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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할머니들한테 물어는 봤어야지"

한일 위안부 협상 타결 그 후 - 2016년 1월2일(土) 소녀상 앞 스케치

[취재파일] "할머니들한테 물어는 봤어야지"
새해 이튿날인 지난 토요일(2일), 주한 일본 대사관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는 시위가 이어졌다. 정부가 한일 위안부 협상이 타결됐다고 발표한 지 엿새째, 쌀쌀한 날씨에도 정오 무렵부터 대학생 백여 명이 모여들었다.

오후 1시가 되자 노래와 마임 등 문화 공연이 시작됐다. 2시 부터는 지난 12월 31일 일본 대사관 앞 시위 대학생들 연행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이 이어졌다. 오후 2시 반쯤 걸개를 걸기 위한 철제 구조물 설치를 놓고 대학생들과 경찰 사이에 작은 충돌이 있었지만 행사는 전체적으로는 조용했고, 평화로웠다.

노래와 구호, 사이사이 작은 강연이 이어졌다. 수요 집회에 비해 규모는 작았지만 조금씩 참가자가 늘어났고, 지나던 시민들도 하나 둘 모여들어 소녀상 앞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올해 아흔 살인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도 이날 소녀상 앞을 찾았다. 김 할머니는 지난 1993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인권위원회에 위안부 피해자로서는 처음으로 참석해 일본군의 만행을 증언했던 분이다.

앞서 김 할머니는 기습시위 대학생들이 연행된 용산경찰서를 방문하고자 했지만 주변의 만류로 계획을 바꿨다. (대학생들은 이날 오전 11시 경찰서를 나왔다) 한동안 말없이 한켠에 앉아 시위를 지켜보던 할머니가 소녀상 옆에 서서 마이크를 들었다. (김 할머니의 말을 가급적 그대로 옮겼다)

“고생이 많습니다. 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모여서 고생하는 것을 보니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빨리 해결이 나야 할 텐데 태산 중에 또 태산이 하나 돌아왔네요.”
 한일 두 나라 정부 간 협상이 타결됐지만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의 첫 마디는 넘어야 할 태산이 하나 더 생겼다는 말이었다. 김 할머니는 지난 1993년 이후 20여 년간 세계 곳곳을 돌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여권(女權) 신장 운동에 힘쓰며 숱한 태산을 넘어왔다.

“우리는 협상을 못 합니다. 두 정부끼리 어떤 일을 했는지 일이 시작되기 전에 할머니들하고 상의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상의를 했으면 이런 불상사가 안 일어나지요. (중략) 할머니들한테는 말 한 마디 없이... 할머니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데 자기네들끼리 타결을 했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 “아베 본인이 속에서 우러나는 사죄를 해야 한다”

김 할머니는 또 아베 일본 총리의 ‘속에서 우러나는 사죄’와 법적인 책임을 요구했다. 할머니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어야” 해결이 나는 것이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소녀상 이전에 반대한다는 의견도 다시 한 번 분명히 했다.

 “대사관 정문 앞에 세웠습니까? 이런 비극이 있었다는 표시로써 소녀상을 길 건너에 세웠는데, 이 길이 평화의 길이라고 할 때, 대사가 출근할 때 소녀 팔을 잡고 한 번씩 두드려줘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소녀가 자기들보고 옷을 달라고 하나, 밥을 달라고 하나”

소녀상을 철거하겠다고 손만 댔다가는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겠다”고 말을 맺은 김 할머니는 시위로 연행됐던 대학생을 꼭 안아주고 자리를 떴다.

이날 김 할머니의 말을 정리하면 ‘일본 정부의 진심어린 사죄’와 ‘소녀상 이전 반대’로 요약됐다. 한일 위안부 협상은 지난주 타결됐는데 당사자인 할머니의 입장은 변한 게 없었다. 김 할머니의 표현을 다시 빌자면 그저 "태산이 하나 더 돌아왔다.”
● 2016년 1월 현재 46명, 평균 연령 89세

현재 국내에 생존해 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모두 46명이다. 평균 연령은 89세에 달한다. 매번 나오는 얘기긴 하지만, 사실 위안부 문제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팩트’는 없다. 이날 김 할머니와 함께 소녀상 앞을 찾기로 했던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는 췌장염과 고열로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다.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는 “노환이라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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