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피겨여왕 떠난 은반 평정한 러시아 메드베데바

러시아의 피겨 스타 예브게니아 메드베데바(18세)가 지난 28일(한국 시간) 체코 오스트라바에서 막을 내린 2017 유럽 선수권 여자 싱글에서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을 합친 총점에서 무려 229.71점을 받아 지난 2010년 밴쿠버 올림픽 때 피겨여왕 김연아가 금메달을 따내며 세운 역대 최고점 기록(228.56점)을 1.15점 경신했습니다.
1999년 생으로 지난 시즌(2015-2016)에 시니어 무대에 데뷔한 메드베데바는 데뷔 시즌부터 그랑프리 파이널과 유럽 선수권, 세계 선수권을 잇달아 제패해 세계를 놀라게 하더니 2년 차인 올 시즌에는 아예 적수가 없는 압도적인 행보를 이어 가고 있습니다. 그랑프리 2차 대회와 4차 대회, 그랑프리 파이널에 이어 이번 유럽 선수권까지,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는데, 특히 총점 220점 밑으로 떨어진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 2016-2017 시즌 메드베데바 성적
메드베데바는 한 팔을 머리 위로 올리고 뛰는 '타노 점프'로 가산점을 챙기고, 고난도 점프를 후반에 집중 배치하는 전략으로 매번 220점 이상의 고득점을 받고 있습니다. 여자 프리스케이팅의 경우 7개의 점프 과제를 소화하는데 2분 이후의 후반부 점프는 10% 가산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많은 선수들이 전반부에 3개의 점프를, 후반부에 4개의 점프를 구성합니다. 후반부에는 아무래도 체력적인 부담이 크기 때문에 아무리 가산점이 있다고 해도 자칫하면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기 때문인데요. 이에 비해 메드베데바는 전반부에 2개, 후반부에 5개의 점프를 배치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기술과 체력 면에서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그런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죠. 웬만해서는 큰 실수가 없는, 대회마다 기복 없는 연기를 펼치고 있는 것도 메드베데바의 큰 강점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있습니다. 메드베데바가 이번에 김연아의 역대 최고점을 넘어서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연아가 만들어 낸 대기록의 가치가 퇴색되는 것은 아닙니다. 7년 전과 지금의 점수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기 때문입니다. 세계 피겨는 2014년 소치올림픽 시즌이었던 2013-2014 시즌을 기점으로 이른바 '점수 인플레'라고 부를 정도로 과거에 비해 점수가 크게 후해졌습니다. 판정 기준 자체부터 좀 달라졌는데, 회전수 부족과 롱 에지(잘못된 날 방향으로 점프하는 것)에 대해 과거보다 훨씬 너그러워진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지난 2009년 세계 선수권 때 김연아 선수가 여자 선수로는 역대 처음으로 총점 200점을 돌파했을 때만 해도 200점은 '꿈의 점수'로 여겨졌는데, 이제는 김연아와 메드베데바를 비롯해 200점 고지를 넘어 본 선수가 무려 17명이나 됩니다. 그리고 그 17명 가운데 2014년 이후에 개인 최고점을 낸 선수가 14명입니다. 최근 3년 사이 점수가 얼마나 후해졌는지, 그리고 7년 전 김연아가 작성한 228.56점이 왜 '불멸의 기록'으로 불렸는지를 실감케 하는 대목입니다.  
▲ 역대 여자 싱글 개인 최고점 순위

이런 '점수 인플레' 와중에도, 러시아 선수들의 강세 속에서도, 메드베데바의 존재감은 단연 돋보입니다. 오는 3월 헬싱키(핀란드) 세계 선수권에서 2년 연속 우승이 유력하고, 1년 앞으로 다가온 평창올림픽의 가장 강력한 금메달 후보이기도 합니다.  

 
메드베데바 엑소 <중독(Overdose)> 영상  (출처:메드베데바 유튜브 채널)


    
메드베데바 방탄소년단 <불타오르네(Fire)> 영상  (출처:메드베데바 유튜브 채널)


메드베데바는 그룹 엑소(EXO)와 방탄소년단(BTS)의 열렬한 팬이라며 음악에 맞춰 춤추는 영상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려 눈길을 끌기도 했는데, 피겨여왕이 떠난 은반을 평정한 이 18세 소녀가 내년 평창에서(정확하게는 강릉 '아이스 아레나'가 되겠군요. ^^) 국내 팬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