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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진정한 청문회 휴머니스트, 이완영 의원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국정조사 1차 청문회, 의외의 소득(?)

[취재파일] 진정한 청문회 휴머니스트, 이완영 의원
청문회는 스타를 낳는다. 가끔. 5공 비리 청문회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야 말할 것도 없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도 다들 청문회에서 ‘한칼’ 하셨던 분들이다. 당적은 바뀌었지만 새누리당 조경태 의원도 지난 2008년 광우병 사태 때 나름 날렸다.

재벌 총수들이 역대급 총출동한 어제 (6일)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1차 청문회에선 누가 누가 잘했을까. 하태경, 안민석, 이런 이름들이 들린다. 스타야 다른 매체서도 많이 찾을 것이고, 기자는 조금 다른(?) 분을 주목하고 싶다. 바로 이 시대의 진정한 ‘청문회 휴머니스트’, 최순실 국조특위 새누리당 간사인 이완영 의원이다.
바로 이 분이다. (새누리당 이완영, 경북성주칠곡고령군)
약자(?)를 배려하고, 노인을 공경하는 이 의원의 첫 번째 ‘휴머니즘’은 서면으로 발휘됐다. 오전 청문회 도중 김성태 국조특위 위원장에게 정성껏 써보낸 쪽지가 사진 기자들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정몽구, 손경식, 김승연 세 분은 건강진단서, 고령 병력으로 오래 계시기에 매우 힘들다고 사전에 의견서를 보내왔고, 지금 앉아계시는 분 모습을 보니 매우 걱정됩니다. 오후 첫 질의에서 의원님들이 세 분 회장 증인에게 질문하실 분 먼저하고, 일찍 보내주시는 배려를 했으면 합니다. (이하 생략)
글씨도 정갈하니 잘 썼다. (재벌회장 조기귀가요청 논란 국조청문회 이완영 쪽지)
배려심 가득한 쪽지에 인터넷이 들끓었다. 많은 사람들이 ‘정경유착의 증거’라고 이 의원을 비난했지만 기자는 꼭 그렇게만 해석하지 않으려고 한다. 타인의 아픔에 대한 이해심과 고령자에 대한 공경심도 어느 만큼은 있지 않았을까 감히 추측해본다.

그의 휴머니즘은 오후에도 이어졌다. 이번에는 글로벌 무한 경쟁 시대, 한국 경제에 대한 깊은 염려가 더해졌다.

이완영 의원 : (오후 질의, 의사진행발언 신청한 뒤) 지금 글로벌 시장에서 대기업의 이미지와 대외신인도가 추락하는 등 대내외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우리 특조위에 중대한 심문 감안해서 9분 재벌 회장님 나오셨습니다. 위원장과 여야 간사 협의 내용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참석하신 정몽구 손경식 김승연 세 분은 건강진단서와 고령과 병력으로 인해 오래 계시기 매우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전에 의견서를 제출해왔습니다. 앉아계시는 모습을 볼 때 매우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따라서 오후 첫 질의에서 의원님들이 세 분 회장 증인에게 먼저 질문하시고 답변하시고 한 후에 일찍 보내드리고, 남아계시는 증인분들에 대해서 질의 응답하셨으면 합니다. 위원장께서 운영의 효율성 기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 의원의 속 깊은 의사진행발언에 의심 많은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태클을 걸었다. “다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금 제 귀가 의심스러워서 그러는데...” 그러나 이 의원, 심지어 친절하기까지 하다. 야당 의원의 말에 화를 낼 법도 하지만 친절히 다시 한 번 반복했다. 비록 야당 간사인 박범계 의원이 “지금 보기엔 큰 염려가 없을 것 같다”면서 “아직 논의가 조금 이르다”고 제지해 무산되기는 했지만 참 훈훈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정몽구 회장
그의 ‘진심’은 굴하지 않았다. 오후 추가 질의를 마치고 4시 반 속개된 청문회에서도 이 의원의 측은지심이 여지없이 발휘됐다. 같은 새누리당 김성태 위원장이 “안타깝지만 국민적 관심이 지대하니 정 상태가 안 좋으신 분들은 국회 1층 의무실에서 진료를 받으시라”고 말했지만, 이 의원은 굳이 긴급의사진행발언을 요청해 이렇게 말했다.

이완영 의원: 네, 지금 청문회 시작한 지 8시간 30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건강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 위원회 위원들 이런 점 헤아려주셔서 고령과 병력으로 고통받고 있는 증인들 대해서 상당한 배려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중략) 만약에 이 장소에 구급차가 오는 비극을 사전에 막아야할 거 같습니다.

세 번째 반복된 이완영 의원의 마음 씀씀이에 기자석을 비롯한 좌중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건강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소신 발언’이 백미였다. 과연 긴급하게 필요한 의사진행발언이었는지는 의문이 들지만, 노령의 증인을 걱정하는 다급함은 충분히 좌중에 전해졌으리라. 이 의원이 현대차그룹에서 제출한 요청서까지 낭독했지만, 김성태 위원장은 안타깝게도 일단 진료를 받고 내용을 얘기해달라며 또 한 번 이 의원의 요청을 반려했다. 기자가 다 안타까웠다. ( ▶ [비디오머그] 이완영 "고령 회장 일찍 보내주자" 재벌 배려 쪽지 논란)

이 의원의 거듭된 진심이 결국 통했을까. 정몽구 회장은 저녁식사 뒤 밤 8시 반 속개된 청문회에는 심장 질환을 이유로 불참했다. 현대차 그룹 측은 정 회장이 “고령에(79세, 38년생) 지병이 있는데다 어지럼증을 호소했다”고 밝혔다. 손경식(39년생), 구본무(45년생), 김승연(52년생) 회장도 건강상 이유로 청문회가 끝나기 전 차례차례 귀가 조치됐다. 귀가도 장유유서, 나이 순이었다. 이 얼마나 훈훈한 마무리인가.
(관련 기사 ▶ 청문회 선 총수들…"靑 요청, 거절 어려웠다")

이 과정을 바라보면서, 대한민국 경제를 생각하고 나이든 회장님의 건강을 염려하는 이완영 의원의 마음 씀씀이 뒤에는 그만의 굉장히 특별한 감수성과, 투철한 노인 공경심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솔직히 기자 같은 범인(凡人)의 아량으로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 게 사실이다.

30대 초반 젊은 기자의 눈에는 다들 정정해 보였지만, 이 의원의 안목에는 보이지 않는 게 보일 수도 있다. 아마도 처음 쓴 쪽지 사진만 전해졌더라면 여당 간사로서 안 할 수는 없고, 어쩔 수 없이 종이에 써서 내다가 운 나쁘게 걸린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동료 의원의 거절과 면박 앞에서도 두 번 세 번 읍소를 거듭하는 저 진심 앞에서는 "나는 감히 알 수 없는 대인배의 세계가 있겠거니" 하고 달리 생각하는 것 말곤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5공 비리 청문회 이후 ‘28년 만의 재벌 청문회’라고 모든 언론이 대서특필한 청문회였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이다 못해 암덩어리에 가까운 정경유착을 주제로, 내로라하는 재벌 총수들이 한 자리에 모인 자리였다. 검찰 수사와 언론 보도를 통해서만 전해 듣던 이야기를 온 국민이, 그들의 입을 통해 생생하게 직접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

대기업 회장들과 국회의원 스스로의 표현대로 “국민적 관심이 지대한”, 그런 자리였다. 성과는 차치하고, 그렇기 때문에 모처럼 여야가 (그나마) 하나 됐던 청문회였다. 다시는 이런 자리, 이런 장면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나라를 생각하면 안 보는 게 좋겠지만)

나이가 많고 건강이 좋지 않다면 배려할 수 있다. 공기도 딱히 좋지 않은 국회 안에서 10시간 가까이 의자에 앉아있는 건 서른한살 기자에게도 고역이다. 그러나 이처럼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안에서, 그것도 무언가 잘못을 했다는 혐의를 가지고 불려나온 증인에게 충분한 소명 없이 이토록 관대한 처사를 보인 전례가 있었던가, 하는 점은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하나 더 궁금한 게 있다면 왜 여당 간사인 이완영 의원만 유독 그런 마음을 품었을까 하는 점이다. 현대차그룹에서 정 회장의 건강이 안 좋다며 선처를 호소하는 요청서를 왜 이 의원에게만 보냈을까 하는 부분이다. 현대차에서 이 의원 측에 제출했다는 긴급요청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의원이 읽은 것을 그대로 받아쳤다)

“존경하는 김성태 위원장님 청문회 진행에 노고가 많으십니다. 정몽구 증인이 장시간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정몽구 회장님은 심장병 수술 전력과 고혈압 등으로 지병이 있고  고령으로 심신이 쇠약합니다. 청문회에 출석해 최대한 성실하게 소명하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으나 잠시 병원에 들러 건강상태를 점검할 수 있도록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야당 간사인 박범계 의원에게 확인했지만 “요청서 자체를 받은 적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여당 간사에게만 보낸 거다. 현대차그룹 관계자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대관부서에서 이완영 의원실로 요청서를 전달했다는 것만 알고 있다고 했다. 왜 야당 간사에게는 따로 보내지 않았는지 물었지만 "잘 모르겠다"는 답만 돌아왔다.

혹시 현대차그룹은 이완영 의원의 휴머니즘과 ‘특별한’ 감수성을 미리 간파한 것일까? 전 국민이 알지 못한 장막 뒤 비선 실세를 미리 알 정도의 정보력이라면 그쯤은 쉽게 파악했을지 모른다고 추측해볼 뿐이다. 지방노동청장을 지낸 정통 노동부 관료 출신인 이 의원이 유독 친기업적 성향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은가. 그야말로, 진정한 '청문회 휴머니스트'의 재발견이다.

사족 하나, 재선인 이완영 의원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지난 7월, 그의 지역구인 경북 성주가 사드 배치 대상지로 선정되면서부터였다. 하고많은 지역 중에 그의 지역구가 사드 배치 대상지로 선정되자 이 의원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농성에 들어갔다.
수염을 기른 이완영 의원
그러던 그가 두 달 정도 지난 9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북핵-사드본부 간담회’에선 “아직 우리 성주군의 좌파 종북세력들이 반대는 하고 있습니다마는, 다수 성주군민들은 오늘 결정에 아마 환영하리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180도 돌아선 것도 모자라 군민을 좌파 종북 세력으로 호칭해 투쟁위로부터 고소까지 당했다. 세월호 국정조사 때는 세월호 유가족에게 전문지식과 이성이 없다는 막말을 하기도 했던 분이다.

어제 하루종일 청문회를 취재하며 이완영 의원을 지척에서 뵙고 나니 기자는 거기에도 다 헤아릴 수 없는 마음가짐이 있으리라 한 번 생각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가 아닌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넘치는 휴머니즘을 청문회장 바깥에서, 적어도 지역구에서만이라도 베풀어주십사 하는 점이다. 레이더가 배치되면 인체에 악영향을 미칠까봐 걱정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들었다. 청문회에서 보여준 측은지심, 그 마음 하나면 지역구민들 보듬기엔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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