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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설계자 총감독 '대통령'…실행자 '최순실'과 '재벌총수'

<요약>

미르재단·K스포츠재단과 대기업의 검은 커넥션은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사안이다. 두 재단은 16개 대기업으로부터 각각 486억 원(미르재단), 288억 원(K재단)을 출연 받았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가 개입했다는 게 두 재단 관련 의혹의 골자다. 검찰은 재단 설립 아이디어를 박근혜 대통령이 냈고, 재단 이름, 재단 사무실 위치까지 박 대통령이 결정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 마디로 설계자는 박 대통령이고, 대통령이 주도했다는 게 검찰의 결론이다.

대통령이 16개 대기업 회장을 청와대 안가에서 따로 만나 기금을 낼 것을 요청(검찰은 '강요'로 보고 있다)했고, 기업들은 대통령 요구에 불응할 경우 세무조사, 인허가 등 불이익을 받을 게 두려워 출연금을 납부했다고 진술하고 있다고 검찰은 밝혔다. 그리고 이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강요 범죄'로 검찰은 규정했다. 박근혜 대통령, 최순실 씨,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을 공범 관계로 보고, 대통령을 제외한 최순실·안종범·정호성 세 사람을 구속기소했다.

다만, 16개 대기업은 단순한 '피해자'로 잠정적으로 결론을 냈는데, 이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자신에 대한 혐의를 부인하는 박 대통령은 당초 약속을 뒤집고 검찰 수사에 불응했다. 이제 공은 특별검찰로 넘어간 상황이다. 특검은 대통령과 기업의 관계를 '가해자와 피해자 구도'로 단정짓지 않고, 원점부터 재검토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 미르·K재단의 설계자 '주연 박근혜'

국정농단의 대표적 키워드는 미르-K스포츠 재단이다. 두 재단의 설립과 대기업 상대 기금 강요 과정에 박근혜 대통령이 얼마나 개입했는지가 핵심이었다. 검찰 수사로 드러난 건 예상 밖의 결과였다. 단순 개입의 수준을 넘어섰다. 검찰에 따르면, 재단 설립, 기금 마련의 '설계자-실행자'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그 시작은 2015년 7월이다. 박 대통령은 '문화융성'을 4대 국정기조 중 하나로 정하면서 한류 확산, 스포츠 인재 양성 등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법인 설립 계획을 세웠다. "정부의 국정 기조에 민간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모양새를 취했고, 이런 아이디어를 낸 건 박 대통령"이라고 검찰은 밝혔다.

2015년 7월 20일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은 박 대통령의 구체적 지시를 받은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본격적인 범죄 착수 시점인 셈이다. "10대 그룹 중심으로 대기업 회장관 단독 면담 일정을 잡아라"는 게 박 대통령의 지시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2014년 6월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입성해 2016년 5월엔 청와대 왕수석으로 불리는 정책조정수석으로 자리를 옮긴 안종범 전 수석은 그의 이력에서 알 수 있듯 대통령의 측근 중의 측근이었다.

지시 나흘 뒤인 7월 24일부터 그 다음날까지 이틀 동안, 박 대통려은 청와대 안가에서 대기업 총수들을 순차적으로 독대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김용한 부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김창근 SK이노베이션회장, 다음날엔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의 단독 면담이 이뤄졌다.

검찰은 당시 단독 면담을 가진 회장을 차례로 불러 조사를 벌였고, 대기업 회장들은 대부분 일관되게 진술을 했다. "대통령이 '문화재단과 체육재단을 만들려고 하는데, 적극 지원을 해달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재단 설립의 큰 그림을 모두 박 대통령이 그렸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단독 면담 후 박 대통령은 두 사람에게 지시를 내린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한 명은 최순실 씨, 또 한 명은 안종범 전 수석이다.

안 전 수석에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산하 기업들이 금원을 갹출하기로 했으니 문화 체육 관련 재단을 설립하라"는 지시를, 최순실 씨에겐 "기업체들이 금원을 갹출하여 재단을 만들려고 하는데, 재단 운영을 살펴봐라"는 지시였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마부작침] 미르-K재단 타임라인
● 배후자 최순실과 행동대장 안종범

검찰에 따르면,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안 전 수석은 이승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에게 전화해 대통령의 지시 사항을 전달했다. 그러나 재단 설립은 순탄치 않았다. 이미 각종 문화재단이 설립돼 있고, 오래전부터 시장논리에 따라 문화 사업이 형성된 상황이었다. 수백억 원의 돈을 갹출해야 되는 대기업 입장에선 따져봐야 할 것이 많았다.

재단 설립에 진척이 없자 박 대통령은 재촉(2차 지시)에 나선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박 대통령이 같은 해 10월 19일, 안 전 수석에게 "중국 리커창 총리 방한 때 양국 문화재단 간 양해각서를 체결해야 되니 재단 설립을 서둘러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설립 시점까지 명시된 지시가 내려지자 재단설립은 급물살을 타게 됐다. 안 전 수석은 곧장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에게 전화를 했고, "청와대 회의에 전경련 직원을 참석시켜라"고 요구했다. 재단 설립에 청와대가 노골적으로 나섰다는 뜻이다. 이틀 뒤 청와대 행정관과 전경련 직원들은 회의를 가졌고, 9개 그룹(삼성,현대차, SK,LG,GS,한화,한진,두산,CJ)의 출연금 분배 규모를 정했다. 안 전 수석이 자금을 조달하는 사이, 최순실 씨는 재단을 꾸릴 사람들을 면접해 인적 구성을 끝냈다.
[마부작침] 미르-k스포츠재단 설계도
● "300억에서 500억 원으로 상향 조정"

2015년 10월 22일~24일 사이에 최 씨가 낙점한 미르재단 직원, 최 씨, 전경련 직원, 청와대 행정관들은 3차례 회의를 열고 출연금 할당액과 재단 정관을 결정하는 등 재단 설립 마무리 작업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출연금 금액과 참여 기업도 늘어나게 된다. 검찰은 출연금 증액은 안종범 전 수석 지시로 이뤄진 것으로 파악했지만, 갑자기 늘어나게 된 배경에 대해선 아직 명확하게 드러난 건 없다.

또 재단의 기본재산 규모를 두고 최순실 씨의 압력이 가해졌다고 검찰은 밝혔다. 재단의 재산은 임의적으로 꺼내 쓸 수 없는 '기본재산'과 임의사용이 가능한 '보통재산'으로 구분된다. 통상 재단은 기본재산과 보통재산이 9:1 비율로 설립되곤 하는데, 최 씨는 "기본재산 비율을 낮춰야 된다"는 입장이 강경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미르재단은 기본재산과 보통재산의 비율이 2:8이 되도록 정관이 결정됐다. 최 씨가 재단을 곳간처럼 활용하려고 했다는 의심을 사는 대목이다.

정관도 바뀌고, 금액은 조정되면서 당초 9개 그룹에 더해 롯데, KT, 금호,아모레, 포스코, LS, 대림 등이 추가돼 16개 기업이 486억 원을 미르재단에 납부했다. 최 씨와 안 전 수석은 16개 기업 외에 현대중공업과 신세계도 포함시키려 했지만, 두 기업은 재무상태와 중복투자 등을 이유로 거부했다.

청와대가 데드라인으로 정한 2015년 10월 27일(미르재단 설립일) 하루 전날, 미르재단 설립 작업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10월 26일, 기업 관계자들은 서울 서초구 팔래스호텔에 모여 SK하이닉스의 날인이 빠진 정관과 조작된 창립총회 회의록 등을 토대로 설립허가 신청서류를 작성했다. 재산출연증서도 빼먹지 않고 제출했다. 정부가 아닌 기업이 자발적으로 재단을 만들었다는 모양새를 취하기 위해서였다. 박 대통령이 재차 지시를 내린 지 8일 만에 500억 원 상당의 거액을 보유한 재단이 만들어졌다.
[마부작침] 미르재단 / k스포츠재단 기업출연금
● '하나 더 만들어볼까' K스포츠재단

검찰이 파악한 K스포츠재단의 본격 추진 시점은 2015년 12월이다. 기금 마련이 쉽지 않아 불가능할 것으로 여겼던 미르재단 설립이 성공하자, 다음으로 스포츠 재단을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검찰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머릿속 구상에만 머물던 재단이 현실에서 구현되자, 다음으로 스포츠재단을 만들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K스포츠재단은 설립 시점만 늦었을 뿐, 여러 면에서 미르재단과 판박이다. 인적구성은 물론, 정관, 모금 방식이 미르재단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미르재단 설립에서 성공 경험을 쌓은 최순실 씨는 스포츠재단 설립엔 더욱 적극적으로 나섰다. 재단 이사장과 임직원 선정을 마무리한 뒤, 최 씨는 정호성 청와대 부속비서관에게 관련 자료를 이메일로 보냈다. 정호성 전 비서관은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의 오랜 측근으로 꼽히는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이다.

최 씨가 인선작업을 마무리하자, 박 대통령은 12월 11일과 20일 "사무실은 강남으로 알아보라"는 지시와 함께 재단 정관과 조직도를 안종범 전 수석에게 건넨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재단의 핵심인 기금 마련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안 전 수석은 미르재단 때와 마찬가지로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에게 전화해 "청와대의 요청으로 300억원 규모의 체육재단을 설립해야 한다. 출연금을 납부하라"고 전달했다.

미르재단 설립의 노하우 덕분인지, 전경련은 속전속결로 재단 설립 지원에 나섰다. 12월 21일 청와대로부터 K스포츠재단 정관과 임직원 명단, 이력서를 팩스로 전달받고 20일이 지난 2016년 1월 12일 창립총회를 가졌다. 재단 이사장 등을 마치 전경련에서 추천한 것처럼 회의록을 작성했고 기업들은 재산출연증서를 제출했다. 미르재단 설립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기업 출연금(288억원) 규모가 줄었고, 창립행사를 호텔이 아닌 전경련 회관에서 했다는 정도다.

● 직권남용, 강요죄…외교사안도 악용한 '나쁜 대통령'과 '피해자 대기업'?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 최순실, 안종범 전 수석, 정호성 전 비서관, 네 사람의 행위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강요죄로 결론 내렸다. 자신의 권한을 사용해 상대에게 할 필요가 없는 일을 하게 만들었다는 말이다. 문화융성은 허울 좋은 명분이었고, 리커창 중국 총리의 방한은 모금 독려의 수단이었을 뿐이란 것이다. 권력을 이용해 기업을 상대로 강제 모금을 벌였다는 수사 결론인데, 이런 검찰의 시각대로라면 이번 사건 구도에서 대기업은 피해자가 된다. 

검찰은 "기업들이 세무조사, 인허가 등 사업과정에 발생 가능한 직간접적인 불이익을 두려워 기금을 출연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대통령을 위시한 네 사람의 횡포에 16개 대기업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결론 내리면서, 기소 대상에서 기업인들을 제외했다. 약자기 된 대기업을 두고 검찰 내부에서도 "수사 결과가 납득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정치권력에서 경제권력으로 권력의 무게추가 기울어진 지 오래된 상황에서 기업을 피해자로만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누구보다 셈이 빠른 기업들이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은 채 선뜻 수백 억 원의 돈을 냈다고도 보기도 힘들다. 한 검찰 관계자는 "직권남용의 피해자는 권력 관계에서 약자이어야 하는데, 이번 사안은 그렇게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대가관계 입증을 통해 뇌물죄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다. 검찰은 어제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최종적으로 뇌물죄를 적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특별검찰의 시각은 다를 것으로 보인다. 특검 관계자는 "대가관계 부분은 이번 수사의 핵심 중 하나"라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다만, 적용 혐의가 '직권남용'에서 '뇌물'이 됐을 땐 기업들은 '뇌물 공여의 피의자'가 된다. 당연히 기소 대상에 포함될 수밖에 없기에 검찰 수사에 협조적이던 기업인들이 진술을 바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분석: 한창진·장동호
디자인/개발: 임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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