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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막걸리인 듯 막걸리 아닌 막걸리 같은…

- 바나나맛 술과 맥주 순수령

[취재파일] 막걸리인 듯 막걸리 아닌 막걸리 같은…
가수 소유와 정기고가 부른 '썸'이란 노래가 있었습니다. 이 노래 제목은 몰라도 '요즘따라 내꺼(내 것)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라는 대목은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연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냥 친구도 아닌 사이의 오묘한 감정을 참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경우는 다르지만 이 절묘한 표현을, 새로나온 '바나나 맛 술'에 적용해도 될 것 같습니다. '막걸리인 듯 막걸리 아닌 막걸리 같은 술'이라고 말이죠. 특정 회사의 제품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우리 주세법 구조를 설명하는데 적당한 소재여서 한번 얘기해 볼까 합니다.

취재하면서 딱 한 모금 마셔봤습니다. 바나나향이 굉장히 강했습니다. 맛은 달콤했고요. 한마디로 표현하면 '바나나 막걸리'라고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바나나맛을 제외하면 그냥 막걸리 맛에 막걸리 색깔입니다. 쌀을 발효시켜 만드는 제조방식도 막걸리와 꼭 같습니다.

그런데도 이 술병 어디에도 막걸리란 글자는 없습니다. 대신 제품 뒷편 깨알같은 글씨로 기타주류라고 적어 넣었습니다. 왜 영락없는 막걸린데 기타주류라고 분류했을까요? 주세법을 들여다 봐야 겠습니다.

막걸리의 법적 용어는 '탁주'입니다. 00탁주란 표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탁주엔 첨가물 제한 규정이 있습니다. 인공 향을 첨가했다면 탁주라고 할 수 없는 겁니다. 앞에서 말한 바나나술엔 바나나향이 첨가돼 있기 때문에 탁주, 즉 막걸리 라고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거죠. 탁주든 기타주류든 무슨 상관이냐 하실수도 있지만 여러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세금 차이입니다. 막걸리(탁주) 주세는 5%, 기타주류 주세는 30% 입니다. 기타주류엔 교육세도 따로 붙습니다. 그래서 일반 막걸리는 750㎖ 한명에 대형마트에서 1,200원에 팔리지만, 바나나맛 술 750㎖는 이보다 500원 비싼 1,700원에 팔립니다. 가격이 싸야 조금 더 많이 팔리겠죠?

유통구조에도 차이가 생깁니다. 주류 도매업 면허는 특정주류도매업과 종합주류도매업으로 나뉘는데 막걸리는 누구나 취급할 수 있지만 기타주류는 종합주류도매업자만 취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정 면허를 가진 업자는 막걸리는 납품할 수 있어도 이 바나나맛 술은 납품할 수 없다는 얘기죠.

업체측은 말합니다. 막걸리에 향을 첨가했다고 막걸리가 안되는 이런 규제는 좀 풀어야 하는거 아니냐고 말이죠. 다양한 향과 맛의 막걸리를 개발해서 다시 시장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젊은 층도 찾는 막걸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아주 틀린 말은 아니죠?

하지만 정부도 할말은 있습니다. 막걸리란 게 우리 전통주인데, 인공적으로 이것 저것 첨가하면 오히려 막걸리의 정체성이 훼손되는 거 아니냐고 말이죠. 막걸리 보호를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규제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바나나 막걸리 만들고 싶으면, 바나나를 넣으면 되지 바나나 향을 넣으면 곤란하다는 겁니다.

현행법상 과일은 원재료의 20%까지 넣어도 막걸리로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바나나맛 술은 바나나 원물(퓨레)이 0.05%밖에 들어있지 않습니다. 여기에 업체측은 바나나향을 쓰지 않고 바나나를 더 넣으면 술이 곤죽처럼 될 거라고 항변하고 있습니다만...

독일엔 '맥주 순수령'이란 게 있습니다. 1516년 4월 23일 독일 남부 바이에른 공국의 빌헬름 4세가 반포한 법령으로 맥주를 만들 때 맥아와 홉, 물, 효모 이외의 원료는 사용하지 못하게 한 겁니다. 올해로 꼭 500년인 된 법령이죠. 당시에도 업자들이 향신료나 향초 등 이것저것 넣어 맥주를 만들자 그러지 못하게 제동을 건 겁니다.

이 조치가 오늘날 독일맥주의 명성을 쌓아올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엔 독일에서도 맥주 순수령을 폐지할 때가 된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 다양한 맥주 맛을 즐기자는 취집니다. 우리 바나나맛 술 논란과 비슷하죠.

과연 대한민국에선 <막걸리 순수령>이 계속 유지될 것인지 아니면 바뀔 것인지 궁금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주장에 더 공감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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