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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하나마나 했던 국회 '사드' 긴급 현안 질문

[취재파일] 하나마나 했던 국회 '사드' 긴급 현안 질문
“총리 나오십시오.”
“들어가십시오.”

안쓰러울 정도였다. 황교안 총리를 비롯해, 이 나라 장관들이 하루 종일 줄줄이 단상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모습이 말이다. 엇비슷한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수차례 반복하는 그들의 피로가 기자에게까지 전해졌다. 안쓰럽다느니, 고생스러워 보인다느니 평소에는 그들에게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던 기자였다.

접점이 없었다. 정부와 여당, 야당이 쭉 평행선만 달렸다. 19일과 20일, 이틀 동안 열린 국회 사드 긴급 현안 질문이 그랬다.

1994년 국회법 개정에 따라 도입된 긴급 현안 질문은 회기 중 현안이 되고 있는 긴급한 특정 문제나 사건을 따지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열린다. 오전과 오후로 나뉘어 하루 종일 이어지는 현안 질문을 국민이 모두 지켜볼 수 없기에 기자들은 하루 종일 취재한다.

그러나 이틀째 현안질문에는 새로운 질문도, 새로운 답변도 없었다. 행여 새로운 팩트를 놓칠세라 화장실에 갈 때도 모바일로 국회방송을 들었지만 하품만 나왔다. 서로가 시종일관 자기 얘기만 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사진=연합뉴스)
야당은 순진했고, 정부는 노련했으며, 여당은 답답했다. 수준 이하의 질문들이 이어졌다. 일부 여당 의원들의 질문은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식이거나, 하고 싶은 말을 쭉 한 뒤에 물음표를 붙이는 수준에 불과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의원) (사드의) 효용성이 있으니까 북한이 저렇게 비판적으로 나오는 것이잖아요. 저것을 볼 때 저는 사드 체계가 훌륭한 무기체계라는 것을 입증한다고 생각합니다.

(장관) 옳으신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원) 일각에서는 사드 배치가 중국 등 주변 국가들과의 경제협력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 의원은 우리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한 자위적 차원의 결정이기 때문에 중국, 러시아 같은 제3국의 안보를 해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관) 저희도 근본적으로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틀째 질의에 나선 새누리당 한 의원의 경우 “본 의원은 ~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표현을 질문시간 12분 동안 5번 되풀이했다. 새누리당 민경욱 의원은 “레이더 앞에서 맛있는 성주 참외도 깎아 먹고 어머니께도 드리고 싶다”는 말을 굳이 덧붙였다.

부총리씩이나 불러 세워놓고 “잘하겠습니다” 한마디 듣고 도로 들어가라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하려면 굳이 여야 의원은 물론이고, 몸값 비싼 국무위원들 불러놓고 질의응답이라는 형식을 빌릴 필요가 없다. 국정감사나 대정부 질문에서 여당의 역할이라는 게 있고, 또 그 질문의 형식이라는 게 대개 그렇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긴급 현안 질문’이라는 타이틀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야당의 질문에서는 기본적인 사실을 헷갈려 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드 배치 부지에 대한 환경영향 평가를 여러 차례 거친 일본의 사례를 언급했지만, 역시 ‘부지 확정 이후’에 이뤄진 사실을 몰랐다든지 장관의 말 바꾸기를 지적하려다가 사실을 혼동해 ‘카운터’를 맞고 말을 잃는 경우가 여러 번이었다.

(의원) 국회 본청에서도 검토한 적 없다 해놓고 발표하셨죠?

(장관) 거짓말 한 적은 없습니다. (중략) 사실이냐 결정된 것이냐 해서 보고받은 바 없다고 했습니다.

(의원) 사드 배치를 결정한 바가 없다는 답변이 아니었습니까?

(장관) (사드 배치 여부가 아니라) 부지에 관한 답변이었습니다.

(의원) ...... (다른 질문)


더불어민주당 김영호 의원의 경우 중국 매체의 사설 등을 근거로 “(중국의) 제재가 시작된 거죠?”라고 윤병세 장관을 몰아붙였다. 그러나 성과는 없었다. 실제로 중국의 경제 보복이 시작됐다는 근거가 아직까지 부족하기 때문이다. 논박을 하고자 했다면 보다 정교한 수치와 현상을 들고 왔어야 했다.

다른 한 야당 의원의 경우 부족한 근거를 가지고 몰아붙이다보니 억지에 가까운 장면도 나왔다. “솔직히 말하세요.” 하고 다그치는 대목에서는 순진한 건지 준비가 부족한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사드 배치 관련 긴급현안질문을 지켜보고 있는 경북 성주군민(사진=연합뉴스)
파이팅은 좋았지만, ‘실전감각’에 바짝 물이 오른 총리나 국방장관을 국회의원들이 당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의혹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도, 새로운 사실과 정부의 후속 조치를 이끌어 낼만한 알찬 질문도 부족했다. 현안 질문 첫날 참관하던 성주군민 30여 명은 한민구 장관의 답변에 불만을 드러내며 집단 퇴장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이틀에 걸친 사드 긴급 현안 질문은 빈 손으로 끝났다. 아주 내용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긴급’ 자를 붙이고 국무총리와 부총리, 장관들을 국회에 잔뜩 불러 모았던 것 치고는 역부족이었다. 국회 스스로도 소홀했음을 증명했다. 현안질문 2일차 개의시 참석 국회의원은 절반도 안되는 130명, 산회시에는 96명에 불과했다.

여야 3당은 지난 14일 원내수석 회동 끝에 “중차대한 국민적 관심사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긴급 현안 질문을 열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궁금증은 차치하고 과연 이번에 국회에서 현안 질문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아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쟁점도 뉴스도 없었으니 당연한 귀결이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무관심과 냉소는 이런 식으로 시작된다.

끝에서 두 번째로 질의에 나섰던 더불어민주당 김영호 의원은 마무리 발언에서 “오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고개를 숙였다. “국민을 대표해서 질문했는데 과연 국민의 궁금증, 걱정, 우려하는 마음을 얼마나 대변했을까”라며, “국가 흥망을 결정하는 사안을 단 이틀 동안 대정부 질문으로 했기 때문”이라고 되돌아봤다. 초선 의원인 그 혼자 짊어지기에는 너무나 무겁고 아까운 고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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