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월드리포트] 바람처럼 스쳐간 쿠데타, 태풍처럼 할퀸 상처

지난달 17일 새벽 이스탄불에 도착했습니다. 쿠데타를 '한 여름 밤의 꿈'으로 진압한 다음날입니다. 이스탄불의 항공기 운항이 재개되자마자 이집트 카이로에서 출발하는 첫 비행기를 탔습니다. 잔뜩 긴장감을 안고 내린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은 의외로 평온했습니다.

쿠데타군이 공항을 봉쇄하면서 공항 로비에서 밤을 지새던 관광객들은 다 빠져나갔는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상점과 은행, 렌터카 업체까지 정상적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겉보기엔 쿠데타가 일어났던 나라가 맞아?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온했습니다.

공항에서 휴가를 떠나려는 한 터키 부부를 만났습니다. 이들은 쿠데타가 일어났다고 해서 여행을 포기해야 하나 걱정했는데 공항이 다시 운영돼서 다행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웃어 넘겼습니다.
쿠데타 당일 밤 공항 로비에서 밤을 지샌 관광객들
● 뭔 일이 있긴 있었던 거야? 평온한 이스탄불

공항을 나오는데 십여 명의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지지자들이 터키 국기를 흔들며 에르도안을 지지하는 구호를 줄기차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주변 잔디밭에는 이틀 밤을 샌 듯 피곤에 지쳐 노숙을 하는 또 다른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이 중엔 쿠데타가 일어난 밤 공항이 포위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3시간을 걸어서 공항까지 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쿠데타군에 대항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거리로 나왔다고 합니다.

‘아, 역시 쿠데타의 여파가 아직 남았구나. 시내에 들어가면 좀 더 긴장감이 넘치는 화면을 잡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한 건 큰 오산이었습니다. 건물과 교각 곳곳에 터키 국기가 걸려 있는 것 말고는 평소와 다른 점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부둣가 벤치에 앉아 한가롭게 데이트를 즐기는 남녀, 동네 인조잔디 구장에선 조기 축구를 즐기는 이스탄불의 아저씨들, 카페 거리에선 진하디 진한 터키식 커피와 브런치를 즐기는 노인들, 보스포루스 해협을 따라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 이스탄불은 제 눈엔 그저 평범한 일요일 아침을 맞고 있었습니다.
보스포루스 대교를 점거한 쿠데타군에 맨 몸으로 다가서는 시민
쿠데타가 진압됐다고 하지만 아직 잔당을 다 체포한 것도 아니고 언제 어디서 다시 유혈사태가 일어날 지 모를텐데 거리엔 탱크는커녕 총 든 군인조차 볼 수 없었습니다. 어젯밤 사이 시내에 있던 군부대를 다 시 외곽으로 뺐다고 합니다. 시민들에게 더 이상 혼란과 불안감을 줄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라고 터키인들은 믿더군요.

쿠테다군이 탱크를 앞세워 가장 먼저 장악한 보스포루스 대교를 가봤습니다.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잇는 이스탄불의 상징인 대굡니다. 쿠데타 당일 맨 몸으로 쿠데타군에 맞서던 시민들의 용감한 모습이 외신을 타고 전세계에 보도됐던 곳입니다. 여기도 지난 밤의 악몽을 잊은 듯 차들이 씽씽 달리고 있었습니다. 도로 군데 군데 쿠데타군의 총탄에 쓰러진 시민의 선혈이 다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 말고는 혼돈의 기억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시민의 걱정이 말끔히 사라진 건 아닙니다. 한 터키 여성은 “테러가 계속 일어난 데다 쿠데타까지 벌어지니 터키 정국이 어디로 흘러갈 지 또 무슨 안 좋은 일이 일어날지 몰라 불안하다”고 걱정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쿠데타가 왜 일어났냐고 생각하냐?”에 대한 질문에는 대답을 못 하겠다고 하더군요. 인터뷰는 한국에만 방송됐다고 했지만 “그래도 페이스북이나 인터넷을 통해 다 검열을 한다.”며 대답을 회피했습니다. 터키가 왜 요즘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고 있다는 비난을 받는 지 알겠더군요.

● 수도 앙카라, 지우지 못한 상처

이스탄불에서 반나절을 보내면서 더 이상 담을 게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쿠데타 당일 치열한 교전이 벌어진 수도 앙카라로 바로 움직였습니다. 저녁에 도착하자마자 교전과 폭격이 벌어졌던 국회의사당 지역으로 향했습니다.

쿠데타가 끝난 지 거의 이틀이 다 됐지만 이곳은 교전의 참상이 곳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국회의사당으로 나오는 지하철역 입구는 탱크가 밀고 지나가 처참하게 뭉개졌습니다. 국회의사당 건물엔 온전한 유리창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의사당은 쿠데타 이후 삼엄한 경비가 펼쳐져서 제가 가까이 접근할 수도 없었습니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시민은 탱크가 굉음을 내며 다 짓밟고 들어와선 의사당을 겨냥해 포탄을 쐈다고 합니다. 총소리에 폭발음이 쉬지 않고 들려 이대로 전쟁이 일어나는 줄 알고 겁을 먹었다고 합니다.

좀 더 안으로 들어가면 육.해.공군 본부가 있습니다. 곳곳에 폭격으로 부서진 외벽과 탱크가 밟고 지나가 납작하게 찌그러진 차량이 아직도 방치돼 있었습니다. 바리케이드를 대신한 버스는 고슴도치처럼 총탄 자국이 가득한 채 도로를 막고 서 있었습니다. 도로표지판은 헬기에서 쏜 총탄에 뚫려 어른 주먹만한 구멍이 나 있었습니다. 해군 본부 모퉁이엔 총탄에 쓰러진 희생자의 선혈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누군가 흘렸을 핏자국 위엔 주인 잃은 신발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앙카라 국회의사당, 희생자가 쓰러진 자리에 덩그러니 남은 신발
핏자국의 주인은 누군가의 아들 또는 아버지였을 겁니다. 이들에게 총구를 겨눈 사람도 역시 누군가의 아들이며 아버지였을 겁니다. 이들은 무슨 이념과 사상을 안고 서로에게 총구를 겨눴을까요? 군인이니 경찰이니 명령에 따라야 하니 총구를 겨눴을까요? 아니면 어긋한 세상을 바로 잡기 위해? 아니면 폭도로부터 세상을 지키기 위해? 아니면 그저 내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기에 방아쇠를 당긴 걸까요? 왜 같은 국민끼리 총구를 겨눠야 했을까요?

결국 나는 직접 만나본 적도 없을 윗사람? 지휘관?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그저 총을 쐈을 겁니다. 그런 이들에게 무슨 죄를 물을 수 있을까요? 그들이 그 상황에서 전 총을 쏘지 않겠다고 거부할 수나 있었을까요? 또 지키던 이들의 희생을 통해 쿠데타를 막아낸 정권은 자신들 때문에 꺼져간 젊은 생명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나요? 그 희생을 강요한 책임은 없는 건가요? 숨진 이의 희생은 이미 안중에도 없는 행동하고 있지 않나요? 쿠데타가 성공해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핏자국이 남아 있던 곳을 지나던 한 앙카라 시민은 “쿠데타에 대한 옳고 그름을 떠나 왜 터키의 죄없는 젊은이들이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총을 들고 싸워서 피를 흘리며 희생돼야 하는 지 이해할 수 없고, 그 점이 너무 가슴 아프다.”고 씁쓸한 심정을 토로하더군요. 하룻밤 쿠데타는 정말 밀물처럼 터키를 덮쳤다가 썰물처럼 사라졌지만 그 공포와 좌절감은 터키 시민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오래 머물 것 같습니다.

● 아이돌 행사 같은 에드로안 지지 집회

해가 지면서 국회의사당을 빠져 나오는데 터키 국기를 든 사람들이 삼삼오오 큰 길을 따라 내려가더군요. 무슨 집회가 있나 해서 따라가 봤습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앙카라의 중심인 크즐라이 광장입니다.

이 곳에 이미 수 천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저마다 터키 국기를 흔들며 합창을 하고 구호를 외쳤습니다. 사람들이 좀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니다 다 기어오른 듯했습니다. 도로표지판 위에, 전봇대 위에, 거리매점 지붕에도, 광장 중심의 15미터는 됨직한 조형물에까지 죄다 올라가 달라붙었습니다.

대형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노랫말을 물어보니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을 칭송하는 내용이라더군요. 집회에 연설자는 없었습니다. 에르도안을 찬양하는 노래를 틀다 에르도안의 연설 녹음을 틀며 환호했습니다. 이들은 쉬지 않고 에르도안을 칭송하며 ‘알라는 위대하다’라고 외쳤습니다.

무엇을 축하하기 위해서인지 물었더니, 쿠데타를 막아내서 민주주의를 지켜낸 것을 스스로 자축하기 위해 모였다고 합니다. 이들은 에르도안이 쿠데타 군에 항거해 시민들이 거리에 나서줄 것을 유도하면서 국가적 위기를 막아냈다면서 에르도안을 영웅처럼 찬양했습니다.

터키가 이런 위기를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선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미국에 오바바가 있고 러시아에 푸틴이 있다면 터키에 에르도안이 있다며. 지금의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 중심제로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일부에선 쿠데타 세력을 사형시켜야 한다는 과격한 외침도 들렸습니다.
에르도안 집회
히잡을 쓴 한 여성은 자신의 부모들은 여러 차례 쿠데타를 겪으면서 경제적으로 힘들게 살았다는걸 잘 알기에 이 자리에 나왔다며, 쿠데타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했습니다. 앙카라 시민 뿐 아니라 시 외곽에서 온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에르도안 지지자들이었습니다.

에르도안은 국제사회에선 독재자로 표현됩니다. 21세기의 술탄이라고까지 불리기도 합니다. 온갖 부패의혹과 무자비한 반대파 제거, 언론 탄압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그래도, 터키 최초의 직선제를 통해 뽑힌 대통령입니다. 터키 국민이 에르도안을 외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최악의 민주주의가 최선의 쿠데타보다는 낫다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총탄이 빗발치는 거리에 맨 몸으로 나서는 용기를 보여줬겠지요.

다음 편에 에르도안과 쿠데타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진 터키 젊은이들의 이야기와 쿠데타 이후 석연치 않게 느껴지는 터키의 정치사회적 문제에 대한 제 생각을 담아 보겠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