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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라니냐가 몰고 온 폭염 "광복절까지 지속"…'겨울엔 한파 닥치나'

[취재파일] 라니냐가 몰고 온 폭염 "광복절까지 지속"…'겨울엔 한파 닥치나'
폭염의 기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어제(10일) 경주의 기온은 38.2도까지 올라갔고, 서울의 기온도 34.8도를 기록했다. 예년 이맘때보다 4~5도나 높은 폭염이다.

오늘(11일)도 서울의 기온이 35도, 대구와 광주의 기온은 36도까지 올라갈 전망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38도, 39도를 넘어서는 곳도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번 광복절 연휴까지는 폭염과 열대야가 기승을 부릴 전망이다.

서울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것은 지난달 19일이다. 오늘까지 꼭 24일째 폭염특보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일부터는 폭염주의보가 폭염경보로 강화됐다. 지난달 21일 밤 첫 열대야를 시작으로 지난밤까지 19차례나 열대야가 나타났다.

기록으로 따지면 올여름 폭염은 1973년 기상청이 전국적으로 관측망을 갖춘 이후 가장 무더웠다는 1994년에 이어 역대 2번째로 강력하다. 올해는 특히 기록적인 폭염이 쉬지 않고 2주, 3주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올여름 폭염이 유난히 기승을 부리는 것은 우선 강하게 발달한 무더운 북태평양 고기압이 한반도를 완전히 덮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여름에 북태평양 고기압이 한반도를 뒤덮는 것은 단지 올해 일만은 아니다.
특이한 것은 올해는 중국 북부와 몽골, 러시아 남부지역에서 예년과 달리 뜨겁게 가열된 공기인 열풍(熱風)이 한반도로 계속해서 들어온다는 것이다. 매년 찾아온 무더운 북태평양 고기압에 강력한 대륙발 열풍이 겹친 것이다. 올여름은 다른 해와 달리 두꺼운 이불 하나를 더 덮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올여름 대륙발 열풍이 유난히 강력하게 발달한 이유는 무엇일까? 예년과 달리 중국 북부와 몽골, 러시아 남부지역에서 공기를 뜨겁게 가열시키고 있는 고기압이 오랫동안 버티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올여름 대륙에 있는 고기압이 유난히 강하게 발달한 원인은 필리핀 부근 서태평양에 있는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현재 필리핀 부근 서태평양의 해수면 온도는 평균적으로 예년보다 1도 정도 높다. 높은 곳은 최고 1.5도까지 높은 상태다. 바다가 예년보다 뜨겁다는 것은 그만큼 바다에서 대기로 뜨거운 열이 전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현재 필리핀 부근 서태평양에서는 공기가 상승하면서 강한 비구름이 만들어지는 대류활동이 매우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필리핀 부근해상에서 상승한 공기는 북쪽인 중위도 지역으로 이동해 다시 가라앉게 되는데 현재 이 공기가 가라앉는 지역이 바로 중국 북부와 몽골, 러시아 남부지역이다. 이 지역에는 고기압이 발달해 있는데 필리핀 부근 해상에서 올라온 공기가 가라앉으면서 고기압이 더욱 더 강하게 발달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올여름은 비정상적으로 뜨거워진 필리핀 부근의 바닷물이 대륙 고기압을 강하게 발달시켜 대륙의 열풍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었고, 이 열풍이 한반도로 들어오면서 기록적인 폭염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올여름 필리핀 부근의 서태평양이 유난히 뜨겁게 달아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학계는 열대 동태평양의 바닷물이 예년보다 차가워지는 라니냐가 그 원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열대 동태평양이 예년보다 차가워지는 라니냐가 발달하면 반대쪽인 필리핀 부근 서태평양의 해수면 온도는 올라가기 때문이다.

바닷물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엘니뇨의 정 반대 현상인 라니냐는 지난 5월 엘니뇨가 끝나면서 발달하기 시작했다. 8월 초순 현재 라니냐(엘니뇨) 감시구역인 열대 동태평양(Nino 3.4 : 5°S~5°N, 170°W ~120°W)의 해수면온도는 평년보다 0.4도 낮은 상태다. 라니냐가 발달하고 있는 것이다. 학계는 이번 라니냐가 강하게 발달하지는 않겠지만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열대 동태평양이 예년보다 차가워지는 라니냐가 발달하면서 필리핀 부근의 서태평양 수온이 올라갔고, 이로 인해 한반도에 기록적인 폭염을 몰고 온 대륙 고기압이 강하게 발달했다는 것이다. 라니냐가 서태평양과 중국 북부와 몽골에 이상 기상을 초래하고, 그 영향이 한반도에 기록적인 폭염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발달하고 있는 라니냐의 영향은 이제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 올 가을과 겨울, 한반도 뿐 아니라 지구촌 곳곳에서 기상 이변이 속출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한반도의 경우 라니냐가 발생하면 그해 겨울철 기온이 예년보다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예년보다 추운 겨울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특히 빠르게 녹아내리는 북극 해빙(sea ice)의 영향으로 나타나는 북극 한파와 겹칠 경우 올겨울 기록적인 한파가 닥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소나기가 내리면 우산을 쓰면 된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에는 챙이 넓은 모자를 쓰거나 양산을 쓸 수도 있다. 하루하루만 생각한다면 그날그날 우산과 양산을 들고 나가면 그만이다. 당연히 우산과 양산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물건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10일, 20일, 30일 폭염이 지속되거나 곳곳에 국지성 집중호우가 쏟아지고, 한 달, 두 달, 1년, 2년 비가 적게 내린다면 문제는 복잡하고 심각하고 다양해진다.

당장은 폭염으로부터 취약계층을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고, 누진세로 인한 전기료 폭탄도 살펴봐야 한다. 하지만 조금만 넓게 보면 라니냐와 엘니뇨, 기후변화와 연결되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미래 에너지와 공중 보건, 저탄소 경제를 위한 산업구조 조정, 곡물 생산, 환경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하루하루 그날그날 우산과 양산만 들고 다닐 생각만 해서야 다양하고 복잡한 이 모든 문제를 제대로 풀 수 있겠는가?

라니냐와 엘니뇨, 기후변화, 지구온난화가 꼭 먼 훗날 남의 나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매달려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기업이나 국가를 이끌어 가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나 기관, 단체 등은 반드시 라니냐와 엘니뇨, 기후변화, 지구 온난화에 대한 충분한 정보와 인식, 대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 예상욱, 한양대 해양융합과학과 교수(개인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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