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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21세기 술탄 에르도안 ③ - 고독한 독재자

A4로 3장 정도면 될 듯하고 적기 시작했는데 적다 보니 10장을 넘겼습니다. 한 줄기의 이야기라 통으로 갈까도 생각했지만 독자의 편의를 위해 3편으로 쪼갰습니다.

1편에선 터키에서 벌어지는 언론탄압과 인권침해의 실상에 대해, 2편은 에르도안이 어떻게 정치적 성공을 거두고 정적을 제거하며 권좌를 차지하게 됐는지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3편에선 앞으로 터키 정국이 어떻게 흐를 지와 에르도안의 권력욕은 어디까지 갈 것인 지에 대해 조심스럽게 써보겠습니다. 3편은 제 개인적인 의견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 권력욕의 끝은?

터키의 대통령은 원래 7년 단임제였습니다. 이걸 2007년 에르도안이 헌법을 개정해 5년 중임제로 바꿔놨습니다. 총리 시절 이미 미래를 대비한 거죠. 총리 12년에 대통령 10년, 도합 22년 장기집권의 길은 터놨습니다.

문제는 터키가 의원내각제라는 겁니다. 원래 대통령이 실권이 없지만 에르도안은 내각회의를 직접 주재할 정도로 여전히 막강한 힘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만족할 사람이 아니죠. 헌법을 바꿔서라도 대통령 중심제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입만 열면 대통령 중심제 전환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효과적인 대통령제의 사례로 히틀러 시대의 독일을 언급해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이러다가 언제 중임제를 연임제도 바꾸자고 할지 모른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 세력 안에서도 모난 돌을 일찌감치 골라내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조기 총선을 일선에서 진두 지휘한 건 다부토울루 총리였습니다. 에르도안이 대통령이 되면서 꼭두각시처럼 앉혀놓은 총리였는데, 다부토울루는 총선을 승리로 이끈데다 각종 현안에서 능숙한 정치력을 발휘하며 당내에서 입지를 강화했습니다. 필요할 때면 에르도안과 다른 목소리도 냈습니다.

이런 다부토울루가 돌연 총리직은 물론 정치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겉으로 스스로 결정한 판단이라지만 에르도안과 면담 직후 결정될 것으로 볼 때 뭔가 약점을 잡힌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됩니다.
에르도안과 권력 경쟁에서 밀려난 다부토울루 총리
● 독재와 고립

터키는 한때 이슬람 민주주의의 성공한 모델로 불렸습니다. 에르도안의 권위주의적 통치로 비롯된 언론 탄압과 반대파 제거, 쿠르드족 억압은 이런 명성을 퇴색시키고 있습니다. 이미 군경을 장악하고 정적을 다 몰아낸 상황에서 에르도안의 행보는 일관될 것 같습니다. 언론과 인권 탄압을 계속 될 것으로 터키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독재적인 행보가 언제가는 에르도안의 발목을 붙잡을 것이란 관측도 만만치 않습니다. 독재에는 고립이란 단어가 늘 꼬리표처럼 따라붙습니다. 권좌를 지키기 위해 내부의 불만을 억누르고 외부의 조언과 비판을 무시하다 보면 스스로를 가두게 되곤 맙니다. 터키의 에르도안도 그런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에르도안은 경제 침체의 탈출구로 EU 가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EU와 거래를 했습니다. 유럽에 쏟아지는 난민 가운데 부적격 난민 (이주자)를 되돌려 받는 대신에 터키의 EU 가입을 받아주는 조건입니다. 쏟아지는 난민 처리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유럽과, 발은 아시아를 딛고 있으면서도 머리가 닿았다는 이유로 유럽이 되고자 하는 터키의 욕구가 잘 맞아떨어지는 윈-윈 전략입니다.

그런데 술술 풀릴 것 같던 거래에 걸림돌이 생겼습니다. 에르도안의 정적 제거에 동원되는 '반테러법' 입니다. EU는 터키의 반테러법이 언론탄압과 인권침해에 악용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EU 가입 자격에 걸림돌이 된다며 법규수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터키는 아무리 EU라도 남에 집에 감나와라 배나와라 할 수 없다고 맞섭니다. 절대로 법을 수정하지 않겠다며 대통령부터 장관까지 틈만 나면 떠들고 있습니다. 터키의 EU가입 추진은 답보상탭니다.
터키는 러시아와도 등을 졌습니다. 영공 침범을 주장하며 터키 전폭기를 격추시킨 일이 계기가 됐습니다. 행동력 만큼은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는 푸틴이 참을 리 없습니다. 러시아는 터키에 강도높은 경제제재에 들어갔습니다. 터키와의 교역과 근로자 비자 발급을 중단했습니다. 이로 인해 올 한해 터키의 경제적 손실이 우리 돈 100조 원이 넘을 것이란 예측도 나옵니다.

에르도안은 이슬람주의자지만 다른 아랍국가와 친밀하지 못합니다. 왜? 이슬람근본주의 정치조직인 무슬림 형제단과 밀접하기 때문입니다. 무슬림 형제단은 수니파 걸프 왕정국가들조차 경계하는 대상입니다. 아랍의 봄 당시 이집트 시민혁명을 주도한 조직입니다.

엘시시 군부가 쿠데타로 축출한 무르시 전 대통령도 무슬림 형제단입니다. 걸프 왕정은 이슬람 민주화 혁명으로 표현되는 아랍의 봄이 자신들의 왕국에도 퍼질까 전전긍긍했습니다. 그러니 무슬림 형제단을 좋아할리 없죠. 특히 이집트와 터키는 거의 앙숙관곕니다.

● 두 개의 전쟁

터키는 여기에 IS에 쿠르드 반군까지 두 개의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터키는 눈에 가시같은 쿠르드족을 견제할 목적으로 IS 격퇴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습니다. 손 안 대고 코 푼다고 '이이제이' 전술로 양측의 소모전을 즐겼습니다.

그러다, IS와 쿠르드 반군의 테러가 이스탄불이며 앙카라에 쉬지 않고 이어지자 양쪽과 동시 전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상황이 아닐까요?

시리아와 이라크내 쿠르드족은 러시아와 미국은 물론 국제동맹군이 IS의 대항마로 전폭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터키는 자국내 쿠르드반군과 시리아.이라크의 쿠르드족이 '한 패'라며 미국과 러시아를 맹비난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쿠르드 반군을 소탕하겠다며 이라크 영토안에 군대를 주둔시켜 이라크의 반발을 사기도 했습니다.
테러는 관광대국 터키에 치명타를 날리고 있습니다. 정부청사며 군 차량, 관광지 한복판까지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무차별 테러에 터키 관광객은 급감했습니다.

올 여름 이스탄불의 호텔 예약은 지난해 대비 40%가 줄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사실 이집트에서 일하시던 많은 한국 가이드분들이 시민혁명과 군부쿠데타로 관광객이 끊기면서 터키로 옮겼는데, 이제는 터키에 테러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면서 다시 체코로 옮겨가고 있다고 합니다.

터키는 외교적으로 고립되고 경제적으로 궁핍해지는 상황입니다. 외교와 경제의 탈출구로 여긴 EU가입도 '반테러법' 의 발목이 잡힌 상황입니다.

요즘은 권위주의, 이른바 '마초이즘'이 뜨고 있다고 합니다. 러시아 푸틴, 필리핀 두테르테, 미국의 트럼프가 그렇습니다. 역사적으로 혼란의 시대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마초이즘은 대립과 갈등을 먹고 삽니다. 터키의 에르도안도 그런 분위기를 타고 났으며 또 잘 이용하는 정치가입니다. 정치적 위기마다 에르도안은 교묘한 편가르기와 반대파 제거를 통해 기사회생하며 권좌를 지켜왔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의 첫 번째 덕목은 무엇일까요?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 그 해답이 나와있죠. 북한군 장교인 정재영이 동막골 이장에게 묻습니다. "어찌하면 인민들이 이리 잘 따르는기요?" 이장의 답변이 걸작이었죠. "잘 믹기야지(먹어야지)." 정답은 '함포고복'입니다. 민초의 불만은 단순하죠. 굶주리고 추우면 불만이 생기게 됩니다.

현대 정치의 기반은 경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에르도안은 과거 10년간 이런 민심의 경제적 욕구를 충족하며 장기집권을 이어갔고 독재에 대한 지지를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특히 최근 터키 상황을 보면 외교적 고립과 경제난에 따른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입니다. 그럴수록 반대파의 불만을 더 깊어지고 갈등은 증폭될 수밖에 없습니다.

분열된 터키, 입과 귀가 막혀버린 터키, 외톨이가 된 터키, 싸움닭이 된 터키, 곳간이 비어가는 터키, 이 모두가 결국 에르도안의 외골수적인 통치가 만든 결과물들입니다. 지금 같은 권위주의 독재통치를 고집한다면 에르도안의 정치생명도 한계에 부딪힐 수 밖에 없을 것이란 게 대체적인 시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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