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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취재파일④] '악마의 유혹' 도핑…금지 약물과의 전쟁

[편집자 주]

오는 8월5일(현지 시간) 브라질의 세계적 미항인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지구촌 축제’인 제31회 하계 올림픽이 화려한 막을 올립니다. 남미 대륙에서 처음으로 개최되는 올림픽이어서 의미가 남다릅니다.

SBS는 지난 120년 동안 올림픽이 낳은 불멸의 스타, 감동의 순간, 잊지 못할 명장면,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각종 에피소드를 담은 특별 취재파일을 마련했습니다. 이번 특별 취재파일이 올림픽에 대한 독자의 상식과 관심을 확대시켜 리우올림픽을 2배로 즐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운동선수들은 단기간에 기록과 성적 향상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약물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도핑은 페어 플레이라는 스포츠 정신에 명백하게 위반되는데다 부작용으로 선수의 건강과 생명까지 위협하는 ‘악마의 유혹’입니다.

도핑의 역사는 20세 초반부터 많은 운동선수들이 기록향상을 위해 약물을 복용하기 시작할 정도로 뿌리 깊습니다.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는 경기 도중 한 선수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하는 사고까지 발생했습니다. 덴마크의 크누드 에네마르크 옌센이라는 선수가 사이클 개인도로 경기 중에 자전거에서 떨어져 숨졌는데 당시 검시관들의 조사 결과 사망 원인이 각성제인 암페타민 과다 복용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를 계기로 1960대 중반부터 각 경기 연맹은 약물 복용을 금지하기 시작했습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1967년 약물 복용을 금지하고, 1968년 프랑스 그르노블 동계올림픽부터 도핑테스트를 실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올림픽에서 금지 약물 양성 반응이 나와 메달을 박탈당한 첫 번째 선수는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근대 5종에서 동메달을 딴 스웨덴의 한스 군나르 리렌바르라는 선수입니다. 그는 경기 후 도핑검사 결과 신경을 안정시키기 위해 알코올을 복용한 것으로 확인되어 메달을 박탈당했습니다.

● 도핑으로 몰락한 ‘약물 탄환’ 벤 존슨
벤 존슨 서울올림픽 사진
역대 올림픽에서 금지 약물 복용으로 메달을 박탈당한 가장 유명한 선수는 캐나다의 육상 선수 벤 존슨입니다. 1984년 LA 올림픽 남자 육상 100m에서 라이벌인 미국의 칼 루이스에게 밀려 동메달에 머문 벤 존슨은 1987년 로마 세계 육상선수권대회에서 9초 83의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칼 루이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당시 최초로 9초 8대의 벽을 넘어선 경이적인 기록이었습니다.

1년 뒤 서울 올림픽의 최대 관심사는 두 인간 탄환들의 100m 대결이었습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1988년 9월 24일 오후 1시 30분 6만 관중이 운집한 서울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100m 출발 총성이 울렸습니다. 폭발적인 스퍼트로 초반부터 치고 나간 벤 존슨은 한 번도 선두를 빼앗기지 않았고 골인 직전에는 오른 팔을 번쩍 들고 옆에서 달리던 칼 루이스를 쳐다보는 여유까지 부렸습니다. 9초 79! 1년 전 자신이 세웠던 세계기록을 다시 0.04초 단축한 정말 놀라운 기록이었습니다.
벤 존슨 100m 골인 순간
하지만 벤 존슨의 화려한 무대는 ‘3일 천하’로 끝났습니다. 사흘 뒤인 9월 27일 IOC는 벤 존슨이 도핑 검사 결과 금지약물인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것으로 드러나 금메달을 박탈하고 향후 2년간 국제대회 출전을 금지한다고 발표해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1년 전 세웠던 9초 83의 세계기록도 소급 적용해 무효처리가 됐습니다.

벤 존슨은 발표 전날 밤 IOC 의무분과위원회가 청문회를 열고 소명 기회를 줬지만 출석하지 않고 서면으로만 “고의성이 없었다”다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고, 27일 아침 일찍 김포공항을 통해 ‘야반도주’하듯 황급히 출국했습니다.
벤 존슨 출국 사진
김포공항에는 벤 존슨의 출국 모습을 취재하기 위해 전 세계 외신기자 100여명이 아침 일찍부터 진을 쳤지만, 벤 존슨은 김포 공항경찰대의 경호를 받으며,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여자 친구와 함께 떠났습니다. 우승 때의 위용은 온데 간데 없고, 여자친구가 핸드백으로 얼굴을 가려주며 도망가는 모습이 씁쓸한 뒷맛을 남겼습니다.

벤 존슨은 이후 1991년 징계가 풀려 트랙에 복귀했지만 이렇다 할 성적을 올리지 못했고, 1993년 또다시 약물 복용이 적발돼 영구 자격 박탈을 당하고는 쓸쓸히 트랙을 떠났습니다. 이후 ‘약물 스프린터’에서 ‘약물 근절 홍보대사’로 변신해 2013년 25년 만에 다시 우리나라를 찾아 서울 올림픽 주경기장을 둘러보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악영향을 미치는 약물을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선수들이 자신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서울 올림픽 당시 칼 루이스를 포함해 대다수 선수가 약물을 복용하고 있었지만 자기만 걸렸다며 정치적인 희생양이 됐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벤 존슨의 이런 주장이 그의 행위를 결코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당시 선수들 사이에서는 그만큼 약물이 만연했던 것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1970-80년대 ‘허들의 제왕’으로 불리며 남자 육상 400m 허들 최강자로 군림했던 미국의 에드윈 모지스는 지난해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때 세계반도핑기구(WADA)의 교육분과위원장 자격으로 방한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서울 올림픽 때 벤 존슨이 도핑 양성 반응이 나온 것보다 그 선수만 양성 반응이 나왔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 ‘살아서도 죽어서도 약물 의심’…플로렌스 그리피스 조이너
그리피스 조이너
1980년대 여자 육상 단거리를 호령했던 미국의 플로렌스 그리피스 조이너를 기억하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화려한 외모와 파격적인 유니폼, 길게 기른 손톱과 매니큐어 장식 등 뚜렷한 개성으로 ‘달리는 패션모델’로 화제를 모았던 선수죠. 기량도 압도적이었습니다.

그녀가 1988년 수립한 100m 세계기록 10초 49와 200m 세계기록 21초 34는 2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난공불락의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역대 100m 세계랭킹 1-3위까지 기록을 그녀가 보유하고 있고, 4위 기록이 2009년 미국의 카멜리타 지터가 세운 10초 64로 무려 0.15초 나 차이가 납니다.
그리피스 조이너 의상
200m 기록도 미국의 매리언 존스가 1998년 작성한 21초 62보다 무려 0.28초나 앞섭니다. 매리언 존스 역시 도핑이 발각돼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 땄던 금메달 3개와 동메달 2개 등 5개의 메달을 모두 박탈당한 선수입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엄청난 기록 때문에 그리피스 조이너는 끊임없이 도핑 의혹을 받아왔고, 그녀가 금지 약물을 복용했다는 지도자들과 훈련 파트너들의 증언도 잇따랐습니다. 하지만 그리피스 조이너는 자신은 약물을 복용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고, 당시 도핑 검사에서도 한 번도 적발되지 않았습니다.
그리피스 조이너 손톱
서울올림픽에서 3관왕을 차지한 뒤 그녀는 현역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10년 뒤 그녀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은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그녀는 1998년 9월 21일 자택에서 잠을 자다 심장발작으로 38살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리피스 조이너
그녀의 사망원인을 놓고 약물 후유증이라는 설이 파다했는데 부검을 담당한 의사는 사망 원인이 간질병 발작으로 밝혀졌고 금지약물 복용 흔적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녀가 당시 허술했던 도핑 검사 기술로 발각되지 않았다는 의혹의 시선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 도핑 파문은 현재 진행 중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 지금 세계 육상계는 도핑 때문에 시끄럽습니다. 러시아가 국가 차원에서 선수들의 약물 복용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도핑 스캔들’로 홍역을 치르고 있고, 케냐도 2012년부터 올해까지 40명 이상이 금지 약물 복용으로 선수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IOC는 최근 8년 전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의 표본 454건을 대상으로 재검사를 실시해서 당시에는 무사히 통과했던 31명을 추가로 적발하기도 했습니다. IOC는 선수들의 도핑 검사 샘플의 보관 기간을 10년으로 늘리고, 나날이 발전하는 검사 방법을 활용해 사후에 언제라도 약물 복용이 적발될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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