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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박근혜 대통령의 다섯 번째 정무수석

'정무 政務 : 정치나 국가행정에 관계되는 사무', 사전적 의미는 그러하다. 내가 처음 이런 정무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만든 사람은 정두언 전 의원이다. 2002년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에 당선되자, 정무부시장으로 함께 온 정두언. 그를 서울시청 출입기자로서 기자 초년병 시절에 만났을 때, 서울시에서 정무부시장의 일은 어떤 것인지 참 궁금했었다. 

서울시의 여러 가지 일들을 취재하는 중에는 정무 부시장이 무엇을 하는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이후 정두언은 17대 국회의원이 되고, 이명박 대선후보 캠프의 주요 인물이 되고, 이명박 정부 '실세' 범주에 들다가 MB의 형 이상득 전 의원과 대척점에 선 것을 기점으로 탄압받는 비주류가 됐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다. 그의 가는 길을 보면서 '아, 정무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정무'를 하는 사람들은 그 임무를 맡긴 사람과 정치적 운명 공동체이고, 모든 결정의 앞을 이해하고 뒤를 수습해야 한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결국은 자신의 정치적 길을 간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새누리당 김재원 전 의원을 다섯 번째 정무수석으로 임명했다. 20대 총선에서 여당이 1당 지위를 더민주에 내어주고 비대위원 인선 문제로 전국위가 파행을 겪으면서 정진석 원내대표와 현기환 정무수석의 갈등의 골이 깊이질 대로 깊어진 상황에서 적임자를 물색하던 박 대통령은 김재원 전 의원을 선택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는 물론이고, 2012년 대선 캠프에서도 브레인으로 활약한 인물. 박 대통령이 '일을 참 잘한다'고 칭찬했다는 인물이다. 박 대통령은 이제 야당은 물론 여당과도 큰소리 나는 싸움은 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요란하게 싸우고도 소득이 없으니, 소리 없이 일을 처리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박 대통령의 첫 번째 정무수석은 이정현 의원이었다. 박 대통령의 생각과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입에 자물쇠를 채워달라'고 간절히 신에게 기도할 정도로 입이 무거운 사람. 호남 출신으로 야당의원들과 소통에도 능하고 소탈한 사람. 정무수석으로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첫 방미에서 지금은 '무죄'라고 스스로 주장하는 윤창중 대변인의 인턴 성추행 사건이 터지면서 이남기 홍보수석이 물러나는 바람에 이정현 정무수석은 홍보수석으로 급히 자리를 옮겼다.

이후 석 달쯤 뒤에야 두 번째 정무수석으로 박준우 주 벨기에 유럽연합 대사관 대사가 임명됐다. 예기치 못한 인사였기에 박 대통령은 이정현 수석에게 홍보 겸 정무를 맡기고, 박준우 수석에게는 외교관 시절 정평난 신사적 협상 능력을 국회와의 관계에서 발휘하길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김한길, 황우여 여야 대표와 대통령 회동에 '정장에 넥타이' 드레스 코드 요구 논란 등 그야말로 거친 대한민국 국회에는 맞지 않는 의전 논란으로 초반부터 힘이 빠진 뒤 존재감 없이 지내다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 발생 두 달 뒤 교체된다.
세 번째 정무수석으로 선택된 사람은 조윤선 전 의원이자 여성부 장관. 18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입성할 당시에는 친박계가 아니었지만 대변인으로서 뛰어난 자질을 갖추고 있어 새누리당 대선 캠프 대변인을 지냈고, 대선 선거운동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지근에서 보좌하면서 남성 측근 의원들이 해줄 수 없는 영역의 조언을 부드럽게 잘했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으로도 임명됐고, 초대 내각에서 여성부 장관에 임명돼 박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다는 것이 확인됐다. 

박 대통령이 정무수석으로서 조윤선 전 의원의 부드러운 힘에 거는 기대도 컸을 것이다. 그러나 여당 카운터 파트가 유승민 원내대표였다. 결국 공무원 연금개혁안을 놓고 당·청 간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여당 원내대표가 청와대 정무수석을 무시한다'는 소문까지 퍼졌다. 조윤선 정무수석은 사의를 표명했다.

박 대통령의 네 번째 선택은 현기환 전 의원이었다. 어디 내놓아도 밀리지 않을 사람이 필요했던 걸까? 현기환 정무수석은 대선 때 박근혜 캠프에 있다가 총선을 앞두고 더민주로 가버린 김종인 대표가 보낸 박 대통령의 64세 생일 축하 난을 '안 받아~' 하며 돌려보냈다.

총선 때 유승민 고사 작전 및 진박 20대 국회 입성의 총대를 메고 동분서주했다. 정진석 원내대표의 혁신비대위 인선을 막아내기 위해 전국위 무산이라는 극단의 카드를 썼다. 현기환 정무수석이 감당해야 하는 상황 자체도 다이나믹 했지만, 그의 대응 방식도 다이나믹하긴 마찬가지였다. 결국 총선 패배 뒤 이병기 비서실장 교체 때는 유임됐다가, 한 달이 채 안 지난 시점에 그도 교체됐다.

다섯 번째 김재원 정무수석은 가벼운 몸짓으로 국회 곳곳을 다니며 이른바 90도 인사를 하고 있다. 국회의장은 더민주 출신 정세균 의원이 맡게 됐고, 새누리당, 더민주, 국민의당으로 3개의 교섭단체가 생겨 김재원 수석은 야당 지도부에 특히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앞선 정무수석 선배들을 힘겹게 했던 상황들은 대부분 여당인 새누리당 때문이었다. 법안 처리 문제에서 야당이 걸림돌로 등장하는 것은 불가항력이라 항변할 수도 있지만, 여당과 불협화음으로 그야말로 대통령의 정치가 안 됐을 때는 정무수석에게 치명타였다.

정무수석에 임명된 지 딱 일주일 만에 김재원 정무수석은 여당으로부터 1차 펀치를 맞은 듯하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유승민, 윤상현 의원을 비롯한 7명의 탈당 의원들의 일괄 복당을 결정해버렸다. 그러니까 친박계가 지난 총선에서 피 흘림을 감수하고 얻어낸 성과물이 물거품이 돼 버렸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비록 당은 쪼그라들었지만 친박계의 비중을 늘어났다고 위안을 삼고 있었는데, 대선을 이끌어 갈 새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마저도 어려워진 것이다.  

여당이라 불리는 새누리당의 이같은 기습 결정에 청와대의 당혹감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비대위가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왜 다시 원점으로 돌렸는지 그 이유도 청와대는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자기 정치라고 비난하기 전에 다른 시각으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정무'자가 들어간 사람들은 그를 임명한 사람의 뜻을 바꾸거나 거스르기는 어렵다. 그 뜻에 맞게 상황을 만들어 가거나, 그렇지 못했을 때는 어떻게 해서든 되돌려 놓아야 한다. 그게 '정무'의 보편적 역할이다. 김재원 정무수석은 보편적일지, 아니면 예외적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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