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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혼자서도 잘 살아(볼래)요―③ 이웃이 생겼다

[취재파일] 혼자서도 잘 살아(볼래)요―③ 이웃이 생겼다
▲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흔한 가구형태는 ‘1인 가구’입니다. 지난 9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5 인구주택총조사’를 보면 1인 가구가 520만3000가구로 전체(1911만1000가구)의 27.2%를 차지했습니다. 2인 가구(26.1%)를 제치고 이른바 ‘대세’가 된 겁니다. 1인 가구의 삶이 곧 대한민국의 보통 삶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오늘, 초보 1인 가구에 막 합류한 30대 총각 기자가 혼자서도 잘 살아보려고 애쓰는 일상을 연재합니다.

-지난회 보기-

① 독거의 시작
② 굶으면 죽는다

혼자서도 잘 살아(볼래)요―③ 이웃이 생겼다
후배가 말했다
"자취의 진짜 시작은 아플 때"
이사 첫날부터 느낀 고독
아프니 더욱 서러워

1인 가구의 고독은
지역사회와 함께 못 해 더 커져
"아프지 말자"며 비타민C 먹다가
'옆집'이 건넨 방울토마토에 감동


후배가 말했다. “진짜 자취의 시작은 아플 때입니다” 과연 그랬다. 회식 마치고 돌아온 날, 체기에 새벽 내내 뒤척이다 게워내길 반복했다. 온몸이 덜덜 떨리는데 덮고 있는 건 집 나올 때 가져온 홑이불 한 장이 고작이다. 아픈데 부질없는 생각들만 떠올랐다. ‘누가 두꺼운 이불이라도 꺼내주면 좋겠다’ ‘누가 약이라도 사다주면 좋겠다’ 아, 난 혼자지. 서러웠다.

고독은 첫날부터 느꼈다. 이삿짐을 풀고 TV를 켠 때부터다. TV 속 연예인들은 시끄럽건만 난 말이 없는 게 새삼스러웠다. 자취하는 친구들 집에서 찌그러진 맥주 캔, 빈 소주병 따위를 보며 ‘왜 저러고 살까’ 의아했었는데 이제는 내가 ‘혼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 보금자리가 생겼는데도 저 조용한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 저녁 약속이라도 있는 날이면 2차, 3차까지 상대를 놓아주지 않는 나쁜 버릇까지 생겼다.
고독은 때론 물리적 고통도 안긴다. 고장난 화장실 문을 부수고 탈출한 선배의 이야기가 웃기면서도 슬펐다.
고독은 때론 물리적 고통도 안긴다. 옆 부서의 한 선배는 내게 “화장실에 갈 땐 꼭 전화기를 들고 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문고리가 고장 나 큰 사달을 치렀다는 것이다. 땀을 뻘뻘 쏟으며 문을 부수고 탈출하기까지 1시간이 걸렸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틀 뒤 방문하기로 한 어머니를 기다려볼까 싶어 바닥에 누워도 보고 목이 타 수돗물도 마셨다는데, 그 고난의 탈출기가 우스우면서도 내 일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슬펐다.

떡을 돌려볼까 생각한 것도 고독 탓이다. 명함 한 장씩과 함께 윗집 아랫집 이사 떡을 돌리면 이웃이 생기지 않을까. 이 기획을 들은 동료들은 “유난 떨지 말고 아서라”며 코웃음을 쳤다. 문 밖에 키 180cm 넘는 남성이 알루미늄 호일에 싼 물건을 들고 서 있는 것 만으로도 경찰을 부를 사람이 태반일 거라고 그들은 추정했다. “영화 <추격자> 속 개미 슈퍼 아줌마가 어떻게 갔는지 몰라?” 한편으론 괜히 또 내 직업을 알렸다가 쓰레기 배출이나 주차 문제로 꼬투리 잡혀 피곤해질까 두렵기도 했다. 이 도시에서 익명성은 때론 나를 방어하는 장치니까.

1인 가구가 겪는 고독은 지역사회에 소속될 수 없다는 데서 더 커진다. 이 나라에 지역사회라는 게 제대로 존재하긴 하느냐는 것부터가 논란거리지만, 그 비슷한 게 있다면 약국과 관변 단체, 조기축구회나 테니스 동호회 같은 게 있다. 주로 정치인들이 선거 때 찾는 집단이다. 대개의 1인 가구는 평일엔 회사의 노예요, 주말엔 늦잠을 자야 하기에 이런 커뮤니티에 속하기가 쉽지 않다. 주민센터의 이른바 문화 강좌라는 것은 남의 이야기다. 지역에서 출퇴근 때만 목격되며 외딴 섬 같은 존재가 돼버린 이 가여운 사람들은, 동네 카페에 모여서도 저마다 노트북과 스마트폰에 고개를 파묻는다. ‘좋아요’를 눌러 손에 잡히지 않는 공동체를 갈구한다.

공유 주택이 뜨는 건 아마 이런 현실 때문일 거다. 독립은 좋지만 고립되긴 싫은 젊은이들이 선호한단다. 한 지붕 아래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식당, 화장실 등을 함께 쓰며 삶을 공유하는 실험이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세 부담을 나누고 가치를 공유하며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들 수만 있다면 긍정적 1인 가구 모델이 될 거란 기대다. 이런저런 규제에 묶인 노후주택 소유주를 세금으로 돕는 구제책이 되거나, 수시로 회사를 만들었다 엎어버리기를 반복하는 자칭 사회적 기업가들의 수익 모델에 그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요즘 나는 그저 아프지 말자 조심할 뿐이다. 앓고 난 뒤로는 더 수시로 비타민C 정제를 입에 털어 넣는다. 그러다 ‘행동’했다. 이삿날 짐 나르며 낑낑대는 날 보고 생수 두 병을 거저 준 ‘옆집’이 기억나 보답의 의미로 롤 케이크를 사다 건넨 거다. 옆집은 이내 초인종을 눌러 답방을 왔다. “고향 어머니가 보낸 것”이라며 잘 익은 방울토마토를 한아름 손에 안겼다. 그때의 고마움은 여기 글로 다 옮기지 못한다. 아무렴, 비타민제보다야 토마토가 낫지. 고맙고 또 고마워하며 아침마다 맛있게 먹었다. 이웃은, 행동해야 생기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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