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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박원순 키드의 민망한 성적표…박 시장이 얻은 것은?

[취재파일] 박원순 키드의 민망한 성적표…박 시장이 얻은 것은?
박원순 서울시장에겐 결과를 지켜보기가 힘든 경선이었을 겁니다. 어제(21일) 진행된 더불어 민주당 김기식 의원과 천준호 후보간 서울 강북갑 선거구 경선 말입니다. 천준호 후보는 박원순 시장의 최측근 비서실장 출신입니다.

지난 2011년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장 선거에 나섰을 때부터 지금까지 박 시장을 계속 보좌해 온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박 시장을 등에 업고 자신이 희망했던 도봉을 선거구에 도전했지만, 경선조차 못하고 미끄러졌습니다. 천 후보가 경선조차 못하게 된 상황에 박 시장도 몹시 당황스러워했다고 합니다. 

박 시장은 공천에서 배제된 천 후보를 다른 지역에서라도 구제해 달라고 당 지도부에 여러 경로를 통해 요청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천 후보가 도봉을 선거구에서 탈락했을 때도, 박 시장 측근들은 천 후보에게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는 말을 계속 해왔습니다. 

물거품이 되나 싶었던 공천 막판 시점에, 천 실장은 극적으로 강북갑 선거구에 기회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더불어 민주당이 지정해 준 천 후보의 경선 상대가 하필이면 김기식 의원이었습니다. 김 의원이야말로 박 시장과는 20년을 훌쩍 넘긴 오랜 인연을 갖고 있는 사이입니다. 1990년대 참여연대 멤버로 오랜 기간동안 시민단체 활동을 함께 했습니다. 
이를 발판으로 김 의원은 현 19대 국회에 시민단체 몫의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돼 나름 의미있는 의정 생활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넓게 보면 김 의원도 이른바 '박원순 키드' 범위에 낄 수 있는 인물인셈이죠.  천 후보가 최근 몇 년간의 최측근 인사였다면, 김 의원은 고생했던 시절 가장 가까운 동지였습니다. 박 시장에게는 두 사람 모두 깨물면 아픈 손가락인 셈입니다. 

경선은 김기식 의원이 우세할 거라고 보여졌습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생뚱맞은 지역구인 건 마찬가지일테니, 아무래도 현역 의원이 인지도가 더 높을 거란 막연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부에선 천 후보가 차라리 양보하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만약 공천에서 두 번씩이나 물을 먹는다면 천 후보의 향후 정치적 행보에 영향을 줄 수 있고, 나아가 박 시장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천준호 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김 의원에 승리해서 더불어 민주당 강북갑 선거구 후보로 확정됐습니다. 이번 총선에 나선 '박원순 키드' 중에 서울 성북을에 전략공천된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에 이어 두번째 후보가 됐습니다.

천준호 후보의 경선 승리 소식을 듣고도 오늘 아침 박 시장은 크게 기뻐하는 내색은 없었다고 합니다. 경선상대였던 김 의원의 패배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일테죠.

반면 박 시장 측근들은 연신 다행이라는 말을 쏟아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박원순 키드'(물론 박 시장은 공개적으로 '박원순의 남자'는 없다고 말했지만)의 이번 총선 공천 성적표가 말 그대로 엉망이었기 때문입니다. 

임종석 전 정무부시장을 필두로 권오중 전 정무수석, 민병덕 변호사, 오성규 전 서울시설공단 이사장, 김민영 전 참여연대 사무처장 등이 경선에서 패했거나, 공천에서 배제됐습니다.

이런 '줄줄이 낙천'에도 불구하고 박원순 시장은 공식적으로는 "김종인 대표가 공천을 잘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한수진의 SBS전망대 3월 18일자) 하지만, 과연 박 시장의 속마음도 말처럼 그럴까요? 박 시장의 측근들에게 들은 바로는 더불어 민주당 공천 과정 내내 박 시장은 시종일관 소이부답(笑而不答)이었다고 합니다.

말은 없었지만, 그 심경은 미뤄 짐작 가능할 만 합니다. 이렇게 공천 결과에 대한 당황스러움과 실망감을 애써 감춘 박 시장과는 달리 박 시장 주변 사람들은 심경을 굳이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

더불어 민주당이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마음처럼 달라졌다는 불평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습니다. 선거 중립 의무가 있는 시장 신분임에도, 문-안-박 연대같은 당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고, 박 시장의 이름을 걸고 선거에 나설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기껏 사람 보내 놨더니 이게 무슨 꼴이냐는 겁니다.

지역 기반이 약한 예비후보들에게 터줏대감 후보들과 경선을 붙여놓으면 당연히 불리할 수 밖에 없는건데, 이런 상황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더란 겁니다. 전략공천을 기대한 후보조차도 줄줄이 낙천하는 모습에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눈을 씻고 봐도 공천 과정 어디에도 박 시장측 사람이라고 해서 배려해준 점이 부족했다는 게 측근들의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측근들 사이에선 이런 참담한 결과가 어느 정도 예상됐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이미 더불어 민주당은 문-안-박 연대의 그 시절이 아니라 김종인 대표가 전권을 휘두르고 있는 상황인 만큼, 박 시장의 존재감이 예전과는 같을 수 없었다는 겁니다. 
애초부터 박 시장이 더 적극적으로 뛰었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뒤늦은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박 시장 측근은 물론 출마 의사를 어느 정도 갖고 있는 서울시내 구청장들의 등을 떠밀어서라도 적극적으로 내보냈어야 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사실 지역 경쟁력으로 따지면 수 년 이상 지역을 다져온 구청장의 경쟁력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문재인 전 대표가 이미 가까운 구청장들에게 출마 자제를 당부한 상태였고, 구청장 부재로 인한 보궐선거 비용 수십억 원을 고스란히 해당 구청이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구청장 당사자들이 그 부담을 떨치기엔 쉽지 않다는 현실적이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번 공천 과정을 통해 당내 세력이 전무한 상황에서의 한계도 뼈저리게 절감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급변하는 선거판에서 당내 돌아가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들리는 소문만으로 상황을 대처하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당내 최고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충분한 의사를 전달할 기회를 얻는 것 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박 시장이 직접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할 수도 없는 입장이니까 말입니다. 당내에 소통을 담당할 수 있는 의원만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어느때보다 컸다는 얘기도 합니다.

어쨌든 20대 총선 공천 대진표는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혔습니다. 이제 아쉬워도, 후회해도 크게 달라질 게 없는 시점입니다. 이른바 박원순 키드가 받은 공천 성적표는 박 시장 본인의 생각은 어떨지 몰라도, 출마한 당사자들이나 측근들이 기대한 성적표에는 훨씬 모자라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박 시장이나 측근들이 이번 공천 과정에서 느낀 이런 저런 생각과 경험들은 앞으로 벌어질 정치 여정을 헤쳐가는데 훌륭한 교과서가 됐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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