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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결핵에 마약까지…병 드는 북한 사회

[취재파일] 결핵에 마약까지…병 드는 북한 사회
못사는 나라일수록 병이 많다. 병원 치료는 물론 약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문제는 그 정도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다제내성결핵 치료 프로그램을 수 년 째 진행해오고 있는 유진벨 재단측이 지난 11월 22일부터 20여일 동안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다제내성결핵이란 결핵 약에 내성이 생겨 일반결핵약으로는 치료되지 않는 병으로, 일반결핵에 비해 치료 과정이 길고 복잡할 뿐 아니라 치료 비용도 훨씬 많이 드는 병이다.

다제내성결핵 치료에는 18개월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이 기간 동안 많은 약을 빠트리지 않고 꾸준히 먹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약이 제때 충분히 공급되어야 하고 환자 관리도 잘 돼야 한다. 전염을 막기 위해서는 적절한 격리도 필요하다. 현재 북한의 능력으로는 외부의 도움 없이 제대로 된 치료가 이뤄지기 어려운 실정이다.

유진벨 측은 북한에서 다제내성결핵 환자가 매년 4천 명에서 5천 명 정도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치료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 유진벨 측의 방북이 올해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올해에는 5백 명 안팎의 신규 환자를 새로 찾아내 치료 대상으로 편입시키는데 그쳤다. 지난해 천 명 이상의 신규 환자를 치료 대상으로 편입시켰던데 비해 후퇴한 것이다. 종합적으로 보면, 치료 시도는 계속되고 있지만 환자는 그보다 훨씬 늘고 있어 병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는 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빨리 치료 속도를 높여 발생환자 수를 따라잡지 않으면 북한은 다제내성결핵이 만연한 사회가 될 수도 있다.
 
● 북한내 마약 사용 문제도 심각

문제는 결핵만이 아니다. 북한내 마약 문제 또한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북한에서 마약이 확산된 것은 의약품이 부족한 것과 관련이 있다. 아파도 치료할 약이 없다 보니 마약이 간이 치료제로 쓰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약이 점차 보편화되면서 이제 마약은 일상의 문화로까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북한 관련 단체들의 주장이다.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정보센터는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심층 조사한 결과 북한 내에서 마약이 일상의 사교 문화로까지 발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친구끼리 만나면 ‘한 코 하자’(마약 한 번 흡입하자는 뜻)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가 됐다는 것이다.

북한인권정보센터는 지난 1일 관련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충격적인 사례를 두 가지 언급했다. 감기에 걸렸을 때 치료제가 없어 할머니가 6살 아이에게 마약을 사용했는데 6살 아이가 이후 계속 마약을 찾았다는 사례와, 중학생이 가정 방문을 온 선생님에게 마약을 권했다는 사례다. 성인이 아닌 아이들에게까지 마약이 통용되고 있다는 것은 북한 내에서 마약을 퇴치하는 일이 쉽지 않은 과제가 됐음을 의미한다.

● 북한 정권은 치유 능력 없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북한이 내부적으로는 이렇게 병들어가고 있지만 핵과 미사일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북한 정권은 이같은 현상을 치유할 능력이 없다. 아니, 이런 문제에 대해 심각성이나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이같은 사회 병리 현상은 통일 이후 우리가 떠안아야 할 또 하나의 과제이다. 결핵이나 마약 만연 현상은 단기간에 치유되기도 어려운 것이어서 통일 이후 상당한 시간과 노력 투입이 불가피할 것이다.

그런데, 통일이 되기 전에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다제내성결핵 치료에 나서고 있는 민간단체의 활동을 충분히 보장하는 것이다. 유진벨 재단 같은 곳이 정기적으로 방북해 결핵 환자를 찾아내고 꾸준히 치료한다면 다제내성결핵을 완전히 잡지는 못하더라도 환자의 수를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묶어둘 수는 있다.

하지만,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북한에 결핵약을 보내고 의료진이 방북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한다.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분위기 때문이다. 올해에 어렵사리 방북이 이뤄지긴 했지만 내년도 결핵약 지원과 방북 계획에 대해 정부가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고 한다. 만약, 내년에 치료약 지원이나 의료진 방북이 제때 이뤄지지 못한다면 18개월 치료 과정을 못마친 환자들의 상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결핵의 확산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 실용적 차원의 대북 지원은 계속 해야 

흔히 인도적 차원의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는 관계없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굶주림과 병으로 고통 받는 주민들이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이 주민들의 삶은 나몰라라 하고 핵과 미사일 개발에만 몰두하면서, 인도적 지원마저도 김정은의 전략에 놀아나는 것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필자는 여기서 인도주의라는 말 대신 실용주의라는 말을 사용하고자 한다. 전염병은 확산이 되면 북한 뿐 아니라 남한에게도 해가 미칠 수 있다. 그리고, 한번 만연한 전염병은 우리가 마음먹는다고 해서 단기간에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하지 못하는 일을 민간이 나서서 하겠다는데 이것을 막을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특히 결핵약이야 해당 환자들이 아니면 달리 쓸 길도 없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강화되는 국면이지만 실용적으로 생각해 터줄 것은 터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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