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아이들이랑 보내는 시간이었고, 책도 좀 읽었던 것 같고, 태반의 시간은 술독에 빠져 허우적대며 보냈던 것 같기도 하고…. 이래저래 '나 자신'이 왠지 보이는 않는 시간들을 보냈던 것 같다.
그러다 '적당히 배가 나온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아이는 사춘기를 지나고, 대학의 문턱을 넘어서면서부터 아비와 보내는 시간은 흔적조차 미미할 지경이고, 나는 그저 아직도 술을 벗 삼아 술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친구들과 더불어, 객쩍은 농담이나 던지면서 그렇게….
재작년, 그러니까 2015년의 일이었다.
그렇게 졸지에 남자 둘은 후쿠오카로 떠났다. 1시간 10분간의 비행…. 실로 잠시 조는 사이, 비행기의 안내 방송은 착륙을 예고한다.
먼저, 몇 해 전 규슈올레를 취재하면서 알게 된 규슈관광추진기구(*관광청 같은 기관)에서 규슈올레의 코스개발과 홍보를 전담하는 이유미 씨를 만났다. 유학 중 일본인 남편을 만나 결혼한 이유미 씨는 그야말로 규슈올레의 산증인이다. 그녀는 규슈에 제주 올레길을 닮은 둘레길을 개발하자는 제안자였고, 규슈 올레의 모든 코스를 직접 걷고 개발했으니, 규슈 올레에 대한 사랑 또한 최고다.
그러니 규슈올레를 걸으려는 사람들에겐 이유미 씨와의 만남만으로도 규슈올레의 반은 걸은 셈이 된다. 그녀에게서 듣는 규슈올레의 이야기, 나아가 자랑은 그만큼 생생하기 때문이다.
현재 규슈올레는 규슈 지역 내 7개 현(縣)에 걸쳐 19개의 코스가 개발되어 있다. 규슈는 일본의 최남단 지역으로, 면적은 남한의 3분의 1 정도의 크기이다. 자연환경은 그 크기만큼이나 다양하며, 특히 거대한 칼데라 화산이 있어, 「불의 나라, 규슈」라고 불릴 정도로 온천이 매우 많은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야메의 한자표기가 팔녀(八女)다. 여자가 많은 동네인가? 여하튼 동네 이름이 특이한지라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은 느낌이다.
출발도 하기 전에 만나는 한글 인사가 반갑다. 규슈 지방의 둘레길에 '올레'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규슈 올레가 제주 올레의 명칭을 수입했기 때문이다. 제주 올레에서는 일정액의 로얄티를 받고 규슈올레의 올레 명칭 사용을 허락하고, 올레길 코스개발과 인증을 해주고 있다.
'가보자고요!'
산길을 접어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래된 고분이 나온다. 도난잔고분(童男山古墳)이다. 야메에는 많은 고분이 있다고 하는데, 고분군 중 가장 마지막에 만들어진 것이 도난잔고분(童男山古墳)이란다. 서너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석실로 이루어져 있는데, 석실 벽에는 붉은 칠을 해놓고 무슨 무속 사당처럼 꾸며져 있다.
하지만 고분 시대와 관련한 문자로 기록된 역사가 전무하다 보니, 그야말로 논쟁 중이다. 다만, 일본 일부 역사계가 주장하는 일본이 가야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시기가 4~6세기로, 고분시대와 겹친다. 누가 누구를 지배했는지는 오랫동안 이어질 역사적 논쟁이고, 연구대상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정확한 기억이 나진 않지만, 여행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고, 한편으론 나를 찾아가는 기회가 되고…. 어쩌고저쩌고 했던 것 같다. 10분이 채 되지 않은 나의 연설(?) 후, 아이가 입을 닫았다. 이후 나는 아이 눈치를 살피게 되고, 아이는 이어폰을 굳게 낀 채로 작은 미디어 기기를 통해 다운받은 영화만 봤다. 보다 졸리면 자고…. 휴게소에 들렀을 때만 빼고, 여러 시간을 그렇게 갔다.
목적지에 도착해 물었다. 무슨 문제가 있냐고?
아이가 그런다. 여행은 놀러 가는 거지, 찾긴 뭘 찾냐고? 놀러 가면서 왜 부담을 주냐고….
이런, 내가 읽은 교과서가 틀렸다. 일견, 아이의 말이 옳다.
맞다. 여행은 놀러 가는 거다. 여행을 통해 얻어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얻기 위해 노력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저절로, 부지불식간에 얻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뭔지는 몰라, 이걸 아이를 통해서 배운 것이다.
즐기는 놈을 이길 수 있는 방도도 없다지 않은가.
카메라를 메고 따라가는 걸음이라 앞서 가는 이를 따라가기가 버겁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야 하는 지라 제 아무리 잘 걷는다 하더라도, 저 멀리 걸어가는 동행을 야속한 마음으로 물끄러미 바라보기 일쑤다.
굳이 아쉬운 점을 찾자면, 일본어를 모르는 문맹인지라, 지명이나 이름, 그 지역의 풍물을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름 수집한 정보와 기록에 간혹 오류가 있다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게다가 길 위에서 만날 수 있는 현지인이 거의 없는지라, 조언을 구할 길도 없다는 점이 한계라면 한계다. 그야말로 길은 온전히 우리만의 독무대였던 것이다. 걸으며, 우리와 같은 목적으로 걷는 현지인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었다.
누군가가 그랬다. 길이란 누군가의 발자국들이 모이고 모여서 만들어진 흔적이라고…. 그렇게 길 위에는 많은 사람들의 흔적들이 가득하다. 그렇게 누군가의 흔적을 좇아가며, 또 꾹꾹 따라 밟아가며, 흐르는 땀방울을 훔치며 앞으로 나아간다.
땀을 훔치며, 힘들다는 말을 했었던가? 그때 친구가 말했다. 그 옛날 조선의 산과 들, 그리고 강을 건너며 등짐을 나르던 보부상을 생각해 보라고. 보부상이라…. 미처 생각지 못했던 걷기의 달인들이다. 많은 사람들의 삶이 길 위에서 펼쳐졌지만, 이들만큼 길 위에서 극적이고 다이내믹한 삶을 보낸 이들은 아마 드물 것이다.
새삼, 수백 리(里)의 길을 등짐과 씨름하며 걸었을, 또 걸은 거리만큼의 굵은 땀방울과 서러움과 기쁨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길도 아닌 것이다. 그네들에게는 얼마나 가소로울 것인가. 친구가 의도한 것이 무엇이었든 조금은 주마가편(走馬加鞭), 채찍이 된다.
아마도 그들의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라는 말을 에둘러 말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냥 가보는 것이다. 다른 이유, 아무것도 없다. '목표는 목적지가 아니라, 길 자체'라는 또 다른 누군가도 있지 않았는가.
그래서인지…. 숲길이 끝나가는 저 멀리에도 빛이 보인다. 조금은 종류가 다른 빛이라는 짐작을 어렵지 않게 하게 된다. 그것은, 다름 아닌 폭염이라는 태양의 폭격이 이루어지는 전쟁터일 것이다.
터널의 끝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광명은 찾았으나, 빛의 폭격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말았다. 딴에는 썬크림, 챙 넓은 모자라는 '햇볕 사드' 대응 체계를 갖췄지만, 사방팔방 360도 공격에는 그야말로 무용지물. 하지만 어쩔 것인가. 그래도 달리 방법이 없다. 그냥 걸어서 다음 숲을 향해 나아가는 것 말고는. 다만, 그 순간이 짧기만을 바랄 뿐이다.
우리의 삶은 언제부터인가 무한 속도 경쟁의 연속이다. 잠시 뒤처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양, 뱁새 다리마냥 짧은 다리를 휘둘러 잰걸음을 내딛고, 또 어떤 이는 그렇게 숙명적인 추월을 꿈꾸고, 또 어떤 이는 추월을 허용하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인 양 거창한 사명감으로 가슴이 터지는지도 모른 채 뛰어간다.
그렇게 그들은, 멀리 있는 대상이나 목표를 향해 숨 돌릴 틈조차 저당 잡힌 채로 바쁘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자신이 지나는 그 길을 돌아볼 수도, 그러니 그들이 지나는 순간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 과연 그 길만이 옳은 것일까?
요즘 들어 문득문득, 나는 '나만의 속도'를 생각한다. 쉬엄쉬엄 걸어갈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나만의 속도'를…. 저질 체력을 포함한 여러 가지 이유로, 설사 욕심낸다고 해도 이루지 못할 '빠름'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현실 인식. 욕심내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하기도 한다. 물론 갈 길은 멀다. 다만, 짐작할 뿐이다.
그렇게 걸으면서 만나는 많은 피조물을 발견하고, 또 깨달음으로 그들과 더불어 간다면 그 길 역시 외롭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과 친해져야 하고, 또 익숙해져야 한다. 바람 소리, 발밑에서 사각대는 낙엽들, 바람에 하늘거리는 작고 푸른 생명들, 그렇게 길 위에 펼쳐진 수많은 풍경들과 익숙해져야 하고, 그들과 대화하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살아가는 일'임을 조용히 깨닫는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야메 코스는 우리네 시골길을 많이 닮아 있다. 강원도나 경상도의 어느 산길과 들길을 걷기라도 하는 양, 너무도 익숙한 모습의 연속이다. 이국적이지 않아서 도리어 이국적이라면 이해하시겠는가. 특히나 나 같은 시골 태생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풍경인지라, 이국의 땅에서 고향을 만난 느낌이다.
오는 길에 만났던, 작은 차밭이 아닌, 그야말로 수평선 저 너머까지 차밭의 연속이다. 평야의 들처럼 차밭이 가없이 펼쳐진다. 전라도 보성을 비롯한 우리나라 차밭이 산등성이를 따라 늘어선 모습이 산사(山寺)에서 참선(參禪)하는 듯 규모가 작고 오목한 모습이라면, 이곳의 차밭은 일부 종교의 부흥회 같이 요란하고 광활하다.
이곳이 바로 야메 중앙대다원(八女中央大茶園)이다. 녹차생산지 야메를 대표하는 다원으로, 차밭이 지평선을 이루고 있다. 야메 중앙대다원은 야메차의 공동 생산지로, 생산에서 판매까지 지역 공동사업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야메차(茶)는 일본 녹차 중에서도 고급 브랜드란다.
좀 쉬었다 가고 싶지만, 그늘도 앉을 데도 없는지라 그냥 또 가야 한다.
길은 다시 이어져, 꽃길도 지나고, 논둑길 비슷한 길도 걷고, 그 길 너머엔 마을이 있다.
이러한 특징으로 제주의 올레길 주변 주민들은 올레길을 반긴다. 수퍼에서는 물 한 병이라도 올레꾼에게 더 팔 수 있어 좋고, 올레길이 지나는 마을 회관 중 더러는 식당 영업을 하는 곳도 적지 않다.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올레의 정신은 '상생'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렇게, 날씨가 너무 좋아 오히려 부담스러웠던 첫날의 트레킹을 무난하게 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숙소가 궁벽한 곳에 있는지라, 저녁 식사를 편의점의 간편 식품으로 때워야 했다는 사실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에피소드가 되고 말았다. 그 덕에 편의점의 다양한 메뉴를 맛볼 수 있었음은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