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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장애인을 숫자가 아닌 이웃으로 대하는 일 ②

- 강서구 장애인 활동보조 등급 대거 하락

[취재파일] 장애인을 숫자가 아닌 이웃으로 대하는 일 ②
국민연금공단은 이번 서울 강서구의 전례 없는 장애인 활동보조 등급 하락률을 두고, ‘지난 심사나 이번 심사 가운데 하나에서 오류가 있는 것 아니냐’는 가정에 대해 "그럴 리 없다"고 했다. 

연금공단이 들고 나온 첫 번째 이유는 ‘지난 심사 때 경계 등급에 있었던 장애인의 수’였다. 이번 심사 전체 대상자 수를 비교해 보면, 도봉노원 지사가 729명, 강서 지사는 458명이다. 도봉노원은 이 가운데 29명이 전에 비해 상황이 좋아졌다고 판단해 지원 등급을 낮췄다. 강서구는 181명의 등급이 낮아졌다. 도봉노원의 등급 하락률은 3.98%, 강서는 39.52%다. 10배나 차이가 난다.

연금공단은 이에 대해 “등급이 하락된 장애인의 면면을 살펴보니, 강서구에 (지난심사 기준) 등급 경계에 있던 장애인이 특히 많았다”고 설명했다. ‘(하락자 가운데) 등급의 경계에 있던 비율’은 도봉노원이 75%, 강서가 86%였다고 한다. 이 비율이라면 이번 도봉노원 하락자 가운데 22명이 지난 심사에서 등급의 경계에 있었고, 강서구는 155명이 해당한다. 전체 장애인 수로 계산하면 도봉노원은 3.02%가, 강서구는 33.84%다.

사실 이 대목에서 가장 필요한 수치는 지사 별로 ‘하락자 가운데 지난번 경계 등급에 있었던 사람의 수’가 아니라 ‘전체 대상자 가운데 지난번 경계 등급에 있었던 사람의 수’다. 이게 있다면 각각의 지사가 지난번엔 경계 등급에 있었던 장애인을 어떻게 판단했는지 비교될 것이다. 아쉽게도 이 수치는 제공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수치만으로도 이런 정도의 접근은 가능할 것이다. 우선, 강서지사에서 심사받은 장애인들의 경우 이번에 이의신청을 하면 등급이 재조정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현재 등급별 인정점수 기준 표를 보면 한 질문에 따른 점수 차이가 5점에서 크게 30점까지 나는 식이다. 지난번엔 경계에 있었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이토록 많이 하락했다면, 한 두 항목에서 등급이 갈렸을 확률이 크다.

또 하나 경향성으로 보았을 때 강서 지사는 지난 번보다 엄격한 기준으로 심사했던 게 분명하다. 이번의 심사 방법은 지난 심사와 정확히 같았다. 아무리 2년의 시간차가 있다고 하더라도 동일인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까지 차이나긴 어렵다. 기존보다 장애나 생활 형편이 더 나아진 쪽으로. 그것도 다른 지역보다 10배 높은 비율로. 등급이 내려간 한 장애인은 ‘절단돼 없는 내 한쪽 팔이 자라나기라도 했다는 것이냐’며 울분을 토했다. 

연금공단이 제시한 높은 하락률의 또 다른 원인은 ‘강서구가 타 지역에 비해 예전부터 등급 심사에 관대했다’는 점이다. 근거로 1급 시각장애인이 활동보조 1급을 받는 비율을 들었다. 전국 평균은 25%인데 강서구는 32%라는 거다.
그런데 이건 근거가 될 수 없다. 강서지사에서 지난 심사 때 제대로 등급을 판정했다면, 결과로서 수치는 자체로 팩트다. 활동보조 등급은 상대평가가 아니기 때문에 일부러 조정해서라도 평균으로 수렴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관대하다’는 표현은 누가 봐도 마땅히 2급을 받아야 하는 장애인에게 의도를 가지고 1급을 판정했을 때에나 가능한 말이다.

무엇보다, ‘타 지역보다 관대하게 평가해 왔다’는 표현은 그 자체로 오류를 인정한 셈이 된다. 전국적으로 같은 기준으로 심사하는데 그동안 특혜를 준 것도 아니고 강서 지역 장애인에 대해서만 관대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연금공단의 이번 해명- 원래보다 더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던 제도를 정상화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이번 심사 결과가 형평성에 맞고 공정하다-은 앞뒤가 맞지 않다. 연금공단은 내가 처음부터 말했던 가정-이번 혹은 저번의 심사 중 하나에 오류가 있었다-을 지금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의 시작이다. 연금공단이 줄곧 수치로 해명해 왔기 때문에 나도 수치로 반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제목에서 말한 것처럼 이번 사태에 본질적이면서도 곱씹어볼 만한 부분은 연금공단이 장애인들을 내 이웃이 아닌 문서 속 데이터, 숫자로 대했다는 점이다.

활동보조 지원사업은 기본적으로 복지의 일환이다. 가능한 장애인 1명당 지원 규모가 크길 바라는 마음은 연금공단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 믿고 싶다.

그럼에도 한정된 재원을 배분하는 것이고, 누군가 실제보다 줄곧 높은 등급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의도치 않는 피해를 준 것이라는 연금공단의 설명이 맞다고 전제해 보자. 설령 그렇다 해도 그건 지금껏 그런 잘못된 등급을 준 연금공단의 과오다. 장애인이 부정수급을 한 게 아니다. 누가 줬다가 뺏으라고 했나. ‘공정성과 형평성을 지키려 했다’ 같은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니다.
생활에 제약이 많은 장애인들에겐 ‘예측 가능성’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외출 한 번 하기 위해 일주일 전부터 계획하고 마음 먹어야 하는 게 장애인들의 현실이다. 지난 10년 가까이 어떤 등급을 받아왔다면, 장애인에겐 생활 방식으로 정착됐을 것이다.

하루 몇 시간 활동 보조원이 집에 머무는가에 따라 함께 사는 가족은 그에 맞춰 출근 시간과 귀가 시간을 정했을 것이다. 장애인이 혼자 머무느라 불편을 겪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관련된 여러 사람이 이에 맞춰 생활해 왔다는 뜻이다. 독거 장애인의 경우는 더더욱 활동보조원이 머무는 시간이 생명과 직결된다. 이번 심사에서 2급으로 하락한 윤용욱 씨의 경우 하루 세 끼 먹던 걸 두 끼로 줄였다. 활동보조원이 저녁 8시에서 오후 4시로 퇴근 시간이 앞당겨졌기 때문이다.

등급을 높이는 것이었다면, 연금공단의 이번 일처리가 문제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기존보다 더 많은 시간을 지원하는 일이었다면, 별 설명 없이 급작스러운 결정을 내리는 것을 문제 삼을 리 없었을 거다. 하지만 기존의 시간을 줄이는 일이었다. 심사는 평소보다 더 오래 진중하게 진행됐어야 했고, 통보하는 과정에서도 더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윤용욱 씨에 따르면, 그 반대였다. 두 명의 조사원이 20~30분 머물며 진행됐던 심사가 이번엔 1명의 조사원이 5~10분 사이 머무는 데 그쳤다. 통보도 급작스러웠다. 그는 5월 11자로 발송된 강서구청의 우편을 통해 9년 간 유지돼 오던 등급이 일순간 하락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그리고 당장 6월부터 줄어든 시간이 적용됐다.

구청이나 연금공단 등에 백방으로 연락해 봐도 돌아오는 답은 ‘우리도 이유를 모른다. 이의 신청하시라’는 것이었다. 그나마 지역 내 장애인들의 커뮤니티에서 등급이 하락됐다는 제보가 이어지자 장애인 단체가 실상을 파악하면서 이슈가 제기됐다.

연금공단의 설명처럼 제도의 정착을 위해서 기존의 등급을 내려야 하는 당위적인 이유가 있었다면, 당사자인 장애인들에게 충분한 설명과 동의의 과정이 있어야 했다. 이건 사람에 대한 예의의 문제다.

하지만 기자가 해명을 듣기 위해 그토록 많은 통화를 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표현은 ‘원칙에 따라 한 것일 뿐 의도는 없었다’는 것이었다. 원칙이 과거 심사에선 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는지에 대해선 끝까지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 서류 상 숫자에 불과했을 장애인들은 그렇게 하루 아침에 삶의 모습이 바뀌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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