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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신불산, 50년 된 나무 싹둑…이게 생태복원 사업?

[취재파일] 신불산, 50년 된 나무 싹둑…이게 생태복원 사업?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영남 알프스’를 산행해 봤을 겁니다. 영남 알프스는 영남 동부지역에 위치한 해발 1000M 이상의 산 9개를 유럽의 알프스 산맥에 빗대어 이르는 말인데요. 그만큼 풍광이 멋지고 자연 식생이 우수해 등산객들의 필수 코스로 이름 높습니다.

태백산맥의 남쪽 끝자락에 자리 잡고 경북 경주와 청도 울산시, 경남 밀양과 양산의 5개 시.군에 걸쳐 형성돼 있습니다. 주요 봉우리로는 가지산(1,240M), 신불산(1,209M), 천황산(1,189M), 운문산(1,188M), 재약산(1,108M), 간월산(1,083M), 영축산(1,059M), 고헌산(1,032M), 문복산(1,015M)이 있습니다.

자연 풍광이 뛰어나다 보니 개발에 대한 욕구가 끊이질 않습니다. 밀양시가 2012년 11월 얼음골 케이블카를 민간업자에게 허용한 뒤, 울산시와 울주군도 신불산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 중에 있습니다. 모두 영남 알프스를 관광 자원화 해 관광객 유치와 지역 경제 활성화를 하겠다는 의도입니다.

그런데 울산시가 케이블카 사업이 난관에 봉착하자 이번에는 또 하나의 관광명소인 간월재 억새평원을 확대해 신불산 등산로 주변에 대규모 억새평원을 만들겠다는 계획에 착수했습니다. 이름 하여 ‘신불산 산림생태 복원사업’인데 내용은 억새 군락지 복원사업입니다.
 
● 울산시, "신불산 억새 복원사업, 관광 활성화 위해 꼭 필요"
간월재 억새 풍경
울산시는 지난해부터 올 6월까지 간월재에서 신불산 서봉~신불산 정상~ 신불재로 이어지는 등산로 주변에 억새 군락지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50년 전 2천만 제곱미터에 달하던 억새 군락지가 이제 80만 제곱미터로 줄어들어 억새자원 복원이 불가피 하다는 게 시의 입장입니다.

울산시는 이를 위해 산림청의 ‘숲가꾸기 사업’ 예산 10억여 원과 시비 4억여 원을 확보해 60만여 제곱미터 지역에 잡관목을 제거하고 억새 모종을 심고 있습니다. 울산시는 작업인부들에게 “덩굴류는 베고, 철쭉이나 신갈나무 등 관목류는 베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밝혔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 철쭉 군락지와 신갈나무 등 산림 마구잡이 벌목…생태복원 작업 맞나?
나무 배어낸 풍경
나무 배어낸 풍경
취재팀은 부산대 조경학과 홍석환 교수와 울산환경운동연합 최종득 집행위원장 등과 함께 신불산을 올라갔습니다. 먼저 지난해 신불재 억새 조성지부터 가봤습니다.

울창한 숲이 우거진 기존 산림지역과 억새 복원지가 눈에 확 띌 정도로 구분이 선명했습니다. 주 등산로를 따라 좌우로 조성된 억새 군락지의 왼쪽 약수터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가보니 소나무 등 일부 수종만 남겨져 있고, 진달래와 싸리나무 군락지의 상당 부분이 훼손돼 있었습니다. 4,5미터 높이의 팥배나무 등 덩치 큰 나무도 말라 죽어 있었습니다.
 
● 나무 벤 곳곳에 토양 움푹 패여 사막화 현상 진행 중
사막화 현상 진행 모습
사막화 현상 진행 모습
그 옆으로 나무가 잘려나간 곳의 토양이 빗물에 쓸려 내려가면서 경사면은 푹 패여 있었습니다. 큰 비가 오면 이런 사막화 현상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막화 현상은 나무가 잘린 곳곳에서 흔하게 발견됐습니다. 홍 석환 교수는 나무가 밀생할 때는 뿌리들이 서로 엉기면서 토양을 다 잡아주기 때문에 땅이 밀리지 않는데, 나무를 다 자르니까 뿌리가 약해지고 없어지면서 토양이 암반과 분리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자연스레 비가 많이 오거나 하면 땅이 아래로 밀릴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철쭉 베낸 모습
다시 신불재에서 신불산 정상 구간을 가보니 철쭉 군락지가 있었습니다. 이곳에도 곳곳에 4, 50년 된 철쭉이 베어져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유난히도 밑동이 큰 철쭉도 발견했는데 최 종득 집행위원장은 “최소 150년 이상 된 철쭉”이라고 밝혔습니다.
 
산 정상 아래쪽은 50년 이상 된 신갈나무와 진달래, 철쭉, 물푸레나무, 노린재나무, 싸리나무 등이 베어진 채  발견됐습니다.
전기톱 들고 내려가는 모습
취재 중에 작업인부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전기톱을 가지고 있었는데 작업을 중단하고 일찍 하산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왜 중단하고 가느냐는 물음에 “울산시에서 벌채를 중단하고 내려오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이 인부들이 작업했던 곳을 가보니 역시 50년 안팎된 싸리나무 군락지가 풀밭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이 일대 싸리나무를 모조리 잘라내고, 억새를 심을 계획인 겁니다. 홍 교수는 “해발 1,000M 이상의 고산지대에서 50년 안팎의 싸리나무 군락지를 본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습니다.
 
● 울산시, "작업인부가 한 짓. 3, 40 그루 정도만 베어냈다"
 
울산시 산림계를 찾아가 물어 봤습니다. 담당 공무원은 “작업자가 부주의로 시방서에도 없는 나무 벌채를 했다”고 작업인부 탓으로 돌렸습니다. 또 베어낸 나무는 “3, 40 그루에 불과하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취재팀과 환경단체가 본 현장에서는 최소한 수 천 그루 의 나무가 베어졌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현장에서 만난 작업 인부들도 “일부 철쭉이나 소나무 등 몇 종을 제외하고는 베어 내라고 지시받았다”고 밝혔습니다.
 
● 새로 심은 억새 모종은 곳곳에서 죽은 채 나뒹굴고 있어
억새 모종 죽은 모습
울산시는 나무를 베어 낸 곳에 억새 모종을 심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장 확인 결과 억새 모종은 곳곳에서 활착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뿌리가 뽑힌 채 죽어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토양이 빗물에 쓸려 패이고 아래로 쓸려 내려가면서 모종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겁니다.

홍 교수는 “이곳 고산지대에서 자연적으로 식생이 안정화되기 까지 50여 년의 시간이 걸렸는데, 인위적으로 억새를 새로 심어 군락지를 조성하는 게 가능할 지 의문”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또 “50여 년간 자연적으로 조성된 식생환경이 인위적으로 파괴돼 50년 전으로 후퇴하게 됐다”고 개탄 했습니다.
 
● 환경영향 평가 대상인가 아닌 가도 논란
신갈나무 베어낸 모습
철쭉 베어낸 모습
신불산 정상 지역은 국가 5대 광역 생태축의 하나인 낙동정맥의 마루금(핵심) 지역이 포함된 자연공원이자 자연보존지구입니다. 자연공원법상 자연공원 자연보존지구 내에 조경 사업을 할 경우 5,000 제곱미터 이상은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울산시 관계자는 “이 사업은 숲 가꾸기 사업의 일환으로 조림과 육림을 위한 사업이어서 환경 영향평가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해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환경단체는 “이 사업은 숲을 가꾸기 위한 사업이 아니라 산림을 훼손한 후 억새밭을 조성하는 생태 퇴행적 개발 사업으로 생태복원 사업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산림청과 낙동강유역환경청은 현장 방문 등 조사를 통해 위법 여부를 가려 책임 소재를 밝히겠다고 밝혔습니다. '생태복원 사업'이란 허울좋은 명분 아래 진행되고 있는 대규모 '생태개발 사업'이 아닌지 철저한 검증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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