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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무능'과 '무관심'으로 빚어진 '절반 비즈니스' 논란

[취재파일] '무능'과 '무관심'으로 빚어진 '절반 비즈니스' 논란
월드 그랑프리 2그룹 예선에서 8승 1패의 성적으로 1위에 오른 여자배구 대표팀에 ‘절반 비즈니스 좌석’ 논란이 일었습니다. 오는 29일 체코에서 열리는 결선 라운드에 참가해야 하는데, 12명의 선수단 중 절반인 6명만 넓고 쾌적한 ‘비즈니스 좌석’을 앉게 된 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좌석 형평성’ 논란이 자칫 대표팀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대한배구협회는 ‘절반 비즈니스’ 좌석 논란에 다음과 같이 해명했습니다.

“한국배구연맹(KOVO)에게 지원 받은 1억 원으로 8~9월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남자부 이란, 여자부 태국)에 참가할 때 비즈니스 좌석을 이용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랑프리를 마친 여자 선수단에서 체코를 갈 때 비즈니스 좌석을 앉았으면 좋겠다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급한 대로 알아봤지만, 9좌석을 확보했는데 그쳤습니다. 홍성진 감독, 선수단과 상의 끝에 기준을 정하기로 했고, 185cm 이상의 선수가 비즈니스에 앉기로 했습니다. 5명이 해당되는데, 무릎 부상 중인 김해란 선수까지 포함해 6명에게 비즈니스 좌석을 배정했습니다. 태국 왕복 비즈니스 요금보다 체코 왕복 비즈니스 좌석의 요금이 더 비싸 예산도 부족했습니다. 어쨌든 저희의 불찰입니다.”

● 돈 쓰고 욕먹은 배구협회

남녀 배구대표팀의 지원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경기력에 악영향을 끼칠 만큼 협회의 지원이 부족했다는 건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입니다.

지원 부실에 대한 비난의 여론이 끊이지 않자 배구협회는 KOVO에 지원을 요청했고, 지난 6월말 1억 원을 받았습니다. KOVO는 지금까지 지원금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거론하며, 이번 1억 원은 반드시 선수단 비즈니스 좌석 구입에 쓸 것을 요구했습니다.

1억 원을 받은 협회는 어느 대회에 비즈니스 좌석을 적용할지 고민했고, 중요성을 감안해 8~9월 열리는 남녀 세계선수권대회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남녀 합쳐 30명 가까운 선수단 전원에게 비즈니스 좌석을 적용하기엔 1억 원의 예산이 부족했습니다. 협회는 궁여지책으로 선수단의 절반만 비즈니스 좌석을 제공하기로 하고, 신장과 부상 여부를 고려해 기준을 정했습니다. (일부 구단은 협회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예산 부족 문제를 들어 비즈니스 좌석을 절반만 구입한 뒤 남은 금액은 협회 자금으로 사용하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하고 있습니다.)

‘절반 비즈니스’ 소식을 접한 남자부 구단들은 협회 측에 약속이 다르다며 강하게 어필했습니다. 남자부 선수 전원에게 비즈니스 좌석을 앉힐 것을 요구했고, 대신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진행 중인 아시아선수권 대회는 구단이 선수단 전원의 좌석 업그레이드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구단도 돈을 쓸 테니 협회도 확실하게 약속을 지켜라’고 한 것입니다. 협회는 요구를 수용했습니다. 협회 관계자는 “남자부 선수단의 이란행 비즈니스 좌석은 모두 확정했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여자부 구단은 ‘절반 비즈니스’ 좌석에 대해 딱히 어필을 하지 않았습니다. 협회도 쉬쉬하면서 태국 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체코에서 열리는 그랑프리 결선에 나서야 하는 여자 선수단에서 갑작스럽게 좌석 업그레이드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자금난에 시달리는 협회는 여윳돈이 없다 보니 태국 세계선수권의 예산을 당겨서 집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태국 왕복 요금보다 유럽에 위치한 체코 왕복 요금이 더 비쌌고, 설상가상 여름 휴가철이라 좌석확보까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결국 궁여지책으로 또다시 절반만 비즈니스 좌석을 적용했고, 이 내용이 알려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 사태를 키운 여자부 구단들의 '무관심'
여자배구 대표팀
남녀 배구대표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이점이 있습니다. 남자부는 유니폼 상의에 ‘현대캐피탈’이 적혀있는데, 여자부는 선수 번호만 덩그러니 박혀있습니다. 협회가 여자 배구대표팀의 타이틀 스폰서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자 구단들의 무관심도 사태를 키웠습니다.

현재 여자 배구대표팀은 ‘김연경과 황금세대’로 불리며 최고 인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그랑프리가 열린 수원실내체육관은 발 디딜 틈 없이 꽉 들어찼습니다. 현장을 찾은 이정철 IBK 감독과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은 여자대표팀의 인기에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대표팀의 활약은 리그 흥행과 발전에 직결됩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표팀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여자부 구단들은 이번 대표팀과 그랑프리 대회를 외면했습니다. 협회 관계자는 “여자부 전 구단에게 대표팀 타이틀 스폰서를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모두 어렵다며 거절했습니다. 대표팀 스폰서가 어렵다면, 그랑프리가 열리는 수원실내체육관 A보드에 광고라도 넣어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마저도 거절 당했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가뜩이나 자금난에 시달리는 협회인데, 여자부 구단들을 상대로 ‘영업’까지 실패하면서 어려움이 가중됐다고 하소연합니다.

여자 구단들은 협의 태도를 지적했습니다. 한 여자부 구단 관계자는 “협회가 스폰서나 광고 요청을 할 때 공문 몇 장을 보내는 것이 끝이다. 적게는 몇천 만원 많게는 억 단위 자금이 집행되는 사업인데, 너무 무성의한 것 아닌가. 윗선에 보고하려면 많은 준비를 해야 하는데, 협회가 보낸 공문만 가지고 들어가면 무조건 퇴짜를 맞는다. 협회가 의지가 있다면 대행사라도 고용해서 마케팅을 해야 한다. 구단들의 지원을 너무 당연시 생각하면 안된다”고 반박했습니다.

여자부 구단들의 입장도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여자부 구단들이 남자 구단처럼 대표팀에 최소한의 관심이라도 가지고,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알아봤다면 ‘절반 비즈니스 논란’은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협회에 따르면 논란이 발생하자 뒤늦게 IBK기업은행에서 3,000만 원을 지원금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협회와 여자부 구단 모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됐습니다.

●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협회는 ‘전문성’을 키워야 하고, 구단들은 대표팀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상호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KOVO와 남녀 구단들은 ‘협회의 주먹구구식 행정으로는 지원이 어렵다’고 입을 모읍니다. 특히 지원금 사용 내용을 투명하게 밝히고, 오로지 대표팀 환경 개선에 써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협회는 지금까지 그러지 못했습니다. 자금난에 시달리다 보니 KOVO와 구단들의 지원금이 다른 곳에 사용되는 일이 비일비재 했습니다. 피해는 고스란히 선수들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서로에 대한 불신은 커졌습니다.

배구협회는 지난달 선거를 통해 경기인 출신 오한남 회장을 선출했습니다. 오 회장은 성공한 사업가로 배구협회의 자금난을 타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또한 전문성 있는 인력을 새 집행부에 영입해 여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뜻도 밝혔습니다. 배구협회가 달라진다면, 구단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입니다.

배구협회는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습니다. 이번 만큼은 달라진 모습으로 ‘대표팀 지원 문제’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길 기대합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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