유야무야된 상황이라서 더욱 그렇다.

마이클 샌델 교수가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주장하듯 "정의란 사회구성원들 간의 정의라고 판단하는 것들"이라는 점에서 '정의로운 국민의 나라'에 '국민의 재판참여'가 빠질 수는 없을 것 같다. '검사의 기소독점'처럼 '판사의 판결 독점'도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가로막는 원인 중의 하나라는 문제의식이다.

이론이 있지만 전통적인 경제학에서는 경제성장은 노동과 자본, 토지를 결합해 부가가치를 만들어냄으로써 달성된다고 본다. 소득이 부족해 소비를 하지 못하는 저소득층의 소득을 증대해 소비를 진작함으로써 경제성장을 달성한다는 새 정부의 소득주도 경제정책이 실험적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금처럼 저소득층과 고소득층,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수익 격차가 너무 커져 있는 상황을 치유하는 정책으로써 소득주도 경제 성장론은 일리가 있지만, 국가의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좀 더 근원적인 국가적 과제라는 지적이다.

81만 개의 신규 일자리 창출에 '올인'하는 경제정책에 대해서도 우려가 높다. 일자리는 부가가치를 창출하려는 경제활동의 결과물이지 일자리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일자리의 숫자보다는 어떤 산업을 육성하고, 어떤 서비스를 만들어 낼 것인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새 정부가 추진하는 '최저임금 시급 1만 원' 정책도 오히려 일자리를 줄이고 저소득층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내년 최저임금이 1시간에 7,530원으로 결정되자 현장에서는 벌써 고용을 줄이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최저임금 적용대상 근로자가 대부분 근로자 30인 미만의 영세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만큼, 최저임금 인상으로 타격을 받을 사람들은 대부분 영세사업장이라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인상 전의 최저임금도 못 받는 근로자가 많은데, 무작정 최저임금을 더 올리면 범법자만 늘린다는 얘기도 나온다.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 공사의 일시 중단 반대 시위
새 정부의 '탈 원전정책'도 우리가 애써 확보한 ‘밥그릇’을 스스로 내치는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전력산업에 종사하는 한 관계자는 "외국 에너지 업계 사람들이 정말 이해가 안 간다고 말한다. 탈 원전을 하려면 노후 원전부터 문을 폐쇄해야지 왜 가장 안전한 최신원전으로 이미 3조 원 가까이 투입된 신고리 5-6호기를 닫으려 하느냐고 반문한다"고 말했다.

초고득자와 초대기업만을 대상으로 한 세금인상에 대한 우려도 크다. 증세가 겨냥하는 대상이 일부 계층인 상황에서 지지여론을 토대로 증세를 감행한다면 사회적 분열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다. 담세의 규모는 큰 차이를 두더라도 보다 많은 사회구성원들이 참여해 세금을 낼 수 있게 하는 '보편적 과세'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 우리는 평생직장을 권유하는 사회에 살았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는 평생직장이 아니라 고용의 유연성을 칭송하고, 여러 직장을 옮겨 다닐 수 있는 전문가가 되기를 권유했다.

외환위기 이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수익성 격차는 그리 크지 않았고, 대기업 종사자와 중소기업 종사자의 임금 격차도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의 독식 시대가 되면서 중소기업은 설자리를 잃게 됐다.

중소기업의 강점은 소규모 집단으로서 특정 분야에 집중해 독창성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독창성과 창의성을 사회적으로 보장하고, 힘이 센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로부터 중소기업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때,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거래에서 대기업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은 점차 균형을 잡아가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의 소득 격차도 점차 개선될 것이다. 양극화의 해소는 인위적인 소득과 임금조정보다는 이런 사회 제도적 변화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대통령 후보는 자신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을 위해 공약을 만들고, 그 공약을 통해 표를 얻는다. 하지만 투표 결과 선출된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도 대표해야 하는 한 국가의 수반이다. 그리고 그 지지했던 사람들과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찬반 의견들이 모두 응집돼 현실화돼 나타나는 것이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의 현장은 이해가 엇갈리는 사람들이 치열하게 다툼을 벌이는 전쟁터에 비유된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시험적인 것에 머물지 않고 이행돼 그 효과를 발하기 위해서는 시장을 통제하려 하기보다는 시장과 치열하게 소통하며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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