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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OPEC vs 트럼프…눈앞으로 다가온 '석유 전쟁'

[취재파일] OPEC vs 트럼프…눈앞으로 다가온 '석유 전쟁'
지난달 30일, 국제사회에서도 중요한 ‘합의’가 도출됐습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14개 회원국이 ‘감산’에 합의한 겁니다. 2008년 이후 8년 만입니다. 이들 회원국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총회를 열어, 하루 최대 원유 생산량을 3,250만 배럴로 120만 배럴(3.3%)을 줄이는 데 합의했습니다. 떨어질 대로 내려간 석유가격을 올려보자는 취지입니다.
 
OPEC의 ‘감산 합의’가 중요한 건 국제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크고 또 직접적이기 때문입니다. 당장 감산 소식에 국제유가는 급등했습니다. 당일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 내년 1월 인도분은 전날보다 4.21달러(9.3%) 오른 배럴당 49.44달러에 거래를 마쳤고, 내년 1월 인도분 브렌트유도 전날보다 4.09달러(8.8%) 상승한 배럴당 50.47달러로 마감했습니다. 저유가로 고통받았던 OPEC 회원국들로선 당장 급한 불을 끄고 한숨을 돌린 셈입니다.
 
● OPEC은 왜 감산 합의에 실패했을까?

시장에서의 가격은 공급과 수요에 따라 결정됩니다. 쉽게 말해, 사려는 사람이 팔려는 사람이 많으면 값은 올라가고, 반대로 사려는 사람이 없으면 값은 내려갑니다. 당연히 OPEC 입장에선, 생산량이 감소하면 공급이 줄어 석유가격은 올라가 경제적으로 이득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쉽게 동의할 거 같은 ‘감산’은 좀처럼 쉽게 이뤄지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 감산 합의 실패 원인 (1) : 셰일가스, 셰일오일 업체 고사 작전

감산 합의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강력한 대체재 ‘셰일가스’와 ‘셰일오일’ 때문입니다. 셰일가스와 셰일오일은 오랜 세월 모래와 진흙이 굳어 생긴 탄화수소가 퇴적암(셰일)층에 매장돼 형성된 가스와 오일을 말합니다. 미국과 캐나다, 러시아 등 세계 31개국에 약 187조 4,000억㎥가량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전 세계가 앞으로 60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양입니다.
 
OPEC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사우디아라비아는 대체재인 이 셰일가스와 셰일오일을 고사시키는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북미지역의 셰일업계 생산비용이 중동의 원유생산량보다 더 크다는 데 착안한 겁니다. 석유를 많이 생산해 가격을 낮추면, 다른 국가나 기업들은 셰일가스·오일 대신 저렴한 석유를 많이 찾을 것이고, 그러면 셰일업체들은 채산성이 맞지 않아 망할 것으로 판단한 겁니다. 서로 정면으로 충돌해 승패를 가리는 이른바 ‘치킨게임’을 선택한 겁니다.
 
결론적으로, 이런 전략은 어느 정도의 성공은 거뒀습니다. 시장조사업체 글로벌리스크인사이트는 미국의 셰일업체 시추공 수가 지난 몇 년 새 절반으로 줄었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셰일업계도 쉽게 당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막대한 출혈은 있었지만, 비용 효율화로 점유율 경쟁에 뛰어들며 석유업계 전체에 충격을 던진 겁니다. 물론, 저유가로 인한 OPEC 회원국들의 피해도 결코 적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이 같은 ‘셰일업계 고사 작전’으로 그동안 OPEC의 감산은 이뤄지기 어려웠습니다. 
이란 제재 해제
● 감산 합의 실패 원인 (2) : 경제 제재 풀린 이란

감산 합의가 어려웠던 또 다른 이유는 ‘이란’입니다. 이란은 그동안 핵개발로 서방 국가에 경제제재를 받아서 원유 수출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4월 2일 핵협상이 타결되며, 수출 길이 다시 열렸습니다. 그동안 굶주린 배를 잡고 어렵게 연명하던 이란으로선, 과거의 석유생산량까지 회복하기 전엔 감산할 수 없다고 버틸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 중동지역의 종파 분쟁까지 고려하면 상황은 더 복잡해집니다. 모슬렘에는 ‘시아파’와 ‘수니파’ 두 종파가 있습니다. ‘시아파’에는 이란을 비롯해 이라크, 시리아 국가들이 포함되고, 이들 국가를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중동 국가가 ‘수니파’입니다. ‘수니파’ 맏형인 사우디 입장에선 자기들이 원유 생산량을 줄여봐야, 어차피 ‘시아파’의 좌장격인 이란이 증산할 게 뻔해 보였던 겁니다.
 
이란이 증산을 통해 부를 축적하면, 이는 다른 시아파 국가들로 흘러갈 것이고, 그러면 결국 사우디의 감산은 자칫 이란을 중심으로 한 시아파의 배만 불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겁니다. 사우디 입장에선 섣부른 감산이 자칫 자신들 종파 전체에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고 우려해, 감산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웠습니다.
 
● 어렵게 이룬 OPEC ‘감산 합의’…세계 경제 활성화 기대

그럼에도, 우여곡절 끝에 OPEC 회원국들은 감산에 합의했습니다. 저유가 현상이 더 지속하면 현실적으로 버티기 어렵다는 OPEC 회원국들의 절박한 마음이 반영된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완전한 감산 합의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막 경제제재에서 벗어난 이란은 '감산하라'는 사우디의 압박에도, 먹고살기 빠듯하다며 현재의 380만 배럴 생산 수준을 유지하겠다고 버텼습니다. 또, 리비아와 나이지리아도 내전과 송유관 파괴 등으로 생산에 차질을 빚은 점을 인정받아 감산 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러시아도 내년 상반기 중에 하루 평균 30만 배럴을 감산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감산에 참여할진 아직 불확실합니다.
 
어쨌든 불완전하게 마나 이뤄진 이번 감산 합의는 국제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통적인 경제학에선 유가 상승이 소비자 구매력을 감소시키는 등 경제에 나쁜 요인으로 인식되지만, 지금은 경제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산유국이 유가 상승으로, 투자를 늘릴 거란 기대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감산으로 석유 가격이 높아지면 미국 등 산유국들이 적극적으로 석유 시추에 나설 것이고, 그러면 당연히 건설과 엔지니어링 등 관련 사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거란 겁니다. 또, 사업 확장에 따라 공장과 건물 등도 더 많이 지어야 할 것이고, 관련 원자재도 더 많이 써야 하며, 그로 인해 일자리도 늘어날 거랍니다. 한마디로 높아진 석유 가격이 소비와 고용을 늘릴 거란 기대가 작용하는 겁니다.
 
트럼프 당선자
● "OPEC이 미국을 인질로 잡고 있다"…본격화할 트럼프의 반격

그러나 이런 장밋빛 기대가 현실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강력한 ‘복병’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입니다. 그동안 트럼프가 내놓은 정책을 딱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미국의 이익이 최우선이다.” 거칠게 말하면, “미국이 배를 불릴 수 있다면 뭐라도 하겠다.” 이런 취지입니다. 이 같은 입장을 천명해온 트럼프가 OPEC의 감산을 가만히 지켜볼 리 없을 거란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트럼프는 그동안 미국의 ‘에너지 독립’을 누차 강조해왔습니다. 트럼프가 말하는 독립은 바로, 세계 산유량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OPEC 국가들로부터의 독립입니다. 트럼프는 OPEC이 미국을 ‘인질’로 잡고 있다고 비난할 정도로, OPEC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습니다.
 
실제는 그는 대통령이 되면 당장 사우디산 석유 수입부터 끊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또, 취임 직후 석유 산업 규제를 없애겠다고 밝혔습니다. 더 나아가 석유 시추 금지를 해제해, 석유화학산업에서 매년 일자리 50만 개를 창출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로 인해 생기는 환경오염 문제에 대해선 “기후변화는 날조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일축해버렸습니다.
 
실제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내정된 마이클 플린은 “트럼프가 취임하면, OPEC의 유가 협박은 더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영국 가디언도 “트럼프 취임 후, OPEC은 유가 하락과 맞서 싸워야 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2014년 이후 미국 셰일가스, 셰일 오일 기업체들과 ‘치킨 게임’을 벌이다 재정이 거덜 난 사우디, 국내 경제가 바닥으로 추락한 베네수엘라와 나이지리아, 이제 막 경제제재에서 벗어난 이란까지, 모두 최악의 상황에서 강적 트럼프와 ‘석유 전쟁’을 치러야 하는 셈입니다.
 
● 더 커진 불확실성…정교한 에너지 정책 필요

전문가들은 내년 유가가 50~60달러의 ‘박스권’을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예측합니다. 기술 발달로 원유 생산 단가가 낮아졌고, 이른바 ‘셰일 밴드(Shale Band)’ 이론이 작용할 거란 이유에서입니다. ‘셰일 밴드’는 국제유가가 50달러를 넘으면 셰일업체들이 생산을 늘려, 유가가 60달러를 넘지 못한다는 이론입니다.
 
유가 상승이 중동과 러시아 등 신흥시장의 수요를 회복시키고, 우리나라 수출에 호재가 될 것이라는 기대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부정적’입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화학 등의 업종이 저유가로 어려움을 겪는 건 사실이지만, 고유가가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미국 외 국가들의 불황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유가 상승은 우리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어렵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과거 세계 석유시장을 지배했던 OPEC의 힘은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검은 황금’에 전적으로 의지해온 OPEC 회원국들의 내부의 단합도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헐거워졌습니다. 여기에, 트럼프 정부의 자국을 위한 에너지 정책은 더 강경해질 겁니다. 더 정교하고 다양한 대외 에너지 정책이 절실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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