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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옥시는 한국을 우습게 아나요?"

다국적 기업의 품격-옥시와 존슨앤드존슨의 경우

[취재파일] "옥시는 한국을 우습게 아나요?"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을 보면 다국적 기업의 수준이 이것밖에 안 되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핵심 업체인 옥시의 대응이 특히 빈축을 산다. 법인의 성격을 바꾸고 실험보고서를 은폐·조작한 것은 물론, 10년 전부터 꾸준히 피해 민원이 접수됐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홈페이지 글까지 삭제한 정황이 드러났지만 태평하기 짝이 없다. 영국 본사가 한국지사에 사건 은폐와 대응전략을 지시한 사실에 이르면 본사 대표가 나와 고개를 조아려도 모자랄 판인데, 사망사건 발생 5년 만에 나온 옥시의 ‘사과문’은 이메일 한 장이 고작이다.

옥시가 피해자를 제쳐두고, 홍보대행사를 통해 언론사에 보낸 이메일 제목은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하여 말씀드립니다’였다. 제목을 봐도 내용을 봐도 사과를 하겠다는 건지 보상을 하겠다는 건지 알 길이 없다. 50억 원을 추가 출연하겠다는 ‘보상책’ 역시 한국에서 단기간에 수백억 원의 로열티를 챙겨간 다국적기업의 결정이라기엔 뻔뻔한 수준이다. 소비자들이 옥시 불매 운동을 하는 게 무리가 아니다.

이런 유의 사건에서 흔히 비교되는 게 1982년 존슨앤드존슨의 ‘타이레놀 사건’이다. 당시 미국 시카고 주에서 판매된 존슨앤드존슨사의 타이레놀을 먹고 7명이 사망했다. 경찰 수사 결과 사망자들이 먹은 타이레놀엔 청산가리가 들어 있었고, 한 정신이상자가 주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생산 공정과 상관없는 외부인의 짓이고, 시카고에 한정된 사건이었지만 존슨앤드존슨은 소비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미국 전역에 풀린 타이레놀 3천1백만 병을 회수해 폐기했다. 재발 방지를 위한 새로운 포장법을 개발할 때까지 물건 판매를 전면 중단했고 제조과정을 언론에 낱낱이 공개했다.

이 과정에서 2억 4천만달러가 들었다. 큰 비용이 들었지만 존슨앤드존슨은 세계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조직적으로 증거를 인멸하다 검찰 수사망이 좁혀오자 달랑 이메일로 사과한 옥시와 비교된다.

선진국이라면 유독물질로 생활용품을 만들어 103명의 사망자를 내고도 이처럼 후안무치하게 대응하는 기업을 상상할 수 없다. 피해자 가족이 “옥시가 한국을 우습게 아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검찰은 이번 사건 처리에 국격이 걸렸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벌써부터 절차를 핑계 삼아 옥시 영국 본사 수사가 어렵다는 엄살을 피운다면 국민이 분노할 거란 걸 명심해야 한다. 이 기회에 악덕 기업에 철퇴를 내릴 수 있도록 징벌적손해배상제를 강화하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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