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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취재파일⑫] '올림픽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장비 분실 황당 해프닝

한국 리듬체조의 간판스타인 손연재 선수가 지난 3월 리스본 월드컵에서 빌린 후프로 동메달을 차지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 항공사의 실수로 후프 2개가 경기 당일에야 뒤늦게 도착한데다 이마저도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찌그러진 상태였습니다. 결국 손연재는 다른 선수의 후프를 빌려 출전했습니다.

손연재가 사용하는 후프는 10만 원 상당이지만, 바르샤바 협약의 수화물 파손 보상 규정에 따라 보상액이 한 개당 7000원에 불과해 이것도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올림픽에서도 선수의 분신과도 같은 장비에 얽힌 해프닝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곤 합니다. 이 가운데 가장 황당한 사건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여자 장대높이뛰기에서 나왔습니다. 
없어진 장대를 찾고 있는 무레르
● “장대가 없어졌어요" 브라질의 파비아나 무레르

황당 해프닝의 주인공은 브라질의 파비아나 무레르입니다. 무레르는 2007년 남미선수권과 팬 아메리칸게임에서 우승을 차지한 남미 최강자로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메달이 기대됐습니다. 그런데 결승 경기를 앞두고 대회 조직위원회에 맡겨둔 자신의 장대가 사라졌습니다. 길이 4m가 넘는 장대 6개가 통째로 없어진 것입니다.

무레르는 경기 진행 요원들과 함께 경기장 이곳저곳을 누비며 분주하게 장대를 찾아다녔고, 보관함을 하나하나 꼼꼼히 뒤졌지만 끝내 장대를 찾지 못했습니다. 30분 넘게 장대를 찾는 동안 경기도 중단됐습니다. 당시 경기를 중계했던 한국 육상 스타선수 출신 장재근 SBS 해설위원은 “자신도 이런 황당한 경우는 처음 봤다”며 어이없어 할 정도였으니 선수 본인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결국 무레르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장대 대신 대회 조직위가 준비한 예비 장대를 들고 경기에 나섰습니다. 이미 마음이 상할 대로 상했고, 손에도 익지 않은 남의 장대로 나선 무레르의 성적은 좋을 리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최고기록인 4m 80에 훨씬 못 미치는 4m 65에서 3차례 모두 실패하며 4m 45의 저조한 기록으로 경기를 마쳤습니다. 순위도 결승 진출자 12명 가운데 10위로 부진했습니다.

대회 조직위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올림픽을 위해 4년 동안 쏟아 부었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무레르는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두 번 다시 중국에 안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경기장을 떠났습니다. 무레르가 그토록 찾았던 장대는 다음날 경기장 장비 보관 라커에서 발견됐습니다.

무레르는 3년 후 열린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4m 85를 넘으며 ‘미녀새’ 이신바예바(러시아)를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하지만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결승 진출에 실패하며 올림픽과의 악연을 떨쳐내지 못했습니다. 
대구 세계육상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무레르
● 부러진 장대 때문에…날아간 3연패의 꿈

장대가 부러져 메달의 꿈을 날린 선수도 있습니다. 1970-80년대 육상 남자 10종 경기 최강자로 군림했던 영국의 데일리 톰슨입니다. 톰슨은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4년 LA 올림픽에서 연이어 금메달을 목에 걸며 ‘세기의 철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톰슨은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사상 최초로 남자 10종 경기 3회 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에 도전했습니다. 출발도 좋았습니다. 첫 종목이었던 100m에서 10초 62를 기록하면서 출전선수 40명 가운데 1위로 산뜻하게 시작했습니다.

라이벌이었던 서독의 위르겐 힝젠(1984년 LA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이 100m에서 부정출발 3번으로 실격돼 우승권에서 멀어지자 나머지 경기들을 일찌감치 포기하면서 톰슨은 3연패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었습니다. 이후 대부분의 종목에서 상위권을 유지하며 선전하다 8번째로 치러진 장대높이뛰기에서 뜻밖의 불운에 울었습니다.

경기 도중 장대가 그만 두 동강 난 것입니다. 톰슨은 장대가 부러져 몸이 튕겨져 나가면서 손과 다리를 다쳤고, 나머지 종목까지 여파가 이어지면서 4위라는 아쉬운 성적으로 대회를 마감했습니다. 사상 첫 10종 경기 3연패라는 꿈도 이렇게 날아갔습니다. 
장대가 두 동강 난 데일리 톰슨
이후 첨단 유리섬유 소재로 만들어 탄성과 복원력이 향상된 장대가 등장하면서 장대가 부러지는 일은 눈에 띄게 줄었지만, 그래도 사고는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2012년 런던올림픽 남자 장대높이뛰기 예선에서 쿠바의 라사로 보르헤스가 장대가 부러지는 아찔한 사고를 당했습니다.

도움닫기를 하다 장대가 세 조각으로 부러졌습니다. 반동을 이기지 못한 보르헤스는 뒤로 날아갔고 바닥에 나뒹굴었지만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은메달리스트인 보르헤스는 장대 사고를 당한 런던 올림픽에서는 결승에도 오르지 못했습니다.
장대 부러진 보르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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