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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플러스] 치욕의 '일제 총독' 휘호 버젓이…망각의 역사

서울 한국은행 본관과 서울시립미술관, 그리고 마포 래미안 푸르지오 아파트입니다. 서로 별다른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데요, 이 건축물들의 공통점은 일제시대 조선 총독을 지낸 일본인의 글씨가 새겨진 머릿돌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곳이 서울 시내에만 8곳이나 된다고 며칠 전 장세만 기자가 8시 뉴스에서 소개해 드렸는데요, 더 자세한 내용을 취재파일을 통해 전했습니다.

1909년에 설립된 한국은행의 머릿돌을 보시죠. 조선 침략의 원흉이자 중국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당한 이토 히로부미의 휘호가 그대로 보존돼 있습니다.

현재의 서울시립미술관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1927년 경성법원청사로 세워진 이 건물의 머릿돌에는 제3대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의 친필이 새겨져 있습니다.

하세가와의 후임 사이토는 서울역과도 뗄 수 없는 인연이 있습니다. 3·1 만세 운동이 있었던 1919년 9월 총독직에 부임하기 위해 경성으로 오자마자 역 앞에서 폭탄 투척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운 좋게 살아남았고 그로부터 4년 뒤 신축 서울역이 완성되자 자신의 글씨체를 머릿돌에 부착했습니다.

그에게 수류탄을 던졌던 민족 지사 강우규 의사는 의거 현장에서 붙잡힌 뒤 서대문 형무소로 이송돼 1년 만에 옥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말입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에야 이 자리에 강우규 의사의 동상도 세워졌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사이토가 쓴 글자와 몇 걸음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사이토의 흔적은 이 밖에도 천안 독립기념관에 있는 옛 조선총독부 신청사 머릿돌과 인천 시립박물관에 있는 잠령공양탑 비석에 여전히 담겨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마포구 아현동의 래미안 푸르지오 아파트 단지에는 진입로 끝자락에 표시석이 설치돼 있는데요, 여기 적혀있는 세 글자도 역시 일제 때 총독이 쓴 겁니다.

1932년 배수터널을 완공하면서 당시 총독이었던 우가키 가즈시게가 사물에 통달한다는 뜻의 선통물이라는 단어를 새겨넣었는데,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 배수 터널이 지하에 묻히자 원형과 똑같은 복제품을 따로 제작해서 현 위치에 갖다놓은 겁니다.

옆에는 표지판을 만들어 그 유래를 적어 놨지만, 어찌 된 일인지 조선 총독의 글이라는 내용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가키의 뒤를 이은 미나미 지로 총독의 필체도 인왕산에 있는 병풍바위와 연세대 캠퍼스 안에 있는 흥아유신 기념탑이라는 조형물에 또렷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숨 쉬고 있는 일제강점기의 잔재가 우리 주변에 상당한 것으로 조사됐는데요, 눈앞에서 안 보이도록 없애 버리는 게 손쉬운 해법인 것 같지만, 그런 감정적 대응이 능사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합니다.

오래전 치욕의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기 위해서는 망각의 세월로 흘려보낼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전후 관계를 밝혀 기억하고, 또 기록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이순우/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 그것을 자꾸 없애고 감추기보다는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이것이 우리의 역사의 교훈이랄까 역사를 깨우치는 어떤 그런 자료로써 활용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 [취재파일] 서울 도심 곳곳에 100년 가까이 조선총독 글씨…철거·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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