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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야만적인 농약 밀렵…독수리까지 폐사

[취재파일] 야만적인 농약 밀렵…독수리까지 폐사
두루미와 황새처럼 독수리는 겨울철에 우리나라를 찾는 귀한 손님중 하나다. 대부분 몽골에서 번식한 독수리들은 혹독한 추위를 피해 매년 11월말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와 이듬해 3월까지 머물다 되돌아간다. 독수리가 즐겨 찾는 곳은 경남 고성과 강원 철원 등 이다.
 
날이 풀리고 봄기운이 완연해 지는 이맘때쯤이면 독수리는 머나먼 고향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길고 먼 여정의 필수 요소는 체력이다. 먹이를 잘 먹어 힘을 길러야 무사히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귀향을 앞둔 독수리들에게 사고가 터졌다. 충남 청양에서 독수리 구조신고가 들어온 것은 열흘 전쯤이다.
농약밀렵에 독수리까지 폐사
청양군 야생생물관리협회는 지난달19일 목면 안심리 한 논에서 비실거리며 날지 못하는 독수리 1마리를 구조해 충남 야생동물구조센터로 보냈다. 이튿날인 20일에는 본격적 피해가 나타났다. 첫 발견지로부터 3km가량 떨어진 청남면 인양리 논에서 사고를 당한 독수리13마리가 발견됐다. 6마리는 다행히 산 채로 구조됐지만 나머지 7마리는 이미 죽은 상태였다.
 
사흘째 되던 날인 21일에는 충남 야생동물 구조센터 재활관리사들이 현장으로 출동했다. 겨우내 단단하게 굳었던 논바닥이 봄기운에 녹기 시작해 질척거렸다. 지푸라기 몇 가닥 사이로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있는 독수리는 가까이 다가가도 꿈쩍하지 않았다. 고개를 옆으로 떨군 채 눈꺼풀만 깜빡 거릴 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독수리를 품에 안은 재활관리사는 독극물에 의한 중독증세가 의심된다고 했다. 근처 논바닥에서는 죽은 독수리 사체가 속속 발견됐다.
농약밀렵에 독수리까지 폐사
독수리 폐사의 궁금증을 풀어줄 실마리를 찾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독수리가 구조된 논에서는 죽은 가창오리가 잇따라 발견됐다. 맹금류에게 뜯어 먹힌 듯 가창오리 사체는 대부분 훼손돼 있었고, 심한 경우 날갯죽지와 깃털만 남아있기도 했다. 논 둑 군데군데에는 누군가 고의로 뿌려놓은 듯한 볍씨들도 눈에 띄었다.

사흘 간 이곳에서 사고를 당한 독수리는 20마리, 이 가운데 11마리가 죽은 채 발견됐고, 나머지 9마리는 다행히 구조돼 목숨을 건졌다. 죽은 가창오리도 51마리나 됐다. 폐사원인을 찾기 위해 독수리와 가창오리는 국립환경과학원으로 보내졌다. 올 겨울 가금농장에 큰 피해를 준 조류인플루엔자<AI>검사부터 시작 했지만 사체에서 AI 바이러스는 검출되지 않았다.
농약밀렵에 독수리까지 폐사
농약검사는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맡았다. 검사결과 독수리와 가창오리 위에서 나온 먹이에서 농약성분인 카보퓨란이 나왔다. 카보퓨란은 벼농사에 피해를 주는 이화명 나방을 퇴치하는 해충방제제로 독성이 높은 물질이다.             

가창오리와 독수리 죽음의 연결고리가 풀렸다. 가창오리의 주 먹이는 볍씨다. 먹이를 찾으러 논바닥에 내려앉은 가창오리가 농약이 묻은 볍씨를 먹고 먼저 죽은 것이다. 죽은 동물의 사체만 먹는 독수리에게 가창오리 폐사체는 좋은 먹잇감이다. 가창오리가 농약에 중독돼 죽었지만 아무 의심 없이 먹은 독수리까지 2차 농약중독으로 함께 폐사한 것이다. 농약 중독 증세를 보여 구조된 독수리 9마리는 일주일간 치료를 받고 건강을 회복해 무사히 야생으로 다시 돌아갔다.
농약밀렵에 독수리까지 폐사
경찰은 누군가 고의로 오리류를 잡기위해 볍씨에 농약을 묻혀 논에 뿌려놓은 것으로 보고, 논 소유자와 목격자 등을 상대로 본격 수사에 나섰다. 독극물이나 농약 등을 살포하여 야생생물을 잡거나 죽이는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게다가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백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돼 처벌이 무겁다.
농약밀렵에 독수리까지 폐사
전국 12개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구조한 야생동물은 지난2천15년 기준 9천7백58마리에 이른다, 이 가운데 밀렵 등 인간의 불법행위나 부주의에 의해 조난당한 야생동물 수는 1천16마리로 10%가 조금 넘다. 전선이나 건물, 유리창, 철탑 충돌이 1천8백84마리, 자동차,열차 등에 따른 로드킬 피해도 1천2백91마리나 된다. 지난해에도 7월 까지 약 반년동안 7천6백31마리가 구조됐고, 밀렵에 따른 사고가 6백35마리에 이르는 등 피해가 매년 계속 되고있다.
농약밀렵에 독수리까지 폐사
농약이나 독극물에 의한 밀렵은 야만적 행위이고 2차 피해를 줄 수 있어 위험천만한 일이다. 독수리 뿐 아니라 육식동물인 삵도 안전하지 못하다. 사고당일 독수리가 폐사한 농경지 상공에서는 10여 마리의 독수리가 하늘을 빙빙 돌며 한참을 머물다가 어디론가 날아갔다. 무리에서 낙오된 동료 걱정 때문에 쉽게 발길을 떼지 못한 듯 했다. 독수리의 날개짓이 어느때보다 힘이 빠지고 슬퍼보였다. 이달 말쯤 번식지인 몽골로 돌아간 독수리들이 우리나라를 어떻게 이야기하고, 기억할지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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