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의 '사소(思小)하게'] 아티스트들의 '별 것도 아닌' 세계

이주형 기자 joolee@sbs.co.kr

작성 2017.01.05 13:56 수정 2017.01.08 07:4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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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마지막 광화문 촛불집회에서는 ‘슈퍼 콘서트’로 불러도 좋을 만한 공연이 있었다. 한국적 록(이란 게 있다면)의 명곡인 ‘아름다운 강산’이 장장 17분에 걸쳐서 100만 촛불시민 앞에서 연주된 것이다.

이 곡을 만든 신중현 선생의 장남인 신대철이 기타와 편곡을 맡고, 전인권 밴드와 국악 연주자들이 가세했다. ‘신대철’과 ‘전인권’이라는 상징적 아티스트가, ‘아름다운 강산’이라는 상징적인 노래를, ‘촛불시민’이라는 상징적 관객을 앞에 놓고, ‘광화문’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에서 연주한 완벽한 콜라보 무대였다.

박사모가 한 집회에서 ‘아름다운 강산’을 부른 걸 우연히 보게 된 신대철이 '욱해서' 촛불집회 주최측에 “나를 섭외하라”고 페이스북에 올려 실제로 공연이 이뤄진 상황. 운 좋게도 연습부터 공연까지 전 과정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홍대 근처 합주실에서 국악 연주자들과 함께 한 처음이자 마지막 연습에서 신대철은 다소 예민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페이스북에다 “내가 제대로 된 버전으로 연주하겠다”고 공언한 데다 ‘아름다운 강산’을 국악기와 협연한 것도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고 짐작한다) 연습 초반 신대철은 국악 연주팀에 많은 주문을 했다.
연습 중인 신대철과 전인권한창 합주가 진행되던 때였다. 중간에 연주를 세운 신대철이 ‘미인’ 파트 연주에 대해 국악팀에 말했다.

“순서가 그렇게 가면 안될 것 같아. 먼저 기타가 차고 들어갈 테니까 다음에 들어오고 싶을 때 어디 중간쯤에서 들어오면 될 것 같아” (음, 프로이기 때문에 이렇게 애매하게 주문을 하기도 하지만 역시 어려운 주문이다)

어려 보이는 국악 편곡자도 지지 않고 맞섰다.

“어쨌든 같이 연주를 하면 좀 부딪힐 수도 있어서… 대금하고 태평소 순서가…”

신대철이 다시 받았다. “아니, 여기는 부딪힌다는 생각하지 말고 막 질러도 될 거 같아”

이런 식이었다. 여러 차례 의견들이 오갔다. 어찌 보면 ‘낼 모레가 공연인데 이래서 되겠나’ 걱정스러웠지만, 그 모습이 한편으로는 보기 좋았다. 신구 세대끼리, 서로 다른 영역(양악과 국악)의 ‘선수끼리’, 계급장 떼고 치열하게 ‘별 거 아닌 것’ 가지고 다투는 모습 말이다. (물론 공연의 최종 책임자는 신대철이라 최종 결정권은 그에게 있지만 말이다)

다른 부분 연주에서는 전인권도 끼어들었다.

“내 생각 하나만 얘기할게. 한번만 국악기 안 들어오고, 우리끼리 하다가 그 다음에 국악기 같이 들어오면 진짜 멋있을 거 같아. 내 생각이야 그냥.”

천하의 전인권이 ‘내 생각 하나’, ‘내 생각이야 그냥’이라고 단호하지만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그는 최고의 보컬리스트이자 뮤지션이기도 하고 이 팀에서 최고 연장자(64)지만 ‘한 표’ 이상을 주장하지 않았다.

이어서 전인권이 에둘러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이 글을 쓰면서 깨달았는데, 결례하는 표현이지만, ‘귀여웠다’)

“거기는 우리끼리 나가다가 두 번째부터 (국악기와) 같이 우르르 나오면, 관객들도 거기서 ‘와~’ 막 그럴 거 같아”

대가도 (또는 대가가 나이를 먹어도) 감상자 또는 수용자의 반응을 의식하나 보다. 창작하는 사람들에게 피드백이란 숙명과도 같은 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2014년에 큰 인기를 끌었던 ‘위플래시’란 영화가 있다. 지독한 선생 밑에서 더 지독하게 연습하는 드럼 연주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인데 내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대사가 있다.

“Not quite my tempo” (그건 내가 생각하는 ‘바로 그’ 템포가 아니야)

이 악마 같은 선생은 주인공이 드럼을 치는 템포가 ‘아주 미세하게’ 빠르거나(rushing) ‘아주 미세하게’ 늦다며(dragging) 9번이나 연주를 중단시켰다가 다시 시키기를 반복한다. (나중에는 정신차리라며 폭력까지 쓴다)

예술가란 끝까지 밀고 나가보는 사람이다. (마치 내가 위플래시의 독종 선생을 옹호하는 것처럼 들릴 텐데, 내가 그 교육법에 동의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그 결과(감상자의 피드백)에 목매는 사람이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치부하는 예술가도 있을 것이다) ‘Not quite my tempo’. 아주 작은 차이도, 미세한 떨림도 포착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아티스트들이 ‘별 거 아닌 것’ 가지고 신경전을 벌이고,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고, 내 의견 보다 작품에 더 도움이 될 것 같으면 남의 의견을 수용하고, 불협화음을 아름다운 화음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오랜만에 ‘진정한-또는 순수한- 진지함’의 세계로 다시 돌아온 것 같아 행복했다. –이게 누군가에겐 ‘별 거 아닌 것’ 이어서 더 그렇다- 나 역시 몇 프레임(방송화면은 1초가 30프레임으로 이뤄져 있다) 갖고 시비를 걸고, 글을 쓰기 전에 그 글의 느낌에 맞는 폰트 고르는 데만 한 시간씩 허비하는 부류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권력이나 화폐 등에 아등바등하면서 절대 놓칠 수 없는 걸로 생각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반의 반의 반 박자’가 빠르거나 느리게 연주됐다는 것에 목숨을 걸고, 얼굴을 붉히고, 치욕으로 생각한다. 인간이란 그런 것이다. 아티스트란 그런 사람들이다.

<P.S>
모두 15명의 연주자가 참여해 장장 17분동안 한 곡을 연주한 촛불집회 ‘아름다운 강산’ 공연은 –추운 날씨 탓인지 연세 탓인지 전인권 아저씨의 작은 실수가 있었지만-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연습부터 공연까지의 영상기록을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다.

<비디오머그 웹다큐> 아름다운 강산@ 1000만 촛불 되던 날

제1화_ 2016년 12월 31일 ‘촛불이 1000만 되던 날’
제2화_ 프리퀄 '아름다운 강산'에 ‘미인’이 들어간 이유
제3화_ '아름다운 강산' M/V ‘우리의 새 꿈을 만들어 보고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