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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제2의 김종 차관 또 나온다"

[취재파일] "제2의 김종 차관 또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지난 11일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김종 전 차관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공무상비밀누설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습니다. 그의 구체적 혐의와 죄목은 이미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와 각종 언론 보도를 통해 소상히 밝혀졌기 때문에 여기서는 더 이상 언급을 하지는 않겠습니다.

지난 3년 동안 무소불위의 ‘스포츠 대통령’으로 군림해온 김종 차관은 이제 법적인 처벌을 눈앞에 두었을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나락에 떨어졌습니다. 그는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는 대한민국의 차관이 했다고 하기에는 도저히 믿기 힘들만큼의 ‘갑질’도 서슴지 않았지만 강자에게는 정반대였습니다. 청문회에 출석한 고영태 씨는 “김종 차관이 마치 최순실 씨 수행비서와 같았다”고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장관보다 더 힘센 ‘왕차관’으로 불렸습니다. 업무 추진비도 장관보다 훨씬 더 많이 썼습니다. 전부 국민 세금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과 최순실 씨의 총애 속에 전횡을 일삼은 김 전 차관이 끝내 구속기소되자 문체부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할 말이 없다. 한마디로 참담하다”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김종 차관의 횡포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감지돼온 것입니다. 취임하자마자 그는 체육계 각 기관의 주요 요직에 ‘자기 사람’을 심었습니다. 문체부 예산을 무기 삼아 때로는 협박을 하고, 때로는 회유를 하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브레이크가 고장 난 ‘폭주 기관차’ 같았습니다.

여기서 저는 두 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만약 김종이라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인물이 문체부 차관을 맡았다면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지 않았을까요? 김종 전 차관의 부하들은 왜 그의 부당한 지시까지도 충실히 이행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 문체부 고위 관계자 A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김종이라는 사람이 유난히 권력 지향적이라는 사실은 맞다. 박 대통령의 절대 신임 속에 권력에 취했던 것이다. 그런데 만약 김 전 차관이 최순실 말을 듣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랬으면 6개월도 못 가 잘렸을 것이고 청와대는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사람을 대신 그 자리에 앉혔을 것이다. 그렇게 됐다면 그 사람도 김종 신세와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종 전 차관이 저지른 횡포는 크게 2가지입니다. 하나는 개인적 비리이고 다른 하나는 조직적 일탈입니다. 후자의 경우 그의 직속 부하들이 명을 받들어 수족 노릇을 한 것들입니다. 그 어려운 행정고시에 합격해 문체부에서 오랫동안 소중한 경험과 경력을 쌓은 그들은 왜 김종 전 차관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지 못했을까요? 한때 그의 부하였던 B씨는 SBS와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만약 상관이 누가 봐도 빤한 불법적인 명령을 내리면 그건 거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살인을 하라든지, 강도를 하라든지 하는 것들이다. 이건 명백한 불법이기 때문에 복종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상관의 부당한 명령에는 따라야 한다. 내가 보기에는 부당하지만 상관은 합당하다고 판단해 지시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관의 부당한 명령에 거부할 경우 인사 조치에서 불이익을 당할 것을 감수해야 한다. 즉 부당한 명령에 따르거나 아니면 불이익을 감수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것이 공무원의 운명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부당한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B씨의 말처럼 김종 전 차관의 부당한 명령을 충실히 이행한 공무원들은 지금까지도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문화체육관광부의 각종 요직에 앉아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예전에 그랬고 현재도 별로 죄의식이 없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유대인 출신의 미국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유명한 개념인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에 지적된 것처럼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명령은 지키는 게 도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들에 대한 인사권을 갖고 있는 사람은 조윤선 문체부 장관입니다. 국회 청문회에서 한 국회의원이 김종 전 차관의 손발 노릇을 했던 고위공무원의 실명을 거론하며 거세게 추궁했지만 조윤선 장관은 “조사를 해보겠다”는 말만 되풀이 했을 뿐 지금까지도 그 어떠한 징계 조치를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갖고 있는 절대 권력, 그 권력에 복종하면 개인의 출세와 영달이 보장되는 구조, 부당한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불복종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공무원들, 그리고 상관의 비리를 돕거나 방관한 사람들에게 그 어떠한 처벌도 없는 상황이 계속되는 한 ‘제2의 김종 차관’은 언제든지 또 다시 나올 수 있다는 게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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