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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기후변화…기생충 다시 불러오나

[취재파일] 기후변화…기생충 다시 불러오나
회충, 요충, 십이지장충, 머릿니, 벼룩, 빈대....50대 이상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기억이 생생한 이름이지만 요즘 청소년들에게는 거의 잊혀진, 아니 책에서나 볼 수 있는 단어가 됐다. 모두가 사람을 비롯한 개나 소, 돼지 같은 숙주(host)에 붙어 살아가는 기생충이다.

환경이 깨끗해지면서 위생 상태가 개선되고 구충제가 널리 보급되면서 회충이나 요충 같은 장내 기생충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환경이 깨끗하지 못하거나 구충제 보급이 제대로 안 되는 국가나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장내 기생충에 시달리고 있다.

고기나 생선을 날로 먹을 때 감염되는 기생충이나 머리나 발 등에 붙어사는 기생충 또한 여전히 건재하다. 가축이나 야생동물의 경우는 평생을 기생충과 함께 살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후변화로 기온이 올라가고 비가 많이 내리거나 아니면 가뭄이 지속될 경우 기생충의 수와 분포는 어떻게 달라질까? 기후변화가 지속될 경우 기생충의 부화나 기생충에 감염될 위험성에는 어떤 변화가 나타날까?

이탈리아와 미국, 영국 공동연구팀이 기후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스코틀랜드 초원에 사는 토끼의 기생충 감염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조사했다(Mignatti et al.,2016). 연구팀은 기온이 지속적으로 상승한 1977년부터 2002년까지 26년 동안 스코틀랜드 초원에 사는 토끼의 위나 소장에 기생하는 두 종류(TR: Trichostrongylus retortaeformis, GS: Graphidum strigosum)의 토양매개성 기생충 감염력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조사했다.

연구기간 동안 스코틀랜드 지역은 기후변화로 평균기온이 섭씨 1도 상승했고 상대습도는 3% 높아졌다. 연구결과 한 기생충(GS)의 경우 기온 상승과 함께 기생충의 감염력(force of infection)이 지속적으로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스코틀랜드 초원에 오래 산 토끼일수록 이 기생충에 많이 감염됐다는 뜻이다. 어린 토끼보다 기생충에 오래 노출된 나이 든 토끼일수록 체내에 기생충이 많이 축적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다른 기생충(TR)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감염력이 8월에 가장 커지고 겨울에 작아지는 계절변동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봐서 기온이 지속적으로 상승한 26년 동안 감염력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연구팀은 이 기생충의 경우 토끼의 면역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면역체계가 기생충을 공격하면서 기생충에 오랫동안 노출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감염력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면역체계가 기생충을 공격하지 않는 대신 기생충은 숙주에 별 피해를 주지 않기로 타협(?) 아닌 타협을 하고 숙주와 같이 살아가는 기생충도 있는 반면에 기생충이 체내로 들어올 경우 외부 물질로 인식해 면역체계가 기생충을 공격하는 경우도 있다.

두 번째(TR)가 이 경우로 면역체계가 기생충이 체내에 쌓이는 것을 막아냈다는 것이다. 다만 두 번째(TR) 기생충의 경우도 면역력이 떨어지는 어린 토끼에서 감염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기후변화가 지속될 경우 기생충의 종류와 수, 분포는 어떻게 달라질까? 감염력은 어떻게 달라질까? 물론 기온이 올라가는 정도, 숙주의 개체수와 분포, 또 기생충의 종류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숙주와 기생충과의 관계가 매우 복잡하고 아직 기온 상승을 비롯한 환경 변화가 숙주와 기생충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서는 불확실한 면이 있다. 네덜란드 연구팀은 생태계 대사이론(metabolic theory of ecology)을 이용해 기후변화가 숙주와 기생충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결과적으로 감염에 어떤 변화를 초래할 것인지 예측하는 실험을 했다(Goedknegt et al., 2015). 연구팀은 지구온난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북극 주변에 사는 순록에 기생하는 회충과 선충의 감염력이 기온 상승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실험을 했다.

현재 순록은 봄부터 가을까지 회충이나 선충에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계속해서 북극의 기온이 올라갈 경우 감염 기간이 둘로 갈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온 상승으로 봄이 일찍 시작되고 가을도 늦게까지 이어지면서 봄과 가을의 감염 가능 기간은 길어지는 반면에 뜨거운 여름철에는 순록이 회충이나 선충에 감염되지 않을 것으로 예측됐다. 기온이 크게 올라가면서 여름철에 폭염이 심해질 경우 회충과 선충이 생존할 수 없게 돼 감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기후변화로 기생충 감염 시기, 나아가 감염병의 발생 시기 또한 달라지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모든 기생충은 기후변화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기온이 낮은 지역에서 간신히 살아가던 기생충이라면 기온이 높아지면 크게 늘어날 수 있고, 반대로 기온이 높아 생존에 위협을 느끼던 기생충이라면 기온이 더 올라가면 사라질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기생충이 사는 지역이 지금보다 북쪽으로 더 크게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물론 기생충이 늘어난다고 곧바로 감염이 늘어나는 것만은 아니다. 숙주의 면역력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면역력이 있고 없음에 따라 나이 든 숙주가 집중적으로 기생충에 감염될 수도 있고 반대로 어린 숙주만 집중적으로 감염될 가능성도 있다.

기후변화로 기온이 얼마나 올라갈 것인지 예측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어떤 기생충이 더 크게 늘어날 것인지 아니면 줄어들 것인지, 감염병은 어느 지역으로 얼마나 확대될 것인지, 또 숙주는 특정 기생충에 면역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계절적으로 기생충에 많이 감염되는 시기나 나이별로는 어느 시기에 기생충에 감염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인지 등에 대한 연구와 대비가 필요해 보인다.

기후변화가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기생충을 다시 불러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온갖 기후변화와 숙주 면역체계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숙주와 함께 지구 생명체의 역사를 써온 기생충이 아닌가?

<참고문헌>

* Andrea Mignatti, Brian Boag, Isabella M. Cattadori, 2016: Host immunity shapes the impact of climate changes on the dynamics of parasite infection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doi:10.1073/pnas.1501193113

* M. Anouk Goedknegt, Nennifer E. Welsh, Jan Drent, David W. Thieltgs, 2015:  Climate change and parasite transmission: how temperature affects parasite infectivity via predation on infective stages. Ecosphere, 6(6):96, http://dx.doi.org/10.1890/ES15-00016.1   


(사진=게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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