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 공무원이라면 누구나 그려볼 만한 이 ‘꿈의 커리어’는 바로 62대 농림축산식품부장관, 김재수 장관의 이력이다. 행정고시에 합격해 그와 같이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사람이 100명이라고 하면, 저 정도 자리에 오를 사람은 1명은 커녕 0.1, 아니 0.01명 정도 될까 말까겠다. 이른바 고위 공직은 물론 꽤 오랜 기간 알짜배기 공기업 사장까지 지냈으니 참 ‘난사람’이 아닐 수 없다.
사회적 통념상 당시 그가 졸업한 모교를 지금의 ‘지방대’라는 범주에 포함할 수 있는가는 별도의 문제로 하자. 그가 지방대 출신으로서 긴 공직생활에 얼마나 어려움을 겪었는지 기자는 잘 모른다.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서울대 행정학 석사, 미국 미시간주립대 경제학 석사, 중앙대 경제학박사 학위까지 따내는 기염을 토했지만 “지방대 출신이 아니었다면 굳이 그렇게까지 공부를 더 안 해도 됐을텐데!” 하고 억울해 할 수도 있겠다. 더 좋은 학교에 더 좋은 부모를 만났다면 더 크고 엄청난 자리에 올랐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물론 있을 게다.
걱정스러운 건 한 나라 장관이 된 사람의 인식이 그 정도라는 점이다. 김재수 장관이 모교 총동문회 SNS에 올린 ‘자칭 흙수저’ 발언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비롯됐다. 김 장관은 쏟아지는 의혹과 질타에 무엇 하나 제대로 해명하지 못했다. 여의도 원룸오피스텔 전세값도 안 되는 1억 9천만 원으로 93평 아파트에 7년 동안 살았고 1%대 초저금리 대출을 받는 등 숱한 특혜를 누렸다. (본인 스스로 “양심에 따라 숨김없이 답하겠다”고 선서한) 청문회에서는 “국민 눈에 대단히 부정적으로 비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흔치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고위공직자로서 구름 위에 살았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예전에 비슷한 분도 한 분 계셨다. 지난 2011년 이명박 정부 감사원장 후보로 올랐던 정동기 전 민정수석이다. 역시 검사로서 승승장구하다 법무부 차관을 거쳐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역임하며 출세가도를 달렸던 그는, 그 마지막 관문 하나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 서울대 못가고 비명문대 나온 게 평생의 한(恨)”이라고 말했다. 낙마의 변(辯)이었다. 몇 년이 지났지만 두 풍경이 묘하게 겹쳐지는 건 왜일까.
세간에서는 김 장관 같은 분들에게 “관운(官運)이 있다”고 한다.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본인의 능력 뿐 아니라 운(運)이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운’이란 건 단순히 개인의 복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타인의 도움, 크게는 시대와 상황의 총합이라고 했다. 본인의 능력이 주(主)가 됐겠지만, 그 역시 숱한 타인의 도움과 조직의 지원을 받으며 걸어왔을 게다. 그 과정에서 공복으로서의 사명감과 책임감도 함양했어야 옳다. 그러나 ‘시골 출신에 지방대 나왔다며 무시당했다’는 그런 말에는 그런 인식을 찾아보기 힘들다. 적수공권 자수성가로 이 자리까지 왔다는 왜곡된 자존심과 독선, 아집만 엿보인다.
김 장관은 SNS에 올린 글 말미에 “더 이상 지방출신이라고 홀대받지 않고 더 이상 결손가정자녀라고 비판받지 않는 더 나은 세상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제반조치를 취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한 방법’이라고 하는 게 “본인의 명예를 실추시킨 언론과 방송, 종편 출연자를 대상으로 법적 조치를 추진하겠다” 는 거다. 이럴 땐 제일 만만한 게 언론이다. 방향이 틀려도 한참 틀렸다.
김 장관님께 한 말씀 드리고 싶다. 지방 출신에 결손 가정 자녀라고 무시받지 않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길은 장관 업무를 훌륭하게 수행하시는 게 첫 번째요, 두 번째는 더 이상 고위 공무원으로서 지나친 특혜 안 받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처신으로 존경받는 공복이 되시는 것이다. 하나 더 보태면 괜한 피해의식을 후배들에게 물려주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