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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동상이몽', 이집트와 프랑스-여객기 추락 원인에 대한 입장

이집트항공의 여객기가 지중해상에 추락한 지 일주일이 됐습니다. 수색 작업이 벌어지고 있지만 사고원인을 밝힐 결정적인 단서는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설만 분분합니다. 폭탄 테러나 방화, 화재, 기체결함, 조종사 과실까지 다양한 추론만 제기되고 있습니다.

갖가지 추론은 크게 테러냐? 사고냐? 둘로 쪼개볼 수 있습니다. 관련 국가나 단체에서 서로에 대한 책임과 여파를 고려해 자신들에 유리한 쪽으로 가설과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추락 발표 순간부터 뉴스의 흐름을 따라가는 저도 이제는 어느 게 사실이고 어느 게 추론인지 헷갈릴 정돕니다.
지중해상에 추락한 이집트항공의 에어버스 320 기종
● 명확한 사실로 봐야 할 것들

현지시간 지난 19일 새벽 2시 45분, 파리를 떠나 카이로로 향하던 이집트항공 여객기 MS804가 레이더에서 사라졌습니다. 카이로 착륙 예정 30분 전입니다. 연락이 끊긴 곳은 이집트 영공 내 16km 진입한 곳입니다. 여객기에는 56명의 승객과 10명의 승무원이 타고 있었습니다. 승객은 대부분 이집트와 프랑스인입니다.

곧바로 수색 작업이 진행됐습니다. 이집트는 물론 그리스와 프랑스, 영국에 미국까지 수색에 참여했습니다. 사고기의 잔해가 발견됐습니다. 비행기 동체 조각으로 보이는 파편과 탑승자의 핸드백, 기내에 있던 방석과 의자 파편, 그리고, 조각난 시신 일붑니다. 이집트는 "탑승자 전원 사망"이라고 결론내렸습니다.

수색은 여객기의 음성기록과 비행 데이터가 담긴 블랙박스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추락지점에서 40킬로미터 떨어진 해상에 유출된 기름띠가 발견됐습니다. 동체가 그 밑에 가라앉았을 것이란 추정을 낳고 있습니다.

사고 지점의 수심은 3천 미터나 됩니다. 깊습니다. 이집트는 3천 미터 수심에서도 활동이 가능한 심해 잠수함을 투입했습니다. 예전에 블랙박스를 4천 미터 심해에서 찾은 경우도 있습니다. 블랙박스는 수심 6천 미터에서도 전파를 발생할 수 있습니다.

● 사실로 믿겨지는 주장들

여객기는 레이더에서 사라지기 10분 전부터 지상의 관제탑과 어떤 교신도 하지 않았습니다. 구조 요청이나 갑자기 고도가 떨어진다는 위험신호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대처하지 못할 돌발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란 추측을 낳고 있습니다.

그리스 국방부는 사고기가 추락직전 이상 비행을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1만 1천미터 고도로 비행하다 갑자기 왼쪽으로 90도를 돌고 다시 오른쪽으로 360도를 돌면서 4천 5백미터 상공으로 고도가 뚝 떨어진 뒤 고도 3천 5백미터쯤에서 레이더에서 사라졌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 중심을 잃고 요동치면서 추락했다는 겁니다.

미국 CNN 방송은 이집트 소식통으로부터 입수했다며 '항공 운항 정보 교신시스템', 쉽게 말해 여객기 컴퓨터가 지상 관제센터로 보낸 데이터를 공개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사고당일 새벽 2시 26분 화장실에서 연기가 났고, 1분 뒤 항공 전자장치에서 연기로 인한 경보가 울린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2시 33분에 여객기와 교신이 끊긴 것으로 나옵니다. 위치는 조종실 바로 뒤쪽 화장실로 나옵니다. 항공 전자장치는 당연히 조종실에 있는 걸 말합니다. 여기까지는 사실로 믿어도 될 만한 내용입니다.
● 폭발물 테러일까?

관련 사실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가설이 등장합니다. 테러를 주장하는 측은 구조요청이나 위험 신호가 없었다는 점, 갑자기 고도가 급감한 점을 이유로 듭니다. 기체 결함 같은 내부 문제이면 이상 신호를 보냈을 텐데 그럴 틈도 없이 터진 일이라면 원인이 테러 밖에 없다는 겁니다. 3천 미터 상공에서 레이더에서 사라진 점도 폭발과 방화로 기체 손상이 발생했고 급격한 압력변화로 동체가 공중분해 됐기 때문이라는 추정이 제기됩니다.

추락했다면 해수면에 부딪치면서 잔해들이 한 지점에서 대량 발견돼야 하는 게 상식입니다. 하지만, 이집트 당국이 공개한 잔해들은 모두 갈기갈기 찢겨 조각난 작은 것뿐입니다. 그리고 상당부분 멀리까지 흩어져 수거 작업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공중분해 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으로 공중분해의 원인은 폭발이 가장 확률이 높다는 겁니다.

이집트의 법의학조사팀은 "부검한 80점의 신체 일부분은 모두 크기가 작다", "팔이나 머리 조차 온전한게 없다"며, "폭발이 있었다는 게 타당한 설명"고 말했다고 이집트 언론은 보도했습니다. 법의학팀은 시신의 팔 하나에는 화상 흔적이 있는데 폭발이 일어난 곳 옆에 있었던 사람의 것으로 추정됐다고까지 밝혔습니다. 폭발이 일어나 공중분해됐다는 겁니다. 이집트 법의학청장이 부랴부랴 사실에 기반을 둔 분석이 아니라며 부인했지만 테러에 대한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폭발에 의한 테러라면 분명 폭발 순간 발생하는 이상열이 감지돼야 합니다. 하지만, 미국의 위성사진에는 폭발에 의한 열이나 징후가 전혀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공중분해도 다른 이유로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기체는 단단한 쇠가 아닙니다. 무게를 가볍기 위해 탄소섬유가 많이 쓰입니다. 균형을 잃고 뒤틀린다면 충분히 균열이 생기고 그로 인해 공중분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테러라면, 특히 이런 메가톤급 항공기 테러라면 배후를 주장하는 단체가 나와야 하는데 아직 없습니다. 지난해 10월 러시아 여객기 추락 당시엔 IS가 바로 당일에 배후를 주장했습니다. IS는 자신들이 벌인 테러는 존재감 과시를 위해 꼭 배후를 자처합니다. 터키가 예외지만, 다른 나라에서 벌인 테러는 다 밝혔습니다. (터키에서 IS가 벌인 테러는 모두 에르도안 정부가 IS를 배후로 지목했을 뿐 IS는 맞다 틀리다 전혀 답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모든 터키 테러에 대해 한결같이… 미스터리하죠?)

● 기체 결함이나 조종사 과실일까?

기체 결함이나 조종사 과실을 주장하는 쪽은 비행기록에 담긴 '연기 감지 경보'입니다. 일부 언론은 화재경보라고 썼지만 정확히는 'SMOKE ALERT' 연기가 감지됐다는 겁니다. 위치는 조종실 뒤편의 화장실과 조종실의 항공 전자장치입니다. 조종실 창문 2개도 결함이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조종실에서 뭔가 일이 일어났다는 추정을 났습니다. 이건 테러일 수도 화재일 수도 있습니다.

프랑스 항공당국은 뒤늦게 "기내 앞부분에서 불이 일어났고 모종의 장치에서 결함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한 항공전문가는 "연기가 전자 장치로 스며들 경우 3분 안에 항공기시스템이 모두 멈춰버릴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유야 모르겠지만 화재로 조종실까지 불이 번져 연락도 할 수 없는 비상상황이 벌어졌을 수도 있고, 화재로 인해 교신이 끊겨 버릴 정도로 시스템이 마비될 수도 있습니다.

프랑스의 'M6'라는 TV채널은 "사고기가 추락직전 관제탑과 기내에 연기가 가득 차 비상착륙을 시도한다"라고 교신을 취했다는 주장을 제기했습니다. 이집트 정부는 곧바로 부인. 반박했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연기 감지 기록이 전형적인 화재로 보기엔 단서가 너무 부족하다는 입장입니다. 기체에 불이 나면 온갖 시스템이 오작동을 일으켜 보고가 쏟아졌을 텐데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그리고, 화재라고 보기엔 비행기록에 나온 1분의 '연기 감지 경보'는 너무 짧다는 겁니다.

화장실에서 연기 감지는 승객이 화장실에서 몰래 피운 담배연기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집트 항공을 출장이나 휴가 때 종종 탑니다. 흡연에 관대한 이집트 사회의 특성 때문인지 기내 화장실에 들어가면 방금 전 누군가 피웠을 담배 냄새가 배어 있기도 합니다.

사고기는 에어버스 320 기종입니다. 제작된 지 12년 됐습니다. 항공기에서 12년이면 청년급입니다. 3년 전 이륙 직후 엔진과열로 회항해 정비를 받은 기록이 있지만 전문가들은 엔진과열이 추락까지 이어지거나 기내 화재로 번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입을 모습니다.

조종사 과실에 문제도 아직은 확정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사고기 기장은 6천 시간 이상을 비행한 베테랑이고 사고기도 2천 시간 운행한 기록이 있습니다. 부기장은 2천여 시간의 비행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종사 자살시도'를 주장한 매체도 있었는데 믿을 건 못 되는 것 같습니다.
● '동상이몽' 이집트와 프랑스

추락 원인을 두고 이집트와 프랑스의 입장은 상반됩니다. 이집트는 테러로 은근히 몰아가는 분위기이고, 프랑스는 기체 결함이나 조종사 과실 같은 내부적 원인에 무게를 두려고 합니다.

이집트로서는 내부적 원인으로 밝혀질 경우 또 한번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됩니다. 지난해 10월 시나이 반도에서 러시아 여객기가 추락해 탑승자 224명이 전원 사망했습니다.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 IS가 자신이 벌인 폭탄 테러라고 주장했습니다. 영문 선전잡지인 다비크에는 러시아 여객기에 사용됐다는 '깡통 폭탄'의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지난 3월에 이집트항공의 국내선 여객기가 공중납치되기도 했습니다. 납치범인 이집트 남성은 몸에 두른 폭탄조끼를 폭파시키겠다고 위협했지만, 폭탄조끼는 가짜로 판명났습니다.

이런 저런 항공사고로 이집트의 항공여행과 여행객 안전에 대한 신뢰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습니다. 특히 러시아 여객기 추락사건 이후 이집트의 관광수입은 40%까지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집트는 국가 수입의 10% 이상을 관광수입에 의존하는 나랍니다. 경제적 타격이 심각한 수준입니다.

이러니 추락이 항공사의 내부적 요인으로 결론 나는 일은 상상도 하기 싫을 겁니다. 추락 직후 이집트 민간항공부 장관은 "테러일 수 있다"라고 대뜸 밝혔습니다. 어떤 설득력 있는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시신을 부검한 이집트 법의학 조사팀도 마찬가집니다. "폭발이 있었다"라고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러시아 여객기 추락에 대해선 당사국인 러시아는 물론 전 세계가 IS의 폭발물 테러로 믿고 믿고 있는데도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수사 결과를 발표하지도 않고 있는 이집트입니다. 이집트에선 러시아 여객기 추락이 아직도 '미제 사건'입니다. 그런 이집트가 이번엔 사고 당일부터 테러 관련 근거와 주장을 계속 언급하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정반대 입장입니다. 테러로 결론 나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후폭풍이 예상됩니다. 지난해 IS의 '파리 테러'를 겪은 뒤 프랑스는 경계수준을 대폭 강화한 상탭니다. 더구나 지난 3월 이웃집 벨기에의 브뤼셀 공항이 폭탄 테러를 당하는 걸 봤는데 공항 보안을 허술하게 놔둘 리 없습니다.

더구나 당장 6월 8일부터는 월드컵보다 더 재미있다는 유럽축구선수권 '유로 2016'이 프랑스 전역에서 펼쳐집니다. 수십 만 명의 축구팬이 프랑스로 몰려듭니다. 그런 상황에서 테러로 여객기가 추락했다면, 어떤 경로든 폭발물이 실리는 걸 파악하지 못했다는 책임이 프랑스에 돌아옵니다. 철통 보안을 자랑하던 파리 드골 공항이 뚫렸다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파리 테러'로 몸서리를 쳤던 프랑스 국민은 다시 테러 공포에 떨어야 하고, '유로 2016'을 보려고 프랑스에 가려던 축구팬들은 볼거리냐 내 안전이냐를 따지게 될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프랑스 항공당국은 미 CNN이 기내 연기 발생에 대해 보도를 하자 "불이 일어났고 장치에 결함이 생겼음을 말해준다"며, 은근슬쩍 기체 결함에 힘을 보탰습니다. 프랑스의 한 방송은 아무 근거도 없이 "사고기가 추락직전 기내에 연기가 가득 찼다고 교신을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사고 원인은 그저 혼란과 추정만 가득할 뿐입니다. 현재까지 수거한 잔해로는 사고 원인을 이끌어내기엔 한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초기 수사 발표도 한 달은 걸릴 것이라고 이집트 정부는 밝혔습니다. 블랙박스를 찾기 전까지는 사고원인에 대한 답은 쉽게 나오지 않을 듯 합니다.

어떤 결과든지 이집트나 프랑스 둘 중에 한 나라는 사고 원인에 따른 강한 후폭풍을 맞닥뜨려야 합니다. 사고원인 파악에 진척이 없다 보면 서서히 뉴스의 관심에서 멀어질 것이고, 그러면 테러냐 결함이냐의 원인 파악도 무관심에 묻혀 사라지겠죠. 그걸 바라는 나라가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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