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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수능시험 때 지진 나면? 아리송한 교육부 대책

[취재파일] 수능시험 때 지진 나면? 아리송한 교육부 대책
매주 월요일마다 교육부는 출입기자를 상대로 주간 보도계획을 설명한다. 장소는 3층 기자실 옆 방이고 시간은 오전 11시로 정해져 있다. 대변인이 진행을 하는 가운데 정책 담당 국장이나 과장이 참석을 해 보도자료에 대한 설명을 하고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한다. 기자들에게는 자료를 읽어봐서 알 수 없던 내용을 직접 따져 물을 수 있는 기회다. 또 보도자료 외에 사회적 이슈나 현안에 대한 교육부의 생각을 묻고, 국민들의 여론을 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2주 전인 10월 24일에는 수능시험 안전 대책 보도자료가 나왔다. 매년 이맘때면 나오는 단골자료지만 올해 안전대책에 쏠린 기자들의 관심은 예년과 달랐다. 교통, 소음방지 대책 말고 지진 관련 대책이 처음으로 추가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난 9월 12일 전국을 뒤흔든 경주 지진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규모 5.8의 지진은 한반도에 발생한 지진 가운데 가장 강력했다. 미처 겪어보지 못했던 진동이라 놀라움은 더 컸 고 트라우마는 깊다. 국민안전처가 집계한 지진 피해는 부상 23명, 재산 피해 1,118건에 이른다. 부상자도 경주와 가까운 경북, 울산, 부산뿐 아니라 충북, 인천에서까지 나왔다.

문제는 두 달가량 지난 지금도 경주 지진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3일까지 발생한 여진은 모두 511회나 된다. 규모별로는 1.5~3.0이 492회로 가장 많고, 3.0~4.0 17회, 4.0~5.0 사이도 두 차례나 발생했다.
한국지질자원 연구원
8일 오전 교육부는 엠바고가 필요 없는 즉시 보도자료를 통해 지진대책을 내놓았다. 수능일인 17일 기준 9일전이다. 수능 날 지진 발생 때 3단계로 대처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첫째 진동이 경미한 경우 시험을 계속할 수 있다.

둘째 진동은 느껴지나 안전성이 위협받지 않는 경우 일시적으로 책상 밑에 대피하였더라도 시험을 재개할 수 있다. 셋째 진동이 크고 실질적인 피해가 우려될 때 시험장 책임자가 교실 밖 대피를 결정한 경우 운동장으로 대피한 뒤 시도 상황실 지시를 따른다고 돼 있다.
교육부
심도 있게 논의한 대책치고는 여전히 허전하고 안심이 안 된다. 우선 진동이 경미한지, 중한지에 대한 기준과 판단 주체가 없다. 지진에 대한 느낌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민감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둔감한 사람도 있다. 통일된 행동을 위해서는 어쨌든 숫자로 된 기준이 필요하다.

기상청은 지진이 나면 진앙지와 지진 규모를 발표한다. 규모에 따라 크기를 가늠하는 것이다. 지진 규모와 진도에 따른 진동 전달 상태는 규모 2.9 미만일 경우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 전혀 느낄 수 없는 수준이라고 한다. 3.0~3.9 규모의 경우 건물 윗층에 있는 사람들만 느낄 수 있고 매달린 물체가 진동한다.

규모 4.0~4.9의 지진이 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느끼며 그릇과 창문이 깨질 만큼 충격이 전해진다. 지난 경주 지진처럼 규모가 5.0~5.9일 경우 모든 사람들이 밖으로 뛰어나오고 가구가 움직이며 부실한 건축물은 큰 피해가 발생한다고 돼 있다. 규모 6.0~6.9 규모의 지진이 나면 벽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며 구조물 붕괴가 잇따를 정도의 피해가 발생한다. 기상청이 발표하는 이런 지진 규모에 따라 행동요령이 마련돼야 혼란을 줄일 수 있다.

또 2단계 대책, 진동이 느껴졌지만 일시적으로 책상 밑에 대피했다가 다시 시험을 치르는 경우도 진동 규모와 달리 전국 모든 고사장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인지, 지진이 발생한 진앙지 주변에만 해당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게다가 3단계 대책의 경우 운동장으로 대피한 뒤 시도 상황실 지시에 따른다고 돼 있는데, 시험을 연기할지 강행할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학생들이 운동장으로 우르르 쏟아져 나와 대피할 정도의 지진이라면 정신적인 충격과 공포가 상당한데다 건물의 피해도 우려되는 상황이어서 시험을 정상적으로 계속하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긴박한 때에 알기 쉽고 분명한 행동지침 없이 시도 상황실에 대책을 물어보라는 것은 너무 안이하다.

교육부는 3단계별 각 대처 단계는 지진 규모와 진앙지로부터의 거리 등을 반영하여 사전에 마련된 프로그램에 따라 전국 85개 시험지구별로 자동 산출된다고 밝혔다. 지역별 진동 크기에 따라 각각 다르게 대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번 경주 지진의 경우 전국적인 진동이 있었지만 진앙지와 가까운 부산, 울산, 대구 등의 진동이 훨씬 컸다. 운동장으로 대피 할 만큼 큰 진동이 느껴지는 지역에서 만일 시험을 계속 진행하기 어려울 경우 수도권 등 다른 지역에서는 시험을 중단하지 않고 강행할 수 있을까? 수험생들을 집에 돌려보내지 않을 수도 없고, 대체 보안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그래서 지역을 떠나 전국적으로 통일된 대처요령이 필요한 것이다.    

교육부는 “지진에 대한 수험생, 학부모의 불안을 경감하고 안정적 시험 시행을 뒷받침하기 위해 차관 주재 비상 TF를 운영하기로 했다”고 덧 붙였다. 비상대책반 구성과 운영이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떠한 매뉴얼을 만들어 적용 하느냐가 우선이다. 보여주기식 대책반으로는 불안감을 누그러뜨릴 수 없다.

지진은 예고 없이 오는데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험도 부족하기 때문에 더 촘촘한 대책이 필요하다. 가장 강력한 지진 규모를 가정하에 대책을 마련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자연재해에 대한 방심은 되돌릴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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