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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위기의 한반도…추기경의 평화 호소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뻔한 승부 아니냐는 예상 때문에 긴장감이 덜하다는 의견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어떤 인물이 어느 당에 가는지부터 시작해서 누가 공천을 받고 누가 누락되는지, 누가 예비 경선 후보로 선택되는지, 그리고 앞으로 누가 누구와 대결해 최종 승자가 될지 등등 선거는 월드컵이나 올림픽에 못지 않은 흥미로운 구경거리다.

정치인들이 책상을 내려치고 핏대를 올리고 어깨를 부딪히고 때로는 “그 xx 죽여버려” 같은 막말이 오간다. 속으로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겉으로는 점잖은 행동과 미소를 잃지 않던 이들이 분칠하지 않은 맨 얼굴을 드러낸다. '저 사람도 별 수 없구만', '저 사람은 안 그럴 줄 알았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싸움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금도 밀실에서 이루어지고 있을 그들만의 힘겨루기와 흥정과 뒷거래는 보는 이들의 상상력을 배가시킨다. 이 역시 관전자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다. 선거는 내가 단순히 구경꾼이 아니라는 점에서 월드컵이나 올림픽과 구별된다. 유권자는 관중인 동시에 선수이기도 하다.
나의 한 표가 승부를 가르는 요인이 된다. 내가 이 선거 무대의 주연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을도 아니다. 분명히 지금은 유권자인 내가 갑이다. 정치인들이 을이다.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선량들을 제대로 뽑으려면 정치권이 어찌 돌아가는지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는 것은 국민의 의무이자 권리이기도 하니 정치 이야기, 선거 이야기 하는 것이 요즘처럼 재미도 있고 떳떳하고 명분이 있는 때도 많지 않다.

4년 만에 열린 떠들썩한 잔치판에 떡 하니 자리잡고 앉아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조금만 눈을 옆으로 돌려보면 지금 이 잔치판을 마냥 즐길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주부터 한미 연합 키리졸브 군사 훈련과 독수리 훈련이 시작됐다. 연례적으로 실시되는 훈련이지만 그 내용을 뜯어보면 심상치 않다. 동원된 장비와 인력 면에서 사상 최대인 것은 물론, 북한에 대한 선제 공격과 김정은 비서를 비롯한 북한 최고지도부에 대한 일명 '참수 작전'까지 포함되어 있다. 훈련 규모보다 훈련 내용이 더 의미심장하다.
북한은 불바다, 총공세, 잿더미란 표현도 모자라 이제는 공공연히 선제 핵공격까지 언급하며 일전 불사를 공언하고 있다. 우리는 실감하지 못하고 있지만 밖에서 보면 한반도에는 이미 포연이 자욱하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지금 한반도는 칼을 뽑고 활시위를 당겨놓은 상황으로 화약냄새가 진동하고 있다"고 표현했을 정도다.

계속되는 위기는 위기가 아니다. 한반도에서 위기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북한은 핵이며 미사일을 애들 공깃돌을 갖고 놀 듯 팡팡 쏴 올리고 터트린다. 그럴 때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을 틀어막고 누르고 조이며 군사적 수단을 제외한 모든 제재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이러는 과정에 한반도의 긴장을 누그러뜨릴 최소한의 안전 장치도 사라졌다. 남북간에는 비상시에 쓸 수 있는 직통 전화 한 대도 없는 상태다. 무슨 일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한반도의 현 상황이 부풀대로 부푼 풍선 같아서 외부에서의 작은 충격으로든 아니면 풍선의 내부 압력으로든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데 우리 국민 다수는 오불관언이다.

'설마 터지겠어?'하는 근거가 뚜렷하지 않은 낙관론부터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잖아?' 같은 체념형까지 형태는 다소 다를지 모르지만 현재의 정치, 군사적 위기 국면을 걱정하고 타개 방안을 논하는 목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의원들 뽑고 대통령 선출하는 일이라면 그래도 내 한 표의 힘이라도 있는데 안보에 관련된 일에는 말 그대로 속수무책이다. 그러니 이젠 체념이다. 선거 이야기에는 목소리를 높이지만 한반도 위기를 말하면 내 일 아니라는 듯, 뭘 어쩌라는 듯 고개를 외로 꼰다.

그래서 그럴까? 이럴 때면 마땅히 들릴 법한 한반도 평화론은 들리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지금의 긴장을 완화하고 꽉 막힌 남북간 대화 창구를 회복할지 말하지 않는다. 선거 국면에서 누구 좋으라고 안보 위기를 조장하는 것이냐는 눈흘김이 있을 수 있고, 이 판국에 무슨 평화 타령이냐며 당신 어느 편이냐고 닦아세우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데 말이다.

그 많은 총선 후보자들은 물론이고 명색 나라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조차도 관심은 온통 선거뿐이다. 자신의 정치 생명이 한 달 안에 결판날 상황이니 그들의 처지를 이해 못할 바도 아니나 작은 정치에 매몰돼 큰 정치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다. 과문한 탓이겠으나 평화와 연대를 말하던 시민단체들의 목소리도 이번 위기 국면에서는 잘 들리지 않는다.
염수정 추기경
그런데 최근 가톨릭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이 신자들과 사제들에게 오는 23일부터 부활절까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기도를 매일 드리자고 제안했다. 지금 한반도가 그 어느 때보다 위기라며 신자들의 기도가 가장 절실하게 필요할 때라는 게 추기경의 인식이다.

이런 움직임이 더 번지고 목소리를 더 크게 내야 하지 않을까. 기도의 힘을 믿는 이들은 기도로, 행동의 힘을 믿는 이들은 행동으로 다 같이 나설 때다. 우리의 운명인데 미국과 중국만 쳐다 볼 수도, 정부에만 맡겨둘 수도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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