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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 본 전시] 만약 사임당이…그녀에 대한 '가정'

서울미술관, '사임당, 그녀의 화원'전

[1월에 본 전시] 만약 사임당이…그녀에 대한 '가정'
"여자라고 해서 금강산에 가보지 못한다는 건 불공평합니다!"

시작 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사임당, 빛의 일기'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드라마 자체가 워낙 '핫 이슈'이다 보니, 덩달아 '사임당'에 대한 관심도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듯 하다. 그동안 연구도 많지 않았다고 하는데, 최근 들어서는 어디서 다 나왔나 싶을 정도로 관련 도서도 많이 출간되고 있고, 사임당의 그림을 모아놓은 전시까지 열리고 있다. 
SBS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
사임당을 '현모양처'가 아닌, '예술가'로 조명 한다는데, 드라마를 보니 등장인물만 실존 인물이지 내용은 사실상 픽션에 가까워 보인다. 그 와중에도 드라마에서 귀에 쏙 박힌 대사가 있다. 어린 시절 사임당이 아버지에게 따져묻는 질문. 금강산에 너무나도 가보고픈 소녀의 불만!

'안견의 금강산도'(실존 작품이 아닌, 허구의 작품)를 보고 싶어 하고, 이런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던 사임당. 사임당이 그린 그림이라 하면, 초충도 정도가 알려진 게 전부이다. 벌레 그림을 그려서 마당에 널어놓았더니 닭이 와서 쪼아먹었다는 바로 그런 그림말이다. 그 정도로 세밀한 묘사와 생생한 표현이 가능했던 화가라고 하는데, 사실 그녀는 산수화에 관심도 많고, 또 잘 그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녀의 산수화는 남아 있는 게 거의 없다. 일단 산수화를 그리려면 직접 답사를 다녀야 하는데, 조선시대 아녀자가 이 산 저 산을 다닌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가까운 산의 풍경을 본다거나, 다른 사람의 그림을 보고 그릴 수는 있었을텐데,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사임당이 누구인가, '성리학의 대부' 율곡 이이 선생의 모친 아닌가. 그런데, 사임당의 산수화 속에는 불교 사찰이나 승려가 등장하는 게 문제였다. 성리학의 뿌리격인 사임당이 불교라니, 당대 성리학자들에게는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결국 정치적인 이유로 산수화는 묻혀졌고, 초충도가 더 부각되게 된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아직 조선시대 사임당의 모습이 많이 등장하지 않긴 했지만, 사임당의 그림은 종종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드라마에 나오는 그림들은 실제 사임당 것으로 알려진 그림 이미지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 이미지의 출처 중의 한 곳인 서울미술관이 '사임당'을 예술가로서 조명한 전시를 열었다. 의도한 건 아니라는데, 공교롭게도 드라마의 시작과 시기가 맞아 떨어진다. 서울미술관은 국립중앙박물관, 오죽헌, 독립기념관 등과 함께 사임당의 그림을 '꽤' 가지고 있는 미술관이다. 사립미술관으로서는 최대 규모를 소장하고 있지 않나 싶다. 이번 전시에는 사임당의 '트레이트 마크' 초충도 14점과 미술관 최초로 공개하는 '묵란도' 1점, 모두 15점이 포함되어 있다. 
신사임당, 묵란도, 연도미상, 비단에 수묵, 92.5*45cm

아무래도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묵란도이다. 알록달록한 초충도와는 달리 먹의 농담만으로 표현한 사임당의 알려진 '거의 첫번째 수묵화'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지난 2005년 작품을 감정해주는 한 TV프로그램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아랫 부분의 묵란도에, 윗부분에 발문이 붙어 있는데, 이게 바로 17세기 대학자 우암 송시열이 쓴 글이다. 송시열은 "혼연히 자연을 이루어 사람의 힘을 빌려 된 것은 아닌 것 같음이 이렇거늘..."며 극찬을 쏟아 놓았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과연 그 율곡 선생을 낳으심이 당연하다". 자신의 스승 율곡의 어머니, 결국 '우리 라인은 어머니부터 남다르다'는 건 강하게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고, 스승을 더욱 추켜올리고자 한 의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은 그 자체로도 나무랄 게 없다. 묵란도로 잘 알려진 추사 김정희,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것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여성 작가라는 느낌 탓인지 좀 더 부드러워 보이기도 하고, 굴곡도 살아 있는 것만 같다. 다른 묵란도에서는 보기 힘든 꽃도 그려져 있고, 나비도 있다. 사임당의 화훼도적인 특징이 잘 묻어난다. 이 작품은 당시 TV프로에서 '1억 3천만 원'의 가치를 가졌다는 감정 결과를 받았다. 이후 이번이 대중에는 처음으로 공개되는 자리이다. 안타까운 건, 송시열의 발문을 그림에 같이 표구해 넣으면서 사임당 그림 속 나비가 반쯤 잘려나갔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당대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율곡의 어머니라 해도 '여성 작가'보다 '남성 성리학자'가 더 중요했지 않겠는가.
초충도, 연도미상, 종이에 채색, 35*25cm
 
이번 전시에 나온 초충도 가운데 10점은 검정 바탕에 그려진 그림이다. 왜 검정 종이인가. 이 종이는 '감지'라고 해서 감물을 입힌 종이이다. 보통 불교에서 불경을 금으로 적어 넣는 금사경을 제작할 때 쓰는 종이인데, 병충해에 강하고 보존이 잘 된다는 장점이 있다. 감지는 비싼 종이였기에 당대 지체높은 양반집에 '선물용'으로 갔을 것으로 짐작된다. 사임당은 사대부 규수였지만, 취미로만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잘 알려져 있듯이 남편 이원수는 그야말로 '원수'처럼 능력이 없었기에, 사임당은 사실상 '워킹맘'으로 살아야만 했다. 양반 집안인지라 거느리는 식솔은 100여 명이나 되고, 남편은 마흔 넘어까지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채 빌빌거리고 있었다(심지어 두 집 살림도 차렸다고 한다!). 사임당은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돈을 받고 팔지는 않았겠지만, '선물용'이라고 하여 한 점씩 전달하였고, 현물 등으로 보답을 받았던 것 같다. 사임당의 그림은 당대 왕이었던 숙종의 손에도 들어갔었는데, 숙종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을 정도였다 한다. 

사임당이 그린 초충도는 민화의 일종이다. 여성들의 장식용 그림으로, 일단 예쁘고 요소요소에 다 의미가 있다. 사임당은 꽃과 열매, 벌레와 동물을 주로 그렸는데, 이 그림에는 수박과 패랭이 꽃, 나비가 있고, 그 아래에는 쥐 두 마리가 수박을 파먹고 있다. 씨가 많은 수박은 '생명'의 상징 아닌가. 그렇다고 이 그림이 '다산'의 기원을 담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쥐가 열심히 먹고 있는 건, 수박의 과육만이 아니다. 씨앗까지 알뜰하게 먹고 있다. 생명을 담고 있는 씨앗과 그걸 집어 삼켜서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쥐, 돌고 도는 생과 사의 순환을 얘기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어쩌면 사대부 댁 지체높은 여인으로 태어나 능력없는 남편을 만나 고생하고 사는 자신의 삶이 '수박과 쥐'의 관계와 같다고 빗댄 건 아닐까. 
초충도, 연도미상, 종이에 채색, 36*25cm

항상 민화를 보면서 느끼는 건, 전통미 속에 현대미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사임당의 그림 속에서 나는 만화 '라바'의 원형을 찾은 것 같았다. 화면 아래 기어가고 있는 애벌레! 삐쭉 솟은 두 더듬이와 통통한 몸통, 쫑긋 말려 올라간 꼬리, 몸이 닳도록 열심히 기어가고 있는 애벌레의 모습이 엄청 귀엽다. 마치 오늘날의 일러스트 같은 느낌이지 않은가. 꼼꼼한 관찰력에, 정교하고 세밀한 묘사, 대상을 바라보는 사임당의 따스한 시선까지 느껴지는 그림이다.
초충도, 연도미상, 종이에 채색, 27*24cm
 
일반 종이에 그린 그림 4점은 사임당의 그림 실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보통 그림을 그릴 때는 먹선으로 스케치를 하고, 그 안에 채색을 하는데, 이 그림들에서는 스케치가 보이지 않는다. 윤곽선을 따로 그리지 않고 붓으로 바로 그림을 그려넣은 '드로잉 기법', 이른바 몰골법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스케치 없이 한 번에 그려야 하기에, 구도와 색채에 대한 구상은 이미 끝내놓고 한 번의 실수도 하면 안되는 작업, 사임당은 그 어려운 것도 해내는 화가였던 것이다. 

내가 여성이어서 그런지, 사임당의 전시를 보며 그녀의 작품도 작품이지만, 그녀의 삶을 더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만약 사임당이 남자였더라면... 그 훌륭한 그림 실력으로 안견, 정선에 버금가는 산수화를 그리지 않았을까. '안견의 금강산도'가 아니라 '사임당의 금강산도'가 존재할 수 있지 않았을까. 

만약 사임당이 능력있는 남편을 만났더라면... 좀 더 마음 편히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 예술가에게 요구되는 절실함이 없어서 오히려 그림을 소홀히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만약 사임당이 딸만 낳았더라면... 당대 내로라하는 성리학자들이 그녀의 그림에 극찬을 늘어놓았을까. 실력이 출중하다고 해도,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면 묻혀버리고 말았을텐데. 잘난 아들을 둔 덕에 그나마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건 아닐까.

만약 사임당이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잘 나가는 여류 화가로 주목받고 있었을까. 

 이 모든 '만약'이 실현되었다면, 지금 우리는 그녀의 작품을 볼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신사임당 작품으로 전하는 작품이 아닌, 확실한 신사임당의 작품을 보았을 수도. 또 어쩌면 신사임당의 '금강산도' 혹은 '설악산도'를 볼 수 있었을 지도. 분명한 건 이 모든 '만약'이 실현되지 않았음에도, 자신의 호를 직접 지어 당당하게 불렀던 그녀를(실제로 사임당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당대 뭇여성들이 그렇듯이... '인선'이라는 이름은 진짜 이름이 아니라 한 도서에서 언급된 이름으로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작가로서의 그녀를, 지금이라도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 아닐까.

(서울미술관 '사임당, 그녀의 화원'전)
*** '사임당, 그녀의 화원'전
-서울미술관, ~6월 11일까지
-성인 9천 원, 대학생 7천 원, 학생 5천 원, 어린이 3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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