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장애인을 숫자가 아닌 이웃으로 대하는 일 ①

- 강서구 장애인 활동보조 등급 대거 하락

[취재파일] 장애인을 숫자가 아닌 이웃으로 대하는 일 ①
올해 장애인 활동보조 지원 자격 심사 결과 서울 강서구에서만 181명의 등급이 하락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당사자들에겐 얼마나 천재지변 같은 일일까?’였다.

그리고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등급이 내려갔을까?’ 궁금해졌다. 활동보조 지원을 받을 정도의 장애를 갖고 있다면, 대개 현상 유지가 최선이다. 180명이나 되는 사람의 건강(혹은 생활형편)이 갑자기 좋아졌을 리 없다. 이전 심사에 문제가 없었다면, 이번 조사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활동보조 지원을 받는 장애인이라면 누구나 2~3년에 한 번씩 등급 재심사를 통해 자격을 갱신해야 한다. 사정이 좋아졌을 수도, 나빠졌을 수도 있어 그에 맞춰 지원 규모를 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공단 각 지사의 조사원들이 장애인 가구를 방문하는데, 그때 면담한 결과를 종합해 점수를 매긴다.

심사 과정에서 조사원이 어떤 질문을 던질 지는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규정에 따른다. (참고: 보건복지부 고시 제2016-14호) 항목을 보면 장애인의 건강상태, 경제상황, 같이 사는 가족 등 가구조사를 기본으로 좀 더 심화하는 질문까지 다양하다. 이를 테면, ‘혼자서 식사를 얼마나 잘 할수 있는가?’에 대한 객관식 답은 다음과 같다.

1) 도움이나 조언 없이 식사할 수 있다
2) 식사하는 방법이나 해야 할 때를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3) 밥을 떠먹는 데 도움이 필요하다
4) 다른 사람의 도움이 전적으로 필요하다

혹여 장애인이 자신의 상황에 대해 객관적으로 대답할 수 없다 할지라도 괜찮다. 조사원이 관찰한 것을 토대로 참작하는 과정이 면담의 한계를 보완하기 때문이다. 직접 집을 방문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조사원들은 누가 장애인의 집에 방문하더라도 같은, 혹은 비슷한 결과를 낼 수 있도록 교육받는다. 이번 강서구의 경우 총 2명의 연금공단 직원이 심사 대상이었던 458가구를 방문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강서 지역 장애인 458명 중 무려 181명의 등급이 많게는 세 단계까지 하락한 것이다. 올해 전국 등급 하락률 평균이 4.11%인데 반해 강서구에선 39.52%,10배 가까운 수치가 나왔다. 지난해 전국 등급 하락률 평균은 3.51%였다.
이번 전국 평균이 지난해보다 높은 것도 강서구의 이례적인 하락률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다. 연금공단 측에 제공받은 데이터를 토대로 올해 전체 하락자수(786명)에서 강서구의 181명을 제외한 605명을 전체 심사 대상자수 19,112명에서 강서구 심사 대상자 458명을 제외한 수로 나눠 봤다. 전국 평균은 3.2%까지 낮아졌다. 한 마디로, 올해 강서구의 등급 하락률이 전국 평균을 1%나 올린 셈이다.

강서구는 현재 서울에서 장애인 수가 가장 많은 자치구다. 연금공단도 이 점을 높은 하락률의 원인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 팩트다. 오히려 하락률이 이렇게 높을 수 없다는 근거가 된다. 모수가 큰 만큼 한두 건만으로는 전체 퍼센티지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충북 옥천처럼 심사대상 장애인 수가 총 29명인 곳이라면 모를까. 서울에서 가장 장애인 수가 많은 강서구에서 40% 가까운 하락률이 나왔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활동보조 등급은 자치구 내 장애인끼리 경쟁하는 상대 평가가 아니다. 동일인이 같은 시기에 심사를 받았다면, 전국 어디에 살든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게 원칙이다. 강서구에 특정 장애 등급의 사람이 많이 살 수 있지만, 이번에 문제가 된 건 장애인의 절대 수가 아니다. 등급 변화가 2년 만에 급격히 컸던 장애인이 강서구에 유독 많았다는 점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장애인의 건강은 정말 드문 경우를 제외하곤, 시간이 갈수록 나빠지는 게 일반적이다. 급격히 좋아질 수 없다.
이번에 강서구에서 심사를 받은 뒤 1급에서 2급으로 내려간 윤용욱 씨의 경우 25년 전, 사고로 두 다리와 왼 팔을 잃었다. 남아있는 한 팔로 할 수 있는 일은 전화를 받고 리모컨을 사용하는 것 정도다. 혼자서 침대에 몸을 세울 수도 이동할 수도 없다. 그나마도 한쪽 팔을 계속 사용하다 보니 관절과 근육에 무리가 가서 지금은 어깨 위로 들기 어렵다.

윤 씨는 활동보조 심사를 처음 받았던 9년 전부터 쭉 같은 집에 혼자 살고 있다. 경제 활동은 그때나 지금이나 없다. 9년 내내 윤 씨의 활동보조 등급은 1급이었다. 그런데 올해 처음으로 2급으로 내려갔다. 달라진 것이라곤 좀 더 나빠진 오른팔뿐인데.

경우의 수는 두 가지다. 저번 심사 결과가 잘못됐거나, 이번 심사가 잘못된 것. 이유를 막론하고 둘 중 하나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하락률의 폭이 커진 거다. 그런데 연금공단의 해명은 놀랍게도 둘 다 아니라는 것이었다.    

(2편에 계속) ▶ [취재파일] 장애인을 숫자가 아닌 이웃으로 대하는 일 ②    


[관련 8뉴스 리포트] '고무줄' 등급 심사에 장애인 181명 '날벼락'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