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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요즘 시위 풍속도③ - '3.5%의 법칙'과 '공유 지식'

[취재파일] 요즘 시위 풍속도③ - '3.5%의 법칙'과 '공유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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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의 법칙

“촛불 집회에 180만 명이 모이면 박근혜 대통령은 퇴진한다.”
촛불집회에 1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몰리면서 정치학자 에리카 체노웨스(Erica Chenoweth)의 ‘3.5% 법칙’이 화제가 됐습니다. 그는 1900년부터 반정부 시위에 대한 데이터를 모았습니다. 폭력 투쟁과 비폭력 운동을 연구한 그는 1940년대 이후 2000년대까지 비폭력 운동이 폭력 투쟁보다 성공 확률이 더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비폭력 운동이 폭력 투쟁보다 성공확률이 높다 (사진=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 캡처)
그의 조사에 따르면 반정부시위가 폭력으로 바뀌면 실패할 확률이 50% 정도 됩니다. 시위대가 무기를 들고 나오면 국가가 폭력을 사용해서 시위대에 대응하는 것이 합법적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국가는 압도적인 힘과 병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폭력 투쟁이 목표를 달성할 확률이 매우 낮습니다.

경찰과 군대 내부에서도 정부의 합법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을 때, 폭력적인 방식의 투쟁은 오히려 정부 내부를 단합시키고 합법성에 대한 의문을 줄어들게 만듭니다. 또 폭력을 사용하면 반정부 시위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고 체노웨스는 말합니다. 그는 폭력적인 투쟁방식이 육체적으로 힘들고 위험하기 때문에 참가자들을 두렵게 만들어 참여를 줄이고, 시위대를 막는 경찰에 동정 여론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합니다.

반면 비폭력 시위를 정부가 통제하려고 하면 정권의 지지도는 더 떨어집니다. 190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비폭력 시위를 분석한 결과, 국민의 3.5%가 시위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면 시위는 성공하고 정권은 퇴진했습니다. 한국의 경우 5160만명의 3.5%는 180만명이 됩니다. 


● 이탈, 항의, 충성(Exit, Voice, Loyalty)

저항과 관련한 또 다른 이론도 있습니다. 기업이나 정당, 국가와 같은 조직은 항상 퇴보를 겪습니다. 큰 흐름에서는 발전해나가지만 어떤 조직도 일시적으로는 퇴보를 수차례 겪기 마련입니다. 경제학자이자 사회사상가인 한 앨버트 O. 허시먼은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Exit, Voice, Loyalty)>에서 조직이 퇴보할 때 치유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탈과 항의에 대해 설명합니다.

조직이 마음에 들지 않고 무너져갈 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조직을 떠나 다른 조직으로 가는 것입니다.(이탈) 혹은 조직 내부에서 목소리를 내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만드는 방법도 있습니다.(항의) 기업이나 정당의 경우에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기업이나 다른 정당으로 이탈할 수 있지만, 국가의 경우에는 이탈이 어렵습니다. 주변에 같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국가가 없는 한국의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헬조선’의 현실에 못견뎌하며 ‘탈조선’을 외치지만 막상 이민을 택하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입니다.

국가가 퇴보하는 경우 ‘이탈’은 어려우므로 선택지는 ‘항의’ 밖에 없습니다. 유럽처럼 비슷한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나라가 가까이 있어 비교적 쉽게 이민이 가능한 곳보다 사방이 막혀 이탈할 곳이 없는 한국에서는 특히 더 항의의 방식이 강화됩니다.
촛불집회
여기서 또 한가지 작동하는 요소가 ‘충성심’입니다. 강력한 충성심은 조직이 퇴보할 때조차 항의와 이탈을 하지 못하도록 막습니다. 적절한 시기에 항의와 이탈이라는 퇴보 치유책이 발동하지 않으면 그 조직은 궁극적으로 퇴보하고 결국 소멸하게 된다는 점에서 충성심은 위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충성심은 조직에서 이탈을 막고 항의의 목소리를 내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자신이 살아온 나라를 버리고 이탈하는 선택은 국가가 도저히 구제불능이라고 판단하는 데서 나옵니다. 반면 항의는 근본적으로 자신이 속한 국가, 조직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과 충성심에서 기반합니다.

이번 국정농단 사건에서도 주로 정부나 여당에 충성심이 강한 시민들은 항의의 목소리를 한동안 눌러왔지만, 어느 순간 충성스러운 시민들도 충성의 방향을 바꿔 국가를 더 낫게 만드는 항의의 원동력이 됐습니다. 100만명의 촛불은 평소부터 정부에 불만이 있었던 사람 뿐 아니라 정부에 충성스런 지지자들까지 돌아섰기에 가능한 숫자였습니다.    

● ‘공유지식’ - 당신의 주변에 촛불집회에 나가는 친구는 몇 명입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시위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알 때 비로소 시위에 나섭니다. 사실 시위는 번거롭고 힘들고 때로는 위험하기까지 한 일입니다. 일과 공부에 바쁜 시민들이 짧은 주말동안 시간을 내서 추운 거리로 나오기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마이클 S.최 UCLA 정치학과 교수는 저서 <사람들은 어떻게 광장에 모이는 것일까?>에서 ‘공유 지식(common knowledge)’이라는 개념을 사용해 시민이 시위 참여를 설명합니다. 그에 따르면 ‘당신의 주변에 몇 명의 친구가 시위에 참여합니까?’ 라는 질문이 당사자의 시위 참여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시위대의 숫자에 상관없이 열광적으로 매번 참여하는 소수의 시민이 아니라면 대다수의 시민들은 다른 사람도 시위에 참여한다는 걸 깨달을 때 자신도 참여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 행동하길 꺼리고 함께 어울리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이번 주 토요일에 촛불집회가 열리니 함께 합시다’라는 일차적인 지식으로는 참여를 이끌어내기에 부족하고, ‘다른 사람들도 집회에 나간다더라’는 ‘공유 지식’이 있을 때 움직인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1977년에 이집트에서 빵값을 올렸을 때 커다란 저항이 일어나자, 정부는 빵의 크기를 줄이고 빵을 만드는 데 값싼 옥수수 가루를 사용했습니다. 조삼모사처럼 빵값을 올리나, 빵의 크기를 줄이나 결과적으로는 같지만 저항의 세기는 달랐습니다.

가격인상의 경우 모두가 그 사실을 안다고 인식해 저항이 일어났습니다. 반면 후자의 경우에는 시민들이 빵의 크기가 줄어들고 맛이 좀 달라졌다고 다들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도 그렇게 느끼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어 저항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다른 사람도 항의에 참가하는지에 대한 ‘공유 지식’ 유무에 따라 저항이 거세게 일어나기도, 침묵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광화문 현장
지난 11월12일 촛불집회에 100만이 모이기 전부터 주최 측은 100만 명이 모일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것이 방송과 신문을 통해 계속 시민들에게 전달되면서 실제로 자기 예언처럼 100만명이 모였습니다. 인터넷과 SNS, 방송을 통해 주말에 많은 시민들이 참가할 거라는 공유 지식이 확산되자 실제로 그만큼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만들어 냈습니다.

마이클 S. 최는 각각의 개인들이 다 알고 있지만 공유지식이 되지 않으면 터 놓고 이야기하기 힘들기 때문에 사실상 비밀로 남는다고 말합니다. 예컨대 최순실 씨의 존재와 그의 영향력을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과 여당 의원들, 일부 언론이 몇 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공론화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들에 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사실상 비밀로 지켜져 왔습니다.

이것이 태블릿 PC와 같은 증거로 한번 터져나와 공유 지식이 되는 순간 예전부터 알고 있는 사람들의 내부고발과 증언이 쏟아졌습니다. 내부 고발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내가 얼마나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 대해 알고 있느냐하는 일차적인 지식보다 이제 다른 사람들도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을 말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정보(공유지식)가 더 중요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국가와 정부의 권력도 실제로 가지고 있는 힘보다 상징을 통해 유지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을 아끼는 발화 방식에 대해 이전에는 사람들이 권위와 카리스마를 떠올렸다면, 지금은 다수 시민들이 '연설문 수정'과 무능력함 등을 그의 발언과 표정에서 떠올리게 됐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복종할 것이라고 생각될 때 정권은 강한 권력을 가지고, 권위가 무너지고 조롱거리가 돼 아무도 복종하지 않을 거라고 사람들이 눈치 채는 순간 정권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립니다.

● 200만 촛불에 대한 대답 

촛불집회를 주최하는 퇴진행동은 이번 주 토요일 집회에 역대 최대인 200만이 참여할 거라 예상했습니다. 200만명이 몰릴 것이 예상된다는 사실이 방송과 신문을 타고 시민들에게 전달되고, 지난 2주 동안 100만 명이 촛불집회에 참여했다는 정보도 있는 시민들은 ‘다른 사람들도 이번주 토요일에 나오겠구나’하는 공유지식을 가지게 됩니다.

또 SNS는 주변 사람들이 집회에 나가있거나 나갈 예정이라는 정보를 제공합니다. 이처럼 공유지식이 확산되면서 이번 주말에는 아마 200만에 가까운 시민이 몰릴 것으로 보입니다. 오는 토요일 국민의 3.5%가 넘는 시민이 비폭력 행진을 이어갈 때, 박근혜 대통령은 체노웨스 교수의 법칙에 또 하나의 사례로 남을지 예외가 될 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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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Youtube - the success of nonviolent civil resistance : Erica Chenoweth at TedX 
<떠날것인가, 남을 것인가> 앨버트 O. 허시먼, 나무연필
<사람들은 어떻게 광장에 모이는 것일까?> 마이클 S. 최,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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