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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이집트의 라마단과 콩…천정부지로 오르는 가격 왜?

이슬람권에서 금식 성월인 라마단이 한창입니다. 라마단은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가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코란의 가르침을 받은 약 한 달의 기간을 말합니다. 이슬람력으로 아홉 번째 달입니다. 라마단의 시작과 끝을 달 모양을 보고 판단하는데 매년 열흘 정도가 앞당겨 집니다.

라마단기간 이슬람은 해가 떠서 질 때까지 모두 금식을 합니다. 물도 안되고 침도 삼켜서 안되고 침을 발생시키는 껌도 안 됩니다. 라마단에 관한 이야기는 예전에 한 번 쓴 적이 있는데 궁금하신 분들은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라마단에 관해 이런 저런 뉴스거리를 찾다 생긴 이야기를 다뤄볼까 합니다.
▶ [월드리포트] '라마단' 단식과 폭식의 두 얼굴

● 라마단과 콩

사실 이 제목은 라마단을 맞아서 제가 기획 리포트로 준비하다가 접은 아이템입니다. 그 이유는 아래를 찬찬히 읽어보시면 됩니다.

중동에서 콩은 밀 다음으로 소비량이 많은 곡물입니다. 아랍민족에게 콩이 주식이 된 이유는 오랜 유목문화에서 비롯됩니다. 콩은 언제든 쉽게 요리할 수 있고 또한 풍부한 단백질을 제공하는 영양만점의 곡물입니다. 황량한 사막에서 자주 삶터를 옮겨 다니던 유목민에게 콩의 가성비는 아마도 밀이나 쌀을 능가했을 겁니다.
라마단에 소비가 급증하는 콩
특히 콩은 포만감이 오래가는 곡식입니다. 가난한 이들은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고 또 배고픔을 오래간 잊게 콩을 자주 먹습니다. 이런 식습관은 지금도 이어져 중동과 아랍의 서민은 평소 밀을 반죽해 납작하게 구운 에이샤 라는 빵에 삶은 콩을 넣어 먹곤 합니다. 서둘러 먹어야 하는 아침이나 거르기 쉬운 점심 식사로 에이샤와 콩을 애용합니다.

콩은 라마단에 가장 많이 소비됩니다. 이유는 두 가집니다. 해 뜨기 전에 식사를 한 뒤 하루 종일 버텨야 하는 무슬림에게 콩은 포만감을 유지시켜 줍니다. 또, 해가 진 뒤 물도 안 마시고 허기진 상태에서 음식을 과도하게 섭취할 경우 자칫 탈 나기 쉽습니다. 콩 요리는 소화에도 별 무리가 없고 장을 편하게 해줍니다. 그래서, 해가 진 뒤 먹는 '이프타르'에 콩이 빠지질 않습니다. 콩 수프, 콩 스튜, 콩 튀김까지 콩은 아랍인에게는 없어선 안 될 곡물입니다.

● '콩!콩!콩!' 뛰는 콩값

그런데, 어느 날 저와 함께 일하는 이집트 현지 직원이 라마단에 생활비가 부족해 죽겠다고 하소연을 하는 겁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물가가 다 오르지만 특히 주식인 콩이 너무 비싸졌다는 겁니다. 불과 한 달 사이 콩의 도매 가격이 20~25%가 껑충 뛰었다는 겁니다. 자연히 소비자들이 거래하는 일반 시장가격은 훨씬 더 뛰었습니다. 카이로의 한 재래시장을 돌아봤더니 30~40%까지 치솟았다는 이집트의 주부들의 하소연을 쉽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게 올해만의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2년 전과 비교하면 콩 가격은 40~45%가 치솟았습니다. 아니 콩이 무슨 금은보화도 아니고 왜 이렇게 뛰는 건가?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유를 찾아보니 가장 먼저 이집트 파운드화의 가치 하락에서 시작되더군요. 이집트는 한 해 소비되는 콩의 7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이집트 정세와 경제가 불안해지면서 이집트 파운드 가치가 뚝뚝 떨어지고 있습니다. 자연히 수입가가 오를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달러 대 이집트 파운드화의 가치는 2년전과 비교해 15%이상 떨어졌습니다. 공식 환율이 그렇다는 것이고 암시장에서 가치는 35%나 떨어졌습니다.

예전에 이집트에 달러가 없어서 수입 대금을 죄다 암시장에서 바꾼다는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수입 콩의 대금도 역시 암시장을 거친 달러를 송금하게 되다 보니 이집트 내에서 콩 가격이 뛸 수 밖에 없겠죠.
콩을 반죽해 튀긴 '팔라페'
● 이집트 콩, 15년 사이 70% 감소

그런데, 여기서 이집트는 왜 콩을 적게 생산하는 걸까? 밀 다음으로 많이 먹는 농산물인데…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집트는 나일강의 축복을 많은 나라입니다. 길고 긴 나일강의 풍부한 수량 때문에 나일강 주변에는 다양한 농산물이 재배되고 있습니다.

그런 나라에서 왜 굳이 콩을 이렇게 소비량의 30%밖에 안 될 정도로 적게 생산하는 걸까요? 콩은 사실 농작물 가운데 깻잎 만큼 키우기 쉬운 작물 중 하납니다. (물론 상대적인 비교일 뿐입니다. 세상에 농부의 손을 타지 않고 알아서 자라는 곡물은 없습니다.)

이런 궁금증 때문에 관련 전문가와 기록을 뒤지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합니다. 2001년 이집트에서 소비된 콩의 생산지를 보니 99.1%가 국내산이었다는 겁니다. 그때만 해도 이집트는 콩을 자급자족하는 나라였던 겁니다. 그런데 불과 15년 만에 콩의 경작지가 70%나 사라졌습니다. 소비되는 콩의 양은 그대로인데 국내 생산되는 콩이 줄어드니 당연히 수입량이 늘 수밖에 없고, 경제가 반 토막 나면서 달러 대 환율이 치솟으니 콩값이 오를 수 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면 이집트 농부들은 왜 콩을 키우지 않게 된 걸까? 그것도 이렇게 갑자기 그만둘 것일까? 가장 빠른 방법은 당사자를 만나보는 것이겠죠. 기자부근까지 가서 한 농부를 만나 물었습니다. 그 농부는 일단 보조금 이야기를 하더군요. 2000년대 초 이집트 정부가 콩을 심을 경우 경작지 면적에 따라 일정의 영농자금을 지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각종 비료와 농약도 공급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갈수록 보조금이 줄자 농부들이 하나 둘 콩을 키우는 걸 포기했다는 겁니다.

이때 같이 간 농업관련 시민단체 직원이 그러는 사이 콩의 수입을 전문으로 하는 대형회사가 4곳이나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그 친구는 정부와 그 대형회사의 유착관계를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정부 보조금은 줄고 대신 수입전문회사가 늘고…. 유착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정부의 방관적 태도가 현재의 '날개 달린' 콩값 상승행진의 빌미를 제공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들더군요. '좋다, 함 해볼만한 아이템'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이샤'에 콩을 넣은 이집트식 샌드위치
● 콩의 약점 '1년 1모작'

좀 더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생겼습니다. 이번엔 농산물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바이어를 만났습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사실을 설명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바이어는 다 맞는 이야기지만, 이집트 국산 콩이 줄어든 이유에 대해선 다른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먼저 보조금 삭감은 콩뿐 아니라 농산물 재배에 대해 전반적으로 비슷한 비율로 진행됐다는 겁니다. 다만 콩의 경우 보조금 삭감 비율이 약간 더 컸을 뿐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농부들이 콩을 포기한 가장 큰 이유로 콩의 생산성을 이야기합니다.

이집트는 1년 내내 농작이 가능한 곳입니다. 하지만, 콩의 경우는 겨울에 심어 봄에 추수를 하고는 그게 끝이라는 겁니다. 1년 다모작이 아니라 1년 1모작밖에 안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 보니 한 해 2.3번을 키울 수 있는 밀이나 옥수수를 더 선호하게 된다는 겁니다. 콩이 설 자리가 없어질 수 밖에 없다는 거죠.

또 다른 이유는 이집트산 콩과 수입 콩의 가격 차입니다. 이집트가 아무리 임금이 싼 나라라고 해도 농업 기술의 후진성 때문에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농기계를 이용해 대규모로 생산된 값싼 콩과 비교해 가격경쟁이 안 된다는 겁니다. 이집트에도 '신토불이'가 선호되겠지만 수입콩의 2배나 비싼 이집트산 콩을 마음 편하게 사다 먹을 이집트 서민은 적겠죠. 가격경쟁에서도 밀리다 보니 갈수록 수입산에 자리를 내주는 것도 원인 중 하나로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설명이 안 되는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이집트 파운드 가치 하락 때문 콩값이 이렇게 오르는 거라면, 왜 이집트 국내산 콩값은 덩달아 오르는 걸까요? 수입콩이 한 달 사이 20%가 뛰었는데 이집트산 콩은 오히려 그보다 많은 25%가 뛰었더군요. 전문가들은 유통의 문제를 이야기 하던데 정확하게 이해는 되지 않았습니다. '환율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분명 수상한 무엇이 끼어들었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이상을 더는 못 알아내겠더군요.

길어서 2분 내외인 특파원 리포트에서 이런 저런 복잡한 이야기를 설명하기도 힘들 것이고, 라마단에 왜 콩을 많이 먹느냐는 궁금증을 가져도 막상 국내 시청자들에게 이집트의 콩값이 오르는 이유는 쉽게 와닿지 않을 것 같더군요. 정경유착 같은 음모라도 끼면 모를까 의혹만 있지 개연성을 뒷받침할 만한 연결고리는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깨끗이 접었습니다.

콩만 놓고 본다면 이집트는 불과 15년 사이에 자급자족 국가에서 수입의존 국가가 됐습니다. 영양분 차이도 거의 없지만 가격은 절반도 안 되는 수입 콩은 돈이 없는 서민에게 환영 받았을 겁니다. 하지만, 수입 의존도가 커질수록 자신도 모르게 이집트는 자급능력을 상실하면서 세계 시장 변화에 휘둘리는 존재가 됐습니다. 이제는 콩이 더 비싸져도 대안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 됐습니다. 조금 더 비싸더라도 우리 농산물을 지켜야 하는 '식량안보'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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