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김정은이 백령도 부근에서 포사격 훈련을 한 이유는?

안정식 북한전문기자 cs7922@sbs.co.kr

작성 2016.11.11 18:5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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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김정은이 백령도 부근에서 포사격 훈련을 한 이유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이 서해상의 마합도방어대를 시찰해 포사격훈련을 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보도했다. 마합도는 백령도에서 18km 정도 떨어진 최전방 지역이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이 사격명령을 내리자 “전선수역을 통째로 들었다놓는 요란한 포성이 울려퍼지고 멸적의 포탄들이 대기를 가르며 날아가 정해진 해상목표를 정확히 명중”했다고 전했다. 기사로만 보면 상당한 규모의 훈련이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김정은이 서해5도 부근의 최전방지역을 찾아 이런 포사격훈련을 참관했다면 단순한 시찰 이상의 의미를 갖는 상당히 도발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 군 당국이 파악한 바로는 마합도에서는 포사격훈련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의 포사격이 있었다고 한다. 불과 해안포 1-2발을 쏜 것으로 보여 군사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어보인다는 것이다. 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서 일선 군부대를 격려하기 위한 방문이자 김정은의 즉흥적인 사격 명령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서해 5도 부근의 최전방지역에서 최고지도자 참관 하에 포사격훈련을 했다는 것이 갖는 정치적 의미를 북한이 모를 리 없는 만큼, 이는 상당히 계획된 행동이라고 봐야 할 듯하다.김정은 백령도 부근 포사격 훈련● 서해 포사격훈련은 대남 메시지

북한의 이번 포사격훈련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진행된 것이라면 북한은 어떤 메시지를 주려고 한 것일까?

먼저, 미국과 남한 중 어느 쪽에 대한 메시지인지를 따져보자면 미국보다는 남한을 겨냥한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일반적으로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는 핵실험이나 중장거리미사일 발사 같은 도발을, 남한을 상대로는 비무장지대나 서해 5도 지역에서의 도발을 선택한다. 비무장지대나 서해 5도 지역에서도 대규모의 무력충돌이 발생하면 정전체제의 불안정성과 평화협정 체결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해석돼 미국에 대한 메시지로도 해석할 수 있지만, 이번처럼 북한 수역에서의 사격훈련은 미국이 신경을 쓸 정도의 사안이 아니다. 더구나, 막 선거가 끝나 정신이 없을 트럼프 진영이 서해에서 북한이 포사격훈련을 했다고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가질 리는 없다.

이번 훈련이 남한을 겨냥한 메시지라면 북한이 의도하는 것은 뭘까?

단순히 생각하면 남북간 긴장고조는 지금 시점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에 유리하다. 안보가 불안해지는 상황인데 국정의 책임자가 없으면 안되니 대통령이 어쨌든 중심을 잡고 현 상황을 관리해야 한다는 논리가 형성될 수 있다. 안보가 불안한데 대통령이 하야까지 해 버리면 우리 사회가 더 위험해지는 것 아니냐는 논리가 일부에서 나올 수도 있다.

그렇다면, 북한이 박 대통령을 도와주기 위해 이 시점에 최전방 포사격훈련을 했을까?

북한이 그동안 박 대통령의 대북 압박 정책을 신랄히 비난해왔고 최순실 사건 발생 이후로는 연일 남한의 대통령 퇴진 여론을 보도했던 것을 보면, 북한이 박 대통령을 도와주기 위해 이번 훈련을 했다는 논리는 성립되기 어려워 보인다. 북한도 내심 이번 기회에 박 대통령이 퇴진하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김정은 백령도 부근 포사격 훈련● 궁극적으로는 남한 혼란 부추기려는 의도

이번 포사격훈련이 우리 사회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지를 좀 더 생각해보면 북한의 의도를 짐작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북한발 안보 위기가 커져가면 박 대통령과 청와대, 일부 보수세력에서는 안보가 무엇보다 우선이라는 논리로 대통령 중심의 수습책을 고려하려는 유인이 더 강해질 것이다. 대통령 퇴진 이후의 정치 일정이 합의돼 있는 것도 아닌 만큼, 불확실한 미래를 맞닥뜨리기보다는 현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야당과 시민사회는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인정하기 어렵다. 안보불안은 핑계일 뿐 대통령이 빨리 권한을 내려놓고 2선 후퇴를 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통령의 통치력은 작동하지 않으나 ‘자리’는 유지되는 어정쩡한 상황이 한동안 계속될 수 있다. 만약, 이런 상태가 박 대통령의 남은 임기인 1년 4개월 동안 지속된다면 대한민국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이렇게 본다면, 김정은의 최전방 포사격훈련 참관은 짧게 보면 박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는 훈련이지만, 길게 보면 남한내 혼란을 계속 부추기려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도 은근히 안보불안을 부추기는 행동들을 적절한 수위를 조절해가며 할 수도 있다. 이러한 북한발 변수에 휘둘리지 않는 방법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서 빨리 리더십 부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