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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회 앞두고 PC방 가야 하는 프로배구 선수들

프로배구가 다음 달 15일 V-리그 개막을 앞두고 오는 목요일(22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청주에서 컵 대회(2016 청주-KOVO 컵)를 개최합니다. 컵 대회는 보통 7월에 열리는데, 올해는 리우 올림픽이 있어서 시즌 개막을 눈 앞에 둔 9월 말로 늦춰졌습니다. 덕분에 이번에는 각팀 외국인 선수들도 출전할 수 있게 됐습니다. 프로 팀들로서는 새 외국인 선수와 국내 선수들이 실전에서 호흡을 맞춰 볼 수 있는 장점이 있고, 팬들 입장에서도 볼거리가 늘었습니다. 외국인 선수들이 컵 대회에 출전하는 건 지난 2010년 이후 6년 만으로, 용병들의 출전으로 이번 컵 대회는 '미리 보는 V-리그'로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회 개막을 코앞에 둔 마당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대한배구협회가 외국인 선수의 이적동의서(ITC)를 승인해주지 않아 외국인 선수들이 대회에 출전하지 못할 수도 있게 된 겁니다.

상황은 이렇습니다. 추석 연휴 바로 전날인 지난 13일, 배구협회가 프로연맹(KOVO)과 프로 구단들에게 한 통의 공문을 보냈습니다. 남녀 13개 팀 감독과 코치, 국내 선수들의 협회 등록을 요청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초-중-고-대학교 팀과 실업팀 등 아마 팀 선수들만 협회에 등록을 하고 프로 선수들은 등록을 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국제배구연맹(FIVB) 규정에 따라 프로 선수들도 협회에 등록을 하라는 것입니다. 원칙대로, 국제 룰 대로 하자는 것이고 다른 종목들도 프로 선수들이 협회에 등록하는 사례가 있는 만큼 취지 자체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등록을 요청하는 시기와 방법이 문제였습니다.

협회가 공문을 보낸 시점은 컵 대회 개막 9일 전이었지만 추석 연휴 5일을 감안하면 사실상 나흘 전에 보낸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프로농구의 경우 지난달에 이미 대한농구협회가 프로연맹과 각 구단에 공문을 보내 9월 중으로 선수 등록을 마쳐달라는 요청을 한 것과 비교됩니다. 또, 마감 시한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협회 등록을 마치는 구단에게만 외국인 선수 이적동의서를 승인해주겠다고 단서를 달았기 때문에 이번 대회에 외국인 선수를 출전시킬 예정인 각 구단에게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겁니다. 이적 동의서는 선수가 다른 나라 팀에서 뛰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서류로, 예를 들어 프랑스 선수가 우리나라에서 뛰려면 프랑스배구협회가 이적 동의서를 발급하고 우리 협회가 승인한 뒤, 국제배구연맹(FIVB)에서 최종 승인을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협회 등록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전산상으로 이뤄지는데, 인적 사항을 취합해서 누가 대표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선수 개개인이 본인 인증도 거치고 직접 입력해야 합니다. 입력 과정 교육 등을 포함해 한 명 등록하는데 족히 1시간은 소요된다고 합니다. 대회 준비차 일찌감치 청주에 가서 훈련하고 있는 팀들의 경우 "선수들이 다 개인 노트북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한자리에 모여 동시에 할 수 있는 여건도 안 된다. 여의치 않으면 PC방에 가서 단체로 입력해야 할 판"이라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프로연맹이 협회에 "컵 대회 개막이 임박해 선수단이 대회가 열리는 청주에 가 준비하는 상황이라 어려움이 있다. 등록은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완료할 테니 일단 외국인 선수 이적동의서는 먼저 승인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협회는 원칙대로 하겠다며 거절했습니다. 외국인 선수 이적동의서의 경우 협회가 승인을 해도 국제연맹에서 최종 승인하는 과정이 하나 더 남아있기 때문에 현지(스위스 로잔)와 시차까지 고려하면 구단들이 서둘러 등록을 마친다고 해도 대회 전까지 이적동의서 승인 과정이 다 끝날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자칫 대회 초반에 경기가 배정된 팀들만 외국인 선수 없이 경기를 치르는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프로연맹은 21일(수) 오전 각 구단 단장들이 모인 가운데 긴급 이사회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할 예정인데, 일단 합법적인 규정은 따라야 하고, 팬들과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는 만큼 구단들이 협회의 등록 요청을 거부하고 아예 외국인 선수 없이 컵 대회를 치르는 파행이 벌어질 것 같지는 않지만 협회의 '일방통행'식 행정과 '불통'에 대한 불만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배구협회는 3년 전 프로 구단들에게 용병 한 명당 3천만원의 등록비를 일방적으로 요구했다가 여론에 밀려 철회했던 전력이 있습니다. "등록을 하고 나면 재정이 안 좋은 협회가 과도한 등록비나 연회비 같은 뭔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냐?" "외국인 선수를 볼모 삼아 구단들을 압박하고 있다"는 얘기들이 그냥 구단들의 불평으로만 들리지는 않는 이유입니다. 
배구협회는 지난 리우 올림픽에서 여자대표팀에 대한 열악한 지원 때문에 팬들의 큰 비난을 받았습니다. 새로 선임된 서병문 회장은 "대표팀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을 위해 프로연맹과 폭넓게 대화해 최선의 방안을 모색하겠다"며 '소통'을 강조했는데, 여전히 협회의 모습은 '소통'보다는 '불통'에 가까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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