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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내 휴대전화에 유령이?…'유령 진동' 부르는 사회

[라이프] 내 휴대전화에 유령이?…'유령 진동' 부르는 사회
'지이잉. 지이이잉.'

퇴근길, 휴대전화 진동이 울린 줄 알고 꺼내봤는데, 화면에 아무것도 뜨지 않았던 적이 있으신가요?

이렇게 휴대전화가 진동한 것처럼 착각하는 것을 '진동증후군', '팬텀(유령) 진동','유령진동증후군' 등이라고 합니다. 모두 가짜 진동을 느끼는 현상을 부르는 용어입니다.

오늘 SBS '라이프'에서는 '유령 진동'을 느끼게 되는 이유를 살펴봅니다.

진동증후군

진동증후군(vibration syndrome)은 20세기 초에 처음 보고되기 시작한 신체 질환의 일종입니다.

이 증상은 채석장이나 광산 등에서 전기톱, 드릴과 같은 진동기구를 오랫동안 사용한 노동자들에게서 처음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손과 팔에 나타나기 때문에 '손팔진동증후군'이라고도 했습니다.
진동증후군
보통은 전 세계적으로 진동기구를 사용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서 나타났지만, 2002년에는 진동장치가 달린 게임기에 빠졌던 영국의 한 어린이에게 이 증세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팔다리가 절단된 사람에게서도 이런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는데요, 절단된 팔이나 발끝에서 가려움을 느끼는 것처럼 실제 자극이 없음에도 있는 것처럼 느낍니다. 의학적으로는 '환영사지증후군'의 일종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다 요즘엔 휴대전화를 두고 이런 '유령 진동 증후군'이 등장한 겁니다.

불안함이 만들어낸 유령 진동

미국 미시간 대학 연구팀이 411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습니다. 그 결과 75%가 유령 진동을 느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팀은 실험자 중 대인관계의 불안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증후군의 수치 또한 증가했다고 밝혔습니다.

즉, 개인의 심리적인 불안감이 전화나 문자가 왔다고 착각을 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또 연락이 올 것을 기대하거나 예상하고 있다면 '유령 진동'을 느낄 확률이 더 높다고 합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로젠 교수는 이를 두고 일종의 불안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퇴근했지만 퇴근이 아니다…'유령 진동' 부르는 사회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불안하게 만들었을까요?

스마트 기기 때문에 더욱 벗어나기 어려워진 업무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최근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691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79.6%에 달하는 사람들이 '업무 시간 외에 업무로 연락을 받은 경험이 있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응답자의 재직 기업 형태를 보면 대기업(89.8%)이 가장 많았고 중견기업(83.3%), 중소기업(77.4%) 순이었습니다.

연락받은 이유로는 '급한 일일 것 같아서' (61.1%·복수응답)가 가장 많았습니다.

이어서 '업무에 지장을 줄 것 같아서' (35.1%), '업무 관련 연락을 받는 것은 당연해서' (31.1%), '안 받으면 불이익이 있을 것 같아서' (30.7%),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16.9%) 순이었습니다.
퇴근했지만 퇴근이 아니다…'유령 진동' 부르는 사회
또 업무시간 외 연락을 받은 직장인의 절반 이상(53.1%)은 연락을 받고 회사에 다시 복귀한 경험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업무시간 외에 업무 연락을 주고받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라는 물음에는 69.8%가 '매우 급할 경우에만 된다'고 답했다. '절대 안 된다'는 17.7%였습니다.

결국, 받고 싶지 않지만 받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겁니다.

최근 직장 상사의 밤낮없는 업무지시로 스트레스가 많다는 한 직장인은 "사무실을 나서는 이후부터는 완전히 업무에서 떠나고 싶은데 상사의 전화나 문자가 오면 그 순간 다시 업무로 돌아가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또 휴일에 연락을 제대로 받지 않아 상사에게서 꾸지람을 들었다는 직장인도 있습니다.

직접적인 지시는 아니지만 이른바 '단톡방(단체 카카오톡 방)'에 밤낮없이, 휴일 없이 올라오는 상사의 메시지에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실상 업무 시간이 연장되는 상황이 벌어지지만 대부분 이에 대한 수당도 보장되지 않습니다.

이런 사회 상황은 자연스럽게 '불안'을 가중시킵니다. 중요한 전화, 문자, 이메일 등을 꼭 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등이 생기면서 '유령 진동'을 느끼게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우스터 대학 연구팀은 휴대전화를 빈번하게 확인하는 사람일수록 그 스트레스 정도가 높고, 심각한 경우에 '유령 진동'을 더 잘 느낄 수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처음에는 착각 정도로 생각하지만, 그 빈도가 높아지면 두통, 수면 장애, 불안감 등의 심리적 장애까지 초래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처음에는 착각 정도로 생각하지만, 그 빈도가 높아지면 두통, 수면 장애, 불안감 등의 심리적 장애까지 초래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유령 진동 증후군'에서 벗어나려면

스마트 기기의 발전만큼 이런 불안함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사회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프랑스에서는 새 근로계약법에 따라 '접속 차단 권리'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직원이 50명 이상인 사업장에서는 근무 시간 외에 이메일 등을 보내거나 받지 않을 권리를 놓고 직원들과 협상하고 이를 명시하도록 의무화한 겁니다.

국내에서도 LG유플러스는 밤 10시 이후에는 업무 전화나 카톡 메시지 전송을 금지해 화제가 됐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른바 '퇴근 후 카톡 금지법'이라 불리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된 상태이긴 합니다.

상황이 심각하다면, 조금 용기(?)를 내서 개인적으로도 노력할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다. 하루에 한두 시간 정도는 의식적으로 휴대전화를 다른 곳에 두거나 전원을 꺼두는 것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습니다.

(기획·구성: 김도균, 송희 / 디자인: 임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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