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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일본 내 우리 반가사유상들 비교해보니

지난달 26일 대전지방법원은 일본 쓰시마의 한 사찰이 도난당했던 고려시대 금동 관음보살좌상을 불상의 첫 봉안 사찰인 충남 부석사에 돌려주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불상이 정상적이지 않은 과정에서 일본으로 반출됐다"고 밝혔습니다. 판결을 둘러싸고 국내에서도 찬반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런데, 뉴스를 보면서 '정작 우리 불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는 적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본 내 우리 불상들의 사진을 찾아봤습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바로 묘덴지 불상이었습니다.

일본 묘덴지의 보살 반가사유상
지난달 7일 일본 교토의 작은 사찰 '묘덴지'에서 한반도 유래로 추정되는 '보살 반가사유상'(위 사진)이 발견됐습니다. 불상이 보관됐던 묘덴지는 1477년 창건됐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위 불상은 17세기 이후 작품으로 추정돼 왔죠. 그런데, 오사카대학 연구팀이 우리 국립중앙박물관 연구팀과 공동 조사를 벌인 결과 6-7세기 한반도에서 유래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 겁니다.

특히 X선 성분 분석에서 동 86%, 주석 10%, 납 2% 등으로 나온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주석과 납의 함유 비율이 6-7세기 한반도 불상과 거의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묘덴지는 불상의 소유 경위는 자신들도 모른다고 밝혔습니다. 이 불상도 약탈 논란이 있지만, 우리 법원은 국내에서 역사적 근거를 가지고 소유권 주장을 하는 사람이 없을 경우 일본 쪽의 소유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진실은 연구자분들께 맡기고, 우리는 불상을 좀 더 감상해보죠.
교토 묘덴지 '보살 반가사유상' 머리 부분(산케이신문 사진)
각종 장식물이나 머리카락 물결 표현 등을 보십시오. 정교하지 않습니까? 원래 금도금이 돼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후지오카 유타카 오사카대 교수(동양미술사 전공)는 "국보급 수준으로 평가할 수 있다. 보관(보배 장식 왕관)과 장식 등은 중국 수나라 기법이 엿보이고, 전체적인 자세와 머리카락 등에는 한반도 불상과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묘덴지 측은 불상의 가치와 도난 우려 등을 고려해 즉각 실물을 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절에는 이미 3D 입체 스캔 기법으로 만든 초정밀 모조품이 안치돼 있습니다.
국보 78호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금동 반가사유상들은 우리나라에도 있습니다. 국보 78호(위 사진)와 83호(아래쪽)입니다. 우선 국보 78호는 묘덴지 불상처럼 화려한 보관이 유명합니다. 형태는 좀 다릅니다. 손가락 두 개를 뺨으로 향한 모습은 비슷하네요. 묘덴지 불상은 '여의륜 관음상'이라 불렸습니다. 즉, 관세음보살상입니다. 우리 불상들은 미륵보살상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은 현세에 당장 고통받은 중생들을 도와주는 보살이고, 미륵보살은 내세의 중생들을 구제해주는 보살이라고 하네요. 경성 일본인 거류민단장 후지가미 사다스케가 1912년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에게 넘겼고, 이후 데라우치가 귀국 직전 총독부 박물관에 기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
78호가 정교함에서 앞선다면, 83호는 온화한 표정이 압권입니다. 2013년 뉴욕 매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전시됐을 당시 월스트리트 저널은 "세상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모습"이라는 평가했습니다. 보관은 둥근 산 모양이 세 개 연결된 삼산관입니다. 삼산관은 신라 불상의 주요 특징이라고 합니다. 옷자락의 입체적 표현도 신라 불상에서 많이 보입니다. 상체와 얼굴을 약간 앞으로 구부리고 있습니다.

상의는 걸치지 않았습니다. 무릎 위 엄지발가락의 경우 약간 구부러진 것이 국보 78호보다는 묘덴지 불상을 닮았네요. 왼쪽 발아래에는 발판이 있습니다. 묘덴지 불상은 발판이 없군요. 1912년 이왕가 박물관이 일본인 수집가로부터 구입한 겁니다.
국보 83호 머리부분
국보 83호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일본 고류지의 목조 미륵 반가사유상(아래 사진)입니다. 일본 국보 등록 1호입니다. 일본서기에는 "623년 7월 신라에서 보내온 불상을 '하다테라(진사/고류지 옛 이름)'에 모셨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신라에서 온 불상이 바로 고류지 미륵 반가사유상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불상의 재질이 소나무, 특히 경북 봉화군에 많은 적송으로 밝혀진 점도 한반도 유래설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일본 고류지 목조 미륵 반가사유상
머리의 삼산관, 얼굴 표정, 상의를 걸치지 않은 상체, 바닥의 연꽃 발판 등은 우리 국보 83호와 거의 똑같습니다. 동그라미 모양의 오른손 손가락들과 왼손이 놓인 위치, 목걸이가 없는 것 정도가 다릅니다.

내친 김에 직접 도쿄 국립박물관도 찾아가 봤습니다. 한반도 유물들이 전시된 곳은 동양관 10층입니다. 전시공간이 크지 않기 때문에 도쿄국립박물관은 한반도 유물 3,000여 점 가운데 일부를 돌려가며 전시하고 있습니다. 운 좋게 삼국시대 미륵 반가상(아래 사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도쿄국립박물관 내 한국 반가사유상(오쿠라 기증)

조선 최대 전기회사 사장이었던 오쿠라 다케노스케가 한반도에서 수집해간 겁니다. 머리의 보관이나 상의의 어깨선, 그리고 허리띠의 모양까지 우리 국보 78호와 비슷한 분위기입니다. 오쿠라가 한반도에서 가져간 유물은 3,000여 점에 이릅니다. 그 아들이 이 가운데 1,030점을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했고요, 나머지 2,000여 점은 오쿠라슈코칸이라는 개인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위 미륵 반가사유상에도 '오쿠라슈코칸 기증물'이라는 설명이 붙어있습니다.

일본으로 건너간 우리 불상의 상당수는 '일본인 수입가'가 입수한 겁니다. 돈을 주고 입수했는지, 기증을 받았는지, 도굴인지, 약탈인지 확실치 않았습니다. 부석사 불상을 포함해 우리 불상들에 남겨진 아픈 역사인 셈입니다. 다음 이야기에선 도쿄 국립박물관 내 조선 유물 기증자들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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