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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법원·검찰에 운명을 맡긴 문재인 정부

[취재파일] 법원·검찰에 운명을 맡긴 문재인 정부
요즘 '판사 블랙리스트' 등 여러모로 머리가 아픈 양승태 대법원장의 숙원 사업은 상고법원 설치였다. 그 동안 대법원은 국회, 언론 등 상고법원 설치에 대한 홍보와 논리 전파에 ‘올인’했다.

오죽하면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법원행정처 고위 간부 등의 전화 통화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특검 수사 결과 드러났는데 그것도 상고법원 설치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뤘을 정도였다. 하지만 결국 양 대법원장은 염원을 이루지 못한 채 한 달쯤 뒤에 있을 퇴임식만을 앞두고 있다.

이렇게 장황하게 서두를 꺼낸 이유는 현재 양 대법원장의 임기가 1년 또는 2년 정도 남았더라면 아마 상고법원 설치가 가시권 안에 들어왔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주 새 정부 5년의 철학과 정책의 청사진인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국민이 주인인 정부 등 5대 국정목표를 세웠고 실천과제로 100개의 국정과제를 선정했다.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1번 과제가 바로 '적폐의 철저하고 완전한 청산'이다.

그리고 과제 주요 내용에는 '정부 부처별 TFT를 구성하여, 국정농단 실태를 분석하고 기소된 사건의 공소유지를 철저히 하라'고 나와 있다. ‘부처별 TFT 구성과 공소유지 철저'는 그저 단순한 행정적 지시가 아니라 국정 5년 계획의 1번, 즉 최우선 과제다. 열 일을 제쳐놓고라도 이건 해내야 된다고 이 정부에서는 보고 있다는 것이다.

'촛불시민혁명으로부터 탄생' 을 표방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로서는 이른바 과거 권력의 사유화, 무능한 정부, 개인 사상의 억압 등을 적폐로 꼽았고 그것을 청산하는 것이 정부의 정통성을 확립하는 일이라고 본 것 같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른바 적폐 세력 정부를 거부하는 시민들의 저항을 기반으로 성립된 현 정부의 정통성을 지키는 제 1과제로 적폐세 력의 공소유지를 꼽은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특검에서 맹활약한 윤석열 검사를 그 업무의 최고 책임자 자리에 앉혔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취임 후 본격적인 국정농단 사건 공소유지를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태스크 포스팀을 만든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다.

그렇다면 결국 문재인 정부가 생각하는 정통성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로 대표되는 국정농단 사건 세력에 대한 검찰의 철저한 공소유지와 법원의 유죄판결로서 완결 지어진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결국 문재인 정부의 정통성을 세워줄 주체는 검찰과 법원이라는 것이고 그 두 주체가 어떤 결과를 내 놓느냐에 따라 정부의 존립기반에 공고히 되느냐 불안해지느냐가 결정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현 상황과 전술한 상고법원 이야기를 다시 맞춰 보면 양 대법원장에게는 임기가 앞으로 1년만 남았어도 상고법원 설치에 대한 기대치가 현재와 현저히 다를 수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 물론 엄격한 증거 절차와 기록 검토로 이루어지는 법원의 판결이 음험한 모종의 거래로 뒤바뀔 리는 없다. 하지만 이런 역학 구조 속에서 법원행정처와 청와대, 여당 사이에 누가 이니셔티브를 쥐게 되는지는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검찰
또한 이 구조는 검찰개혁과도 맞물려 있다. 현재 구도 속에서 이 정부가 어떻게 검찰조직의 과도한 권력을 제거하고 민주적인 통제가 가능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검찰은 어떤 곳보다는 검찰 조직의 이익에 가장 충실한 집단이다. 어떻게든 과거 비대했던 검찰의 힘을 빼려고 하는 현 정부가 검찰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이 역설적인 상황은 진정한 검찰 개혁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 정부의 정통성은 검찰과 법원이 보증해주는 것이 아니다.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을 심리 끝에 결정했고 이후 민주적 절차에 의해 정당한 투표로 문재인 후보가 당선된 것 자체로 이미 정부의 정통성은 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국정과제 1번이 국정농단의 철저한 공소유지라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선택으로 보인다.

국정농단은 엄연한 범죄적 혐의가 있어 검찰과 특검의 수사로 기소된 것이고 그에 따른 절차에 따라 법원은 판결을 할 뿐이다. 국정농단 사건은 중요한 형사 사건으로서 법무부장관이 검찰에 철저한 공소유지를 독려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국정과제 1번으로까지 부각시킨 문재인 정부로선 1) 무죄 판결이 날 수 있다는 걱정을 염두에 둔 채 2) 1,2,3 심을 통해 사건이 유죄로 판결을 확정할 것을 간절히 기대하며 3) 전적으로 검찰의 공소유지 능력에 기대야 하는 운명에 스스로를 맡긴 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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