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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승계라는 이름의 '발목 귀신', 삼성의 앞으로 20년은?

- '대기업 회장님 전상서' 3부작 마지막 편

[취재파일] 승계라는 이름의 '발목 귀신', 삼성의 앞으로 20년은?
이재용 부회장을 처음 본 건, 3년 전 쯤 서울 예술의 전당 발레 공연장이었습니다. 인형같이 예쁜 초등학생 딸 손을 꼭 잡고 환하게 웃고 있던 모습은 영락없는 '딸바보' 아빠. 그런 딸과의 오붓한 순간에 끼어든 모 신문사 기자의 취재에도 정중함을 잃지 않던 모습. 그간 검찰청 포토라인에 섰던 여러 대기업 회장님들만 봤던 전직 법조기자로서는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때는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전면에 나서기 전이었습니다.

● 안 되는 걸 되게 하려던 '무리수', 그 끝에서 만난 박근혜-최순실과 삼성 

"최선을 다 했는데도 안 되면 어떻게 할 건가요?"
"......"
"뛰어 내리세요"

 
모 신문 인터넷 기사 속 이재용 부회장의 모습은 참 낯설었습니다. 2015년 중반 쯤 사업현안을 보고 받던 이 부회장의 물음에 대답 못 하던 삼성전자 임원에게 '뛰어 내리라'고 했다는 겁니다. 회의가 열린 곳이 삼성전자 사옥 34층이었다죠. 저는 제가 살고 있는 8층 아파트에서 내려다 보는 것도 아찔하던데 말입니다. 지난해 10월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 등기이사로 선임돼 경영 전면에 나선 뒤 나온 기사였는데요. 그래서 사석에서 만난 삼성그룹 임원들에게 몇 번 물어봤습니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한 말일 수도 있고, 살벌한 분위기였을 수도 있으니까요. 분위기라도 알고 싶었지만 '허허...', '약간 와전된..' 이 정도 반응 외에 더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안 되는 걸 되게 하지 못하면 뛰어내려라. 이재용 부회장이 이끄는 삼성그룹, 적어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삼성그룹의 당면 현안은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일 것입니다. 그런데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쓰러지면서 승계 구도 완성을 놓고 시간에 쫓기게 되었을 것이고요. 그 과정에서 '안 되는 걸 되게 하려던 무리수', 그 끝이 최순실 국정농단에 연루된 삼성의 오늘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네이버 포스트 '매거진 D' - “아버지 뛰어넘으려는 조급증, 화 부를 수 있다”
삼성'불구속 수사 다행
● 20년 간 승계라는 '발목 귀신'에 끌려다닌 삼성
 
1994년 당시 유학중이었던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는 부친 이건희 회장에게 상속 받은 현금 60억 8천만 원 중 16억 원을 상속세로 냈습니다. 나머지 돈으로 에스원, 삼성엔지니어링 등 삼성 계열사 주식을 사고 팔며 15배가 넘는 시세차익을 올렸습니다. 그 돈 중 48억 원으로 1996년 비상장 회사였던 삼성 에버랜드 주식을 매입합니다. 이건희 회장이 고발되고 2008년 '삼성 특검'으로까지 이어졌던 그 유명한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매입' 사건입니다. 
 
삼성그룹은 웬만한 전문가들도 한참 들여다봐야할 정도로 복잡한 '순환출자구조'로 연결돼 있다는 얘기는 많이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숫자는 최대한 생략하고 설명드리겠습니다. 삼성에버랜드는 200조 자산을 가진 삼성생명의 최대주주이고,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최대주주, 전자는 삼성카드, 삼성카드는 또 에버랜드의 최대 주주입니다.
 
즉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 이렇게 도돌이표가 되는 건데요. 이재용 부회장이 상속세 16억 원만 내고 현재 8조 원에 달하는 재산을 보유하면서 삼성전자를 승계할 수 있는 단초가 된 것이 바로 '삼성 에버랜드'입니다.  
 
1996년 삼성 에버랜드 전환 사채 헐값 매입 논란 이후, 20년이 넘도록 삼성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게 바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문제입니다. 승계라는 '발목 귀신'을 빨리 해결하기 위한 '무리수'는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 총수 중 첫 구속영장 청구 대상이 되는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정유라
●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무리수, 그리고 정유라의 명마
 
삼성전자의 외국인 주주 지분은 50%가 넘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은 약 0.6%, 부친 이건희 회장 3.54%, 모친 홍라희 리움미술관 관장 0.77%, 세 명의 지분은 합쳐봐야 4.91%입니다. 단일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삼성전자 지분 9% 보다도 적습니다.
 
경제개혁연대 소장인 김상조 교수는 SBS와의 통화에서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의 목표는 이 부회장에게 외부 세력의 M&A 시도가 불가능할 정도의 지분율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삼성전자는 시가총액 250조 원이 넘는 글로벌 기업입니다. "이런 기업의 지배권을 M&A가 불가능할 정도로 가지려는 불가능한 일을 하려다 보니까 무리수를 두고 초법적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김상조 교수는 덧붙였습니다.
 
삼성전자에 대한 안정적 지배력 확보, 여기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서 문제가 된 '삼성물산'이 등장하게 됩니다.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보면, 삼성생명 7.5%, 삼성물산 4.2% 정도 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삼성에버랜드(=제일모직으로 사명 변경)→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 순환출자구조 속에서 삼성에버랜드를 통해 삼성생명을 지배하는 것으로 삼성전자 7.5% 지분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연결고리 속에 없는 삼성물산의 삼성전자 지분을 확보할 필요가 생긴 겁니다. 그래서 에버랜드가 이름을 바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추진하게 됩니다. 이재용 부회장과 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은 제일모직(옛 에버랜드) 주식은 39% 정도 보유했지만 삼성물산 주식은 한 주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일모직 주식은 비싸게, 물산 주식은 싸게 교환하는 게 이재용 부회장에게 유리한 겁니다.
 
시청자분들이 많이 들어보신 '제일모직 : 삼성물산 = 1: 0.35' 주식 교환 비율이 이런 이유로 나온 것인데요. 박근혜 대통령이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였던 국민연금을 동원해 이런 주식 교환 비율을 용인해주라고 지시한 것이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 문제를 도와준 것이라고 특검이 판단한 이유입니다. 국민의 노후자금 '국민연금'은 수천 억 손해를 보는 사이 삼성은 수백 억을 최순실 씨에게 쓰고 정유라 씨 명마 구입비로 썼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민들이 분노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1996년 에버랜드 사건부터 2017년 1월 뇌물죄로 삼성 오너 중 첫 구속영장 청구까지, 이렇게 20년이 되도록 삼성의 발목을 잡고 있는 무리수의 근원에는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가 있습니다. 
 
● "삼성물산은 승계의 완성 아니다"…삼성, 앞으로 20년은?
 
2015년 7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해 지금의 '삼성물산'이 되면서, 이재용 부회장 일가와 삼성생명, 삼성물산, 삼성화재가 가진 삼성전자 지분은 18%까지 올라갔습니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 지분 1%를 늘리는 데 2조 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1996년 16억 원의 상속세를 낸 것 외에는,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삼성전자의 지배력을 이렇게 끌어올려 왔습니다.
 
현재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에서 뇌물죄의 주된 범죄 혐의 중 하나가 삼성물산 합병 관련이다보니, 삼성물산 합병이 마치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완성시킨 종착역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12조 원에 이르는 이건희 회장의 재산 상속에 5조 원 이상의 상속세가 예상되고 있는 데다, 삼성전자를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남아 있습니다. 삼성그룹의 승계 작업은 계속될 것이란 뜻입니다.
 
삼성 입장에서는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이 마치 '제2의 삼성 특검'처럼 기업만 겨냥한다고 억울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재용 부회장 수사 과정이나 구속영장 실질 심사 과정에서도 이런 점을 강하게 어필해왔지요. 본질은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대통령에게 기댈 필요가 없었다면, 무리수의 '끈'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승계라는 발목 귀신에 붙들려 20년을 끌려다닌 삼성이 순리대로 승계작업을 진행했다면 어땠을까요? 삼성전자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상속세 달랑 16억 원이란 비난과 비판이 없었으면 어땠을까요? 정경유착의 고리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는, 전국민의 전폭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는 '국민기업'이었으면 어땠을까요? 그랬다면 일개 비선 실세 민간인인 최순실 씨가 글로벌기업 삼성전자의 사장에게 말을 사달라, 독일로 오라 가라 할 수 있었을까요? 매년 삼성이 연말 불우이웃돕기 성금도 가장 많이 내고, 사회공헌 활동도 가장 광범위하고 활발하게 하는데도 왜 삼성은 '존경받는 기업',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지 못할까요?
 
이재용 부회장의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정권은 끝나지만 삼성은 영원하다, 정권은 안 무서워도 삼성은 무섭다"며, 법원이 영장을 기각할 것 같다고 말했던 취재원이 있었습니다. 법원이 그런 고려야 했겠습니까 만은, 그의 예상대로 영장은 기각됐고 이재용 부회장은 구속 위기를 면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출국금지 상태의 피의자 신분이고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형사재판도 받게 될 겁니다. 기나긴 사법 절차가 끝나더라도 삼성은 계속될 것이고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활동도 계속될 것입니다. 이재용의 '넥스트 20년'은 어떤 모습일까요. 적어도 '편법 승계'라는 20년 묵은, 삼성 잡는 발목 귀신과는 작별해야 하지 않을까요.
 
 ● '미완의 전상서'를 마치며
 
기자들이 '기사를 갈아 엎었어'라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미 써 놨던 글을 수정하는 게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다시 쓴다는 얘기입니다. 한번 썼던 글이기 때문에 원본 생각이 자꾸 나면서도 그것과 다르게 써야 하기에 갈아엎고 쓰는 게 더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이번이 그러했는데요. 삼성 이재용 부회장 편은 네 번이나 갈아 엎었습니다. 
 
이 글은 원래 편지글 형식으로 시작했던 '대기업 회장님 전상서' 3편 중 마지막 기획이었습니다. 앞서 1편과 2편은 지난해 12월 대기업 총수 9명이 국회에 나란히 출석한 것을 계기로 현대차 정몽구 회장과 SK 최태원 회장에 대한 예전 법조기자 때 얘기를 한보따리 풀어봤습니다.
 
▶ [취재파일] 회장님들 안녕하십니까…'경제 신생아'의 회장님 전상서
▶ [취재파일] 반복되는 흑역사…회장님들 정말, 안녕하신가요?

국회 출석 당시 이재용 부회장 편도 편지글 형식으로 완성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후에 출국금지되면서 한번 갈아엎고, 특검 소환 때 또 갈아엎고, 그러고 바로 영장실질심사가 있어서 다시 갈아엎어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편지글은 사라지고 설명문과 논설문의 중간 쯤 어디로 흘러오게 됐습니다. '미완의 전상서'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대기업 회장님 전상서'를 또 써야 할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며 3부작 마지막 편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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