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4.16'에 대한 기억을 저장하다…서울대 이현정 교수 인터뷰 ②

류란 기자 peacemaker@sbs.co.kr

작성 2016.12.25 16:47 수정 2016.12.26 15:3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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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정 교수(서울대 인류학과) /4.16 구술증언 사업 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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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동안 가족들의 상처가 컸죠. 어느 정도였을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2년 반이 흐른 지금도 사실 유족들은 주변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태예요. 그럼에도 많은 분들이 치료나 물질적 도움을 받는 것에 대해서 여전히 불편해 하시죠. ‘자식을 잃은 부모인 내가 무슨 낯으로 받아’ 이런 마음인데, 서구 사회와는 상당히 다른 관점이에요. 서구에서는 부모가 자식을 사고로 잃게 되면 부모도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외부의 도움을 당연하게 여기거든요.

우리 부모들은 그만큼 자식이라는 존재가 정체성의 대부분이고 분리가 되지 않는 거예요. 자식이 나이고, 내가 자식인 거예요. 자식이 있기 때문에 나의 존재가 가능했는데, 존재의 이유가 사라진 거죠. 심지어는 그 고통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세요. 내가 내 자식을 저렇게 끔찍한 상황으로부터 지키지 못했는데, 바다에서 뛰어들어서라도 아이를 살리지 못하고, 구하고 있다는 말만 믿고 그렇게 보냈는데 무슨 자격으로 위로를 받고 치료를 받아. 매우 한국적인 정서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세월호 유족들에겐 서구 사회 모델에서 가져온 ‘트라우마 치료’를 그대로 적용해선 안 된다고 봐요. 이 분들은 이번 참사를 그저 단순한 재난이나 사고로 받아들이지 않으세요. “어쩔 수 없는 사고를 겪으셨는데 어서 의료적인, 사회적인 도움으로 극복하셔야죠. 건강한 삶을 사셔야죠.” 이러한 이야기 자체가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는 거예요. 또한 전문가들이 가족들에게 신뢰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도 잘못됐던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유족들이 전문가에게 그런 게 아니고요?) 네, 전문가들이 유족에게 신뢰를 보이지 않았어요.

부모님들은 의문이 남고 그래서 진상규명에 애쓰는데, 치료진들은 계속 “안타까운 재난이고 국가가 대응을 현명하게 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정치적인 의도가 있겠느냐” 그런 관점으로 접근했죠. 왜 아이들을 구하지 않았는지부터 여러가지 이해되지 않은 게 너무나 많은데, 그래서 이상하다고 말하는 건데, 전문가들 사이에선 ‘너무 모든 것을 음모론으로 받아들이는 것 아니냐’ 그런 비난하는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나오잖아요. 김기춘이든 우병우든. 뭔가 위에서부터 잘못된 지시가 있었고, 부모들이 답답해하던 그런 것들이 사실은 어느 정도 있었다는 거죠. 

Q. 트라우마 센터에서 일하다가 기억저장소로 자리를 옮기게 되신 계기가 있었나요?

그 동안에도 센터에서만 기록 작업을 했던 건 아니에요. 집회 장소에도 갔고, 국회 농성, 광화문에도 있었고. 팽목항에서 지낸 적도 있고요. 그러다가 지난해 4월부터는 기억저장소 일을 하게 됐어요. 세월호 기록물 수집을 계속 해오시던 명지대 김익한 교수님이 전문가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같이 했으면 하시더라고요.

우리 같은 전문가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유족 분들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글쓰기 모임 같은 이야기도 나왔고요. 그 즈음 안산에선 공동체가 거의 붕괴될 정도의 위기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기억저장소가 그 당시 유가족들과 피해 집단 중에서도 주로 단원고 학생 희생자들의 부모들을 지지하는, 그런 일들을 하고 있었어요.

초기만 해도 가장 핵심적인 작업은 ‘기록물’을 수집하는 일이었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잘 되지 않았어요. 아시다시피 참사 후 1년 남짓한 기간 동안은 진상규명 투쟁이 우선이었거든요. 그래도 유가족 200여 가구를 하나하나 방문하면서 각종 기록물들, 그러니까 세월호에서 건져올린 유류품과 집에 있던 아이들의 유품과 핸드폰에 남아있던 기록 등등을 모두 수집했죠. 

Q. 기록하신 구술 증언들은 일반인도 열람 가능한가요

지난달 21일부터 유가족 열 분에 대한 자료를 1차 공개를 했어요. (기억저장소 사무실에 가면 볼 수 있는 거죠?) 네, 가서 보시면 돼요. 저희가 실제 기록한 내용보다는 많이 줄여서 공개했어요. 아무래도 기록이 외부에 공개됐을 때 어떤 식으로 이용될 지도 모르고, 가족 분들도 온라인에서 신상이 파헤쳐진다거나 이런 걸 워낙 많이 경험하셨고 해서. 앞으로 상황이 좋아져서 차츰차츰 더 많이 공개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4.16 구술증언록 공개 안내문' /기억저장소 메인 홈페이지Q.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인지 말해주시겠어요.

글쎄요, 원동력이 뭘까요. 저는...
(‘저는’이라고 말한 뒤, 다음 문장이 이어지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인터뷰 당시에도 꽤 긴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아와 기사를 쓰기 위해 녹음된 파일을 들어보니, 25초나 됐다. 25초 동안의 침묵.)

저는 선생이잖아요. 저는 공부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이 직업을 참 좋아해요. 배우고 가르칠 수 있는 고귀한 직업을 가져서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해 왔어요. 그리고 예전 만큼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학자들이나 선생들에게 남다른 신뢰와 기대를 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많이 배웠으니까 우리보다 잘 판단하겠지’, ‘아이들에게 올바른 지식을 전달해 주겠지' '우리 사회에 어려움이 닥칠 때 좀 더  책임감이 있고 용감하겠지' 등등. 

제 직업을 특별하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뭐라고 해야 할까... 의사한테는 의사이기 때문에, 판사는 판사이기 때문에 기대가 있잖아요. 기자이기 때문에 기자한테 갖는 기대도 있고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과도한 경쟁 때문에, 그러한 기대를 져버리는 듯하긴 하지만... 적어도 저는 학자이자 선생이라는 직업에 대해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 같아요.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고 싶은 마음이랄까. 직업윤리 정도 되겠죠. 대단한 원동력이 있다기보다, 그래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이 부분은 그냥 짧게 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