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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그대가 쥔 검은 누구를 위한 검인가"…북한 '주몽'에 나타난 민족주의

[취재파일] "그대가 쥔 검은 누구를 위한 검인가"…북한 '주몽'에 나타난 민족주의
주몽이 거무루의 앞길을 막아섰다. 거무루는 부여에서 만들어진 무기들을 몰래 고조선에 건네주러 가는 길이었다. 고조선은 중국 세력과 전쟁 중이었고 부여는 이 싸움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주몽: “이 병장기들로 부여 왕실을 해치려 하오이까?”

거무루는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가 죽기 전까지 해모수를 따랐던 인물이다. 거무루는 해모수가 민족을 위한 길을 걸었던 사람이라며 주몽에게 일갈한다.

거무루: “왕자님의 아버님은 부여 왕실 하나만을 위해 검을 들지 않았소이다. 외적에게 짓밟히는 겨레를 위해 검을 들고 한 몸을 내댔던 분이었소이다. 난 겨레를 위한 그 뜻을 따랐을 뿐이요. … 비록 역적으로 몰린다 해도 이 창검들은 해모수 장수가 간 길을 따라 이 거무루 끝까지 가져갈 것이요. 헌데 이 일이 어찌 죄가 되며 이 길을 어찌 주몽 그대가 막아나서는 것이요. 지금 그대가 쥐고 있는 검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검이요. 겨레를 위해서인가. 부여 왕실을 위한 것인가.”

이상은 북한이 새해 들어 조선중앙TV를 통해 방송하고 있는 만화영화 ‘고주몽’의 일부분이다. 앞서 내용에서 보듯 이 작품에는 민족주의가 강하게 배어 있다. 주몽이 살던 당시 고조선과 부여, 옥저, 그 아래 삼한까지 같은 민족이라는 개념이 있었는지조차 불분명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한반도와 만주를 주 무대로 활동했던 나라들이 ‘동족’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묘사된다. 

● 민족주의는 근대적 개념이지만, '한중일'은 조금 달라

민족주의는 사실 근대국가의 성립과 함께 형성된 개념이라 한다. 국가의 내적 통합을 위해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국민들을 통합시키는 것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여러 민족이 한 국가를 이루거나 한 민족이 여러 국가로 나뉘어있는 유럽의 경우를 보면 민족국가라는 말 자체가 지고지순한 개념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일반적인 민족주의 개념과는 조금 다른 각도로 해석되어지는 곳이 한중일 3국의 동북아이다. 민족주의를 연구한 서구 학자들 중에서도 한중일은 오랜 역사 동안 별도의 국가를 이뤄와 민족주의 정서가 강한 특이한 사례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한중일 내부적으로는 각각 나라가 갈라졌다 합쳐지는 여러 변동들이 있었지만, 한중일 전체적으로 보면 오랜 역사 동안 개별적인 국가를 이뤄왔다는 뜻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에는 1세기 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해방 후에도 완전히 하나의 국가를 이루지 못한 민족적 한이 기저에 깔려 있다. 2차대전의 가해자가 우리가 아님에도 피해자인 우리가 분단돼야 했던 민족사적 질곡이 우리의 가슴 속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남북의 체제와 이데올로기가 다르지만, 남북을 관통하고 있는 핵심 정서는 바로 이 민족주의일 것이다.
조선중앙 TV 고주몽 만화 화면
● 정권에 의해 이용되는 민족주의는 위험

하지만, 민족주의는 경우에 따라 상당히 위험해질 수 있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민족주의가 배타적으로 흘러 다른 민족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이 단적인 예이다.

북한도 민족주의를 정권 강화에 이용하고 있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김일성 일가가 세습하며 절대적인 권력을 누리는 왕조적 전체주의 체제지만, 이러한 독재를 민족주의라는 틀로 미화해오고 있다. 남북의 분단을 끝장내고 민족의 통일을 이루기 위한 지도자의 상으로 김 씨 일가가 미화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국제사회 이단아의 길을 걷더라도 주민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민주적인 제도를 유지해왔다면 제대로 된 민족주의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권의 불모지이자 김 씨 일가 이외의 것들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현대판 감옥으로 체제가 변질되면서 북한이 주장하는 민족주의는 빛을 바랜 상태다.

● 민족주의적 에너지가 통일의 바탕될 것

필자는 그러나 북한이 강조하는 민족주의가 통일 국면에서는 어느 정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해 본다. 우리가 바라는 통일은 물론 자유민주주의적 통일이지만, 통합의 구심력을 이루는 중요한 에너지로 민족주의 정서가 작용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일제에 의해 국권을 빼앗긴 질곡의 역사가 궁극적으로 해소되는 지점은 통일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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