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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7년의 싸움을 선택한 '사격의 神'

[취재파일] 7년의 싸움을 선택한 '사격의 神'
'외로운 싸움을 선택한 사격의 神'

지난 5월 말 사격 국가대표 진종오 선수를 취재한 뒤 작성한 취재 파일의 초안 제목이었습니다.

진종오는 지난 5월 22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월드컵 대회 남자 50m 권총에서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웃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올림픽 3연패를 달성한 남자 50m 권총이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국제사격연맹(ISSF)은 지난 2월 도쿄올림픽에서 50m 권총 등 남자 종목 3개를 폐지하고, 10m 공기권총 등 혼성 종목 3개를 신설하는 방안을 확정해 국제올림픽위원회, IOC에 제출했습니다. 진종오는 독일 월드컵 우승 직후 국제사격연맹(ISSF)과 인터뷰에서 "우승을 했지만 기쁘지 않다. 이 종목이 도쿄올림픽에서 폐지되기 때문이다. 폐지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5월 25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월드컵을 마치고 귀국한 진종오를 만났습니다. 

그는 비보도를 전제로 자신의 입장을 솔직히 밝혔습니다. "남자 50m 권총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며 "ISSF가 50m 남자 권총을 폐지 종목으로 선택했는데,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다. 50m 종목을 남녀 혼성으로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독일 월드컵을 치르면서 50m 종목 선수들 모두 마음을 같이 했다. 총기와 탄약 제작 업체도 폐지를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지금은 언론을 통해 말씀드리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6월말 국내대회에서 입장을 정리하겠다. 조금 더 기다려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진종오가 입장발표를 6월 말로 미룬 건 오는 25일 열리는 ISSF 임시총회 때문입니다. ISSF 선수위원인 진종오는 남자 50m 권총 종목의 폐지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계획이었습니다. 세계 사격계의 폐지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면 7월 열릴 예정인 IOC 총회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ISSF 임시총회를 홀로 준비하는 진종오의 모습에 기자는 '외로운 싸움을 선택한 사격의 新'이라는 제목으로 취재 후기를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진종오의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IOC는 7월이 아닌 지난 9일 집행위원회를 열고 2020년 도쿄올림픽 세부 종목을 확정했습니다. ISSF의 개정안대로 남자 50m 권총은 사격 세부 종목에서 제외됐습니다. 언론을 통해 IOC의 발표 소식을 전해들은 진종오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모든 의욕을 잃고, 우울한 주말을 보냈습니다.

지난 21일 한화회장배가 열리는 청주종합사격장에서 만난 진종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돼 죄송하다"고 말했습니다. 목소리는 풀이 죽어있었습니다.

그러면서 "IOC에서 그렇게 빨리 세부 종목 확정을 할 줄 몰랐다. 7월에 종목을 확정한다고 얘기 들어서 직전까지 반대 목소리를 내려고 했다. 독일 월드컵 때 50m에 출전한 선수들이 검은 완장을 차는 등 단체 행동을 했다. 우리가 괘씸했는지 오히려 폐지시기를 앞당겼다는 느낌도 들었다. 선수들은 힘이 없다는 생각이 새삼 들더라. 이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진종오 금메달
일각에선 아시아 선수들이 50m 종목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는 것이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실제 지난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이 종목 금·은·동메달은 진종오와 베트남의 호앙 쑤안 빈, 북한의 김성국의 차지였습니다.

아시아 선수들이 너무 잘해서 괘씸죄 같은 견제심리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역대 남자 50m 권총 금메달리스트의 면면을 살펴보면 괘씸죄는 선뜻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진종오 이전 올림픽 남자 50m 권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21명 가운데 아시아인은 중국의 쉬 하이펑(1984년 LA 올림픽) 뿐입니다.

나머지 20명 중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페루 국적의 에드윈 바스케스를 제외한 19명은 미국 또는 유럽 출신입니다. 아시아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낸 건 진종오가 첫 메달을 따낸 2008년부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진종오는 "아시아 선수가 잘 쏘니 괘씸죄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면서도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50m 종목 폐지로 나 뿐 아니라 유럽 선수들도 자신의 종목을 잃어 반발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진종오는 당분간 50m 대신 10m 권총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더불어 도쿄올림픽에 신설되는 10m 남녀 혼성 종목도 출전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렇다고 남자 50m 권총 종목을 포기하는 건 아닙니다. 50m 권총은 역대 올림픽에서 두 차례(1908년 런던, 1924년 파리) 세부 종목에서 제외된 바 있지만, 다음 올림픽에서 다시 채택돼 2016년까지 명맥을 유지했습니다.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사라지지만, 2024년 올림픽에선 다시 부활할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진종오는 남자 50m 권총의 올림픽 부활을 위해 계속 노력할 계획입니다. 도쿄올림픽 다음 대회는 지금부터 7년 뒤인 2024년에 열립니다. 그가 총을 계속 잡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왜 길고 지루한 싸움을 선택했는지 물었습니다.

"올림픽 4연패를 바라고 부활을 희망하는 건 아니다. 나만 있는 게 아니라 사격을 하는 우리 후배 선수들도 있지 않나. 그 선수들이 기회를 얻어야 한다. 비록 올림픽에서는 사라졌지만, 세계선수권과 아시안게임에선 여전히 50m 권총 종목이 있다. 홍보를 더 많이 하겠다. 더 많은 선수를 육성해서 우리가 이만큼 50m 종목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리겠다. 많은 선수들이 50m 종목을 하고 싶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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