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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양심적 병역거부 ② 5번째 심판대에 오른 '양심적 병역거부'…헌재의 판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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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은 생명만큼 중요하지만, 양심을 보호할 장치가 없다."
"양심의 자유는 공익을 위해 법률로 제한 가능한 상대적 자유다."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는 공회전의 연속이다. <나는 왜 병역을 거부했는가>, <그들은 왜 무죄를 선고하는가> 기사에서 보도했듯 사법기관 등 우리 사회가 뒤늦게 관심을 가졌지만,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양심의 자유는 영구불변의 보편타당성을 가진 권리로 보는 시각도 존재하지만, 동시에 '국가 안보'라는 중차대한 현실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SBS<마부작침>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둘러싼 법적 쟁점과 대체복무제에 대해 알아봤다.

[마부작침] "양심의 자유는 가장 강력한 정신적 자유권".. 법리 논쟁은 끝?


14번의 위헌 제청과 반복되는 유무죄 번복을 두고 첨예한 법리다툼이 지속되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법원의 잇딴 유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무죄를 선고한 청주지법 1심 재판부는 이런 논거를 제시했다.
[마부작침] 청주지법 판결문

윤리적 판단에 근거한 양심의 결정이라면 이에 반하는 행동을 강요받지 않고, 양심의 결정에 따라 행동할 자유가 있다는 뜻이다. “무력충돌이 있더라도 타인의 생명을 박탈하지 않겠다”는 윤리적 신념에 대해 개인도, 국가도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마부작침] 국가안보 ><button class= 이미지 확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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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심은 양심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뒀지만, 헌법재판소는 달랐다. 헌재는 양심을 중요한 가치로 인정하면서도, 양심이 외부로 표출되는 순간 제약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즉, 각자의 신념, 가치관을 마음속에서 만들어가는 '양심 형성의 자유'는 절대적 기본권이지만, 양심적 결정을 외부로 표현하는 '양심 실현의 자유'는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병역거부 역시 내심으로 살상을 거부하는 양심을 형성했더라도, 이를 외부로 실현하는 건 별개의 문제로 봐야된다는 것이다.

헌재는 4차례에 걸쳐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양심 형성의 자유'와 '양심 실현의 자유'를 구분했다. 양심이라는 주관적 사유로 병역 의무의 예외를 인정할 때 생길 수 있는 위험성, 즉 국가안보의 문제가 주요 근거가 됐다. 헌재는 “병역법이 추구하는 공익은 국가 존립과 모든 자유의 전제인 국가안보와 병역의무의 공평한 부담이라는 대단히 중요한 공익”이라는 말로, ‘국가안보’를 ‘양심’ 앞에 놓은 것이다.

하지만 '양심 실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양심의 자유'는 명목상 보장에 그치는 한계가 있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이재승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자신의 종교관, 가치관, 세계관 등에 따라 인간 살상에 반대한다는 양심을 따를 수 있는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양심을 보호할 수단으로 꼽히는 ‘대체복무제’라는 대안에 대해서도 헌재는 다음과 같이 판단하고 있다.
[마부작침] 헌법재판소 판결문






 
헌재 입장에서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까지 정부를 향해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고 선언하기엔 아직 부담이 크다는 얘기다. 반세기 동안 공고하게 형성된 병역법을 바꾸라고 판단할 경우, 이에 따라 발생 가능한 책임을 헌재가 질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고 싶진 않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병역 의무의 이행에 있어 객관성과 공정성 확보 역시 중요한 공익적 문제"라며 "병역거부 사유와 대체복무 내용에 대해 진지한 사회적 합의부터 선행될 필요성이 크다"고 말했다.

[마부작침] 대체복무제는 병역제도의 붕괴? 의무소방관, 산업기능요원은?



정부가 나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노무현 정권은 대체복무제 도입을 약속하며 구체적 법안을 추진했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무산됐다. 이후 이명박 정권은 ‘국민적 합의 부족과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대체복무제 도입을 반대했고, 이후 정치권에서 본격적 논의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이재승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도입 반대 근거로 남북 대치의 특수성에 따른 국가 안보 위기, 병역제의 형해화 등을 들지만, 실제로 이런 효과는 미미하다는 게 입증됐다"라고 주장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한다고 해서 이들이 다시 군 입대를 결정하지도 않고, 이들은 계속 군 대신 감옥을 택하고 있다는 사실이 반세기 동안 확인됐다는 것이다. 형사처벌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병역 의무 이행을 강제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또 군의 현대화 및 정보화 추세와 더불어 연간 징집인원 30만 명 중 0.2%로 추산되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전투력 감소를 야기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대체복무제 도입으로 병역제의 근간이 흔들릴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헌재 역시 이런 우려에 바탕해 "비록 지금 단계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비중이 크지 않더라도 대체복무제를 도입해 형벌을 부과하지 않는다면 양심을 빙자한 병역기피자들이 급증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마부작침] 대체복무제 찬반 입장
이재승 교수의 재반론은 이렇다. "해외 사례를 볼 때 이런 주장이 설득력이 낮다"며 "중국과 대치 중인 타이완도 지난 2000년 대체복무제를 도입할 때, 병력 자원의 손실이 있을 것이란 반대 의견이 거셌지만, 정작 시행 이후 군의 효율성은 물론, 인권 보호라는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것이다.

통상 해외에선 대체복무제를 처음 시행할 때 군 복무기간의 1.5배~2배 사이를 복무하도록 하는데, 이렇게 하면 단순히 군대 가기 싫다는 이유로 대체복무제를 악용하는 사례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게 도입 찬성론자들의 주요한 논거다. 또 군대가 아닌 정신병원, 양로원, 요양소, 환경보호, 구조 업무 등 보통 사람들이 기피하거나 인력난이 심한 곳에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복무시키면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실보다 득이 클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19대 국회에선 당시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육군 복무기간의 1.5배 수준의 대체복무제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대체복무제를 둘러싼 또 다른 핵심쟁점은 형평성의 문제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남북한 대치상황에서 강력한 전쟁억지력을 위해 징병제를 채택한 이상, 병역 의무의 형평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헌재도 이런 맥락에서 "병역 의무에 예외를 허용함으로써 형평성 문제가 사회적으로 야기되면 대체복무제 도입이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국가 전체 역량에 심각한 손상을 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물론 이런 위험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지만, 도입 찬성론자들은 우리나라가 시행해온 의무 경찰, 의무 소방관, 산업기능요원 제도를 예로 들면서 대체복무제로 인한 위험성을 과장해선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군 복무를 대신한 이런 제도를 시행한다고 해서 병력 자원의 손실이 생긴 건 아니었던 것처럼. 또, 이 제도를 경험한 사람들을 두고 국방의 의무를 져버렸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중요한 대목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도 국가가 부여한 의무를 이행하고 사회적으로 보탬이 되길 바라고 있다는 사실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 대부분은 "기간이 1.5배든, 2배든 신념과 양심이 존중될 수 있다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도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비디오머그×마부작침: 양심적 병역거부자 인터뷰 '나는 왜 병역을 거부했는가') 장소가 어디가 되었든, 무슨 일이 되었든 마다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들은 군사훈련이 배제된 대체복무를 원할 뿐이다.

[마부작침]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는 나라

해외에서는 오래전부터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대체복무제를 마련한 나라가 여럿이다. 1917년 덴마크, 1922년 네덜란드를 비롯해 미국, 영국, 독일, 그리스는 물론 이스라엘과 러시아, 핀란드 등 UN회원국 193개국 중 57개 국에서 법률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12개 국가에선 관행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나머지 124개국 가운데 21개 국은 군대를 보유하고 않고 있고, 67개국은 징병제가 아닌 자원입대로 모병이 이뤄지고 있는 걸로 학계는 파악하고 있다. 특히, OECD 회원국 가운데 양심적 병역 거부를 허용하지 않고 있는 나라는 한국 뿐이다.

[마부작침] 5번째 판단 앞 둔 헌재.. 헌재가 생각하는 양심의 무게는?



양심적 병역거부는 돌고 돌다가 항상 원점으로 돌아가곤 했다. 헌재는 4번의 합헌 결정을 내렸었고, 대법원은 계속 유죄를 선고했고, 하급심에서의 무죄 선고나 위헌 제청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고리를 누가 끊고 또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까. 헌법재판소 연구관 출신인 노희범 변호사는 "대체복무제 도입 목소리가 있지만, 이들은 소수이고 다수의 국민이 군복무에 있어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이유로 정치권은 이를 외면해 왔다"고 말한다. 앞으로도 정치권이 나서 적극적으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는 걸 기대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이다.

공권력의 위헌성을 판단하는 권한을 가진 헌재만이 원점에 머물고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노희범 변호사는 "남북 분단의 특수성만으로 비인권적 현실을 지속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며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되 2년 정도의 잠정 적용을 통해 대체복무제를 마련할 시간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매듭을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시금 '양심'을 심판대에 올린 헌재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이전의 4차례와 마찬가지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양심을 꺽고 병역의무를 이행할 것인가" 아니면 "신념을 유지하며 형사처벌을 감수할 것인가"라는 두 가지 선택지 가운데 하나만 선택하도록 결정하게 될까. 과거 헌재 결정문에서 소수 의견을 낸 적 있는 두 명의 재판관은 "이 중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우리 헌법의 핵심인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는 치유될 수 없는 큰 손상을 받을 수 밖에 없게 된다"고 우려했다. 

법조계에선 올해 초, 여름이 가기 전에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대한 헌재의 5번째 결정이 내려질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이미 여름은 지났다.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과 연구관들이 전원재판부에서 결정문을 작성하기 전, 막바지 자료 조사를 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9명의 재판관이 5번째 결정문을 어떻게 작성하는지에 따라 우리 사회의 '양심 실현의 자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비로소 시작될지도 모른다.

권지윤 기자(legend8169@sbs.co.kr)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분석: 한창진·장동호
디자인/개발: 임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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