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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감나무 가지 잘라서 해고?…전직 국회의원 운전기사에 폭언

[취재파일] 감나무 가지 잘라서 해고?…전직 국회의원 운전기사에 폭언
● "허락 없이 감나무 가지 잘랐다"…30여년 만에 ‘씁쓸한’ 퇴직

올해 일흔 살인 김용주 씨는 지난 1983년 5월부터 전직 국회의원 김모 씨의 운전기사로 일했습니다. 그런데 운전기사 김 씨는 지난해 11월, 30년 넘게 일했던 직장으로부터 갑작스럽게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였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감나무였습니다. 지난 가을 김 전 의원은 이름난 풍수지리학자를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집을 둘러보던 풍수지리학자는 앞마당에 있는 감나무를 보더니 “집보다 감나무가 높아 집에 우환이 생길 수 있다. 감나무 가지를 자르라”고 김 전 의원에게 말했습니다. 운전기사 김 씨는 김 전 의원이 그 자리에서 풍수지리학자의 의견에 동의했기 때문에 감나무를 잘랐다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됐습니다.

● 폭언의 시작…아내에게까지 이어져

운전기사 김 씨는 김 전 의원이 전화를 걸어 폭언과 함께 해고를 통보했다고 말했습니다. 허락 없이 감나무를 잘랐다는 것이 해고의 이유였다고 김 씨는 설명합니다. 집에 전화를 걸어 김 씨의 아내에게도 험한 말을 했고, 그 충격으로 아내는 병원 진료까지 받았습니다. 얼마 뒤 비슷한 내용의 전화가 다시 걸려왔고, 김 씨는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사직서를 내러 회사에 찾아갔지만, 김 전 의원을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김 씨는 이 사실을 다른 가족들에게 숨겼습니다. 30년 동안 일한 직장에서 허무하게 잘렸다는 ‘창피함’이 그의 입을 닫게 했습니다. 그리고 새벽 일찍 자전거를 가지고 한강에 나가 늦은 오후까지 자전거 패달을 밟으며 복잡한 마음을 달래려 했습니다. 하지만 가슴에 진 응어리는 풀리지 않았습니다.

● 통장으로 들어온 퇴직금은 ‘1260만 원’

과거 대부분의 운전기사가 그랬듯 김 씨도 20여년 넘게 사적 고용관계에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 고용계약서나 고용을 증명할 만한 공식적인 서류는 없다는 것이죠. 이후 비정규직과 정규직 계약을 넘나들었습니다. 김 씨가 퇴직금 명목으로 입금 받은 돈은 정규직으로 6년 가까이 일했던 액수에 해당하는 ‘1260만원’. 가족들은 김 씨의 손을 이끌어 노동청으로 향했습니다. 해고 과정이 정당했는지, 퇴직금은 제대로 지급된 것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은 생각에서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 씨는 단 한 번도 김 전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퇴직금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습니다. 노동청은 고용주인 김 전 의원에게 이 사실을 통보했고, 다시 지옥이 시작됐습니다.
● "유치원 때부터 봐 왔는데"…전직 의원의 아들 욕설과 폭언

40대 초반인 김 전 의원의 아들이 김 씨에게 전화를 건 것은 2월 1일이었습니다. 노동청에 다녀온 뒤 열흘 정도가 지났을 때입니다. 김 씨는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합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생전 들어보지 못한 욕설이 쏟아졌습니다. 여러 이유로 직접 공개할 수는 없지만, 너무 심한 욕설을 제외하고 간단히 소개해 보면 “네가 이렇게 은혜를 이렇게 독으로 갚아? 네가 인간이야? 어디 길거리에서 옷 한번 제대로 안 입고 다닌 XX가 회장님 만나서 이렇게 출세하면 된 것이지 더 이상 뭘 바라.” 정도였습니다. 김 씨는 6살 때부터 봐왔던 김 전 의원에 아들이 자신에게 욕설을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곧 김 전 의원도 전화를 걸어, 폭언을 이어갔다고 김 씨는 말했습니다.

● “30년 동안 써줬으면 됐지”

취재진은 김 전 의원을 만나기 위해 나섰습니다. 김 전 의원은 서울 도심에만 5채의 빌딩을 가지고 있는 수천억 원대의 자산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빌딩 꼭대기 층에서 취재진을 맞이한 것은 김 씨에게 전화로 욕설을 내뱉은 김 전 의원의 아들이었습니다. 곧 김 의원도 함께 자리했습니다. 김 의원 측은 정년이 다 됐기 때문에 정당한 해고였다고 주장했습니다. 본인이 그만두기를 원했다며 김 씨가 자필로 작성한 사직서를 꺼내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김 전 의원은 “33년 써 먹었어요. 써줬어요”라며 분을 참지 못했습니다. 욕설을 한 적이 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그런 적 없다”고 답했습니다.

● “수고했다” 말 한마디만 했어도

인터뷰 말미에 김 씨는 “30여 년 동안 힘들었지만, 좋은 일도 많았다”며 취재기자를 방으로 이끌었습니다. 방 안에는 걸려있는 가족사진 사이에 김 전 의원과 함께 국회 안에서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붙어 있었습니다. 웃는 얼굴로 서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을 나서는 기자에게 김 씨는 “회장님이 그동안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만 했어도 이렇게 카메라 앞에 서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씨가 바랐던 것은 퇴직금도 다른 일자리도 아니었습니다. 인생의 절반을 한 직장에서 보낸 직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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