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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파리 특파원의 테러 취재기…그들이 침몰하지 않는 이유 ①

[월드리포트] 파리 특파원의 테러 취재기…그들이 침몰하지 않는 이유 ①
11월 13일 금요일 밤. 기자는 파리의 한 카페에서 ‘불금’을 즐기고 있었다. 맥주 한 잔을 시켜놓고 프랑스와 독일 국가대표 축구 중계를 보고 있었다. 후반전이었다. 휴대전화 알림음이 들뜬 분위기를 가라 앉혔다. 파리에서 몇 명이 죽었다는 짧은 뉴스 알림이었다.

지금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1보는 서너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프랑스에서 가끔 나는 총기사고인가 싶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았다. 뉴스는 점차 무겁고 겁나는 소식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취재는 그렇게 시작됐다.

사무실에 들러 카메라를 챙겨야 했다. 도로에 나와보니 돌아다니는 택시가 없었다. 평소와 다르다. 지하철을 탔는데 시민들 표정이 좋지 않았다. 장비를 갖춰 인질이 잡혀 있다는 바타클랑 극장으로 향했다. 현장 주변 길은 다 막혔다. 어두운 밤에 총을 든 군인들이 보였다. 경찰도 수없이 깔려 있었다.

경찰은 현장 진입을 막았다. 기자증을 보여주고 가장 바깥쪽 저지선 하나를 겨우 통과했다. 폴리스라인을 하나 둘 지나 현장에 최대한 다가갔다. 프랑스 기자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다가서도 육안으로 현장을 볼 수 없었다.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렸다. 테러 진압이 시작됐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월 유대인 식품점 인질극 때도 총성이 진압의 신호였으니까. 10개월 만에 파리에서 또 테러에 서 있게 됐다. 총성과 동시에 기자가 있던 곳으로 수많은 구급차가 몰려왔다.
도로를 꽉 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상자가 실려 나왔다. 시신도 들려 나왔다. 지금도 그 시신이 테러범인지 희생자인지 모른다. 구급대원은 시신을 천으로 덮고 바로 사라졌다. 부상자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병원으로 바로 호송하기 조차 힘들어 보였다. 근처 일식당의 불이 켜지고 임시 수용소로 사용됐다.

응급 치료를 하고 부상 정도를 파악하는 것 같았다. 심폐소생술을 하는 모습이 유리창 너머로 보였다. 간간이 부축을 받아 걸어 나오는 부상자도 있다.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 생과 사를 오간 사람들이니 당연했다.

주변 아파트 창문은 모두 닫혔다. 문 틈으로 TV 불빛이 새나왔다. 기자의 휴대전화로 들어오는 뉴스 알림에서 사망자 숫자는 계속 늘어났다. 집에서 숨 죽이며 생중계를 보고 있는 이들도 사망자 수가 늘어날수록 공포가 증폭됐을 것이다.

근처 바, 레스토랑, 상점은 모두 불이 꺼졌다. 길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주민들은 “신이시여!”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욕설도 했다. 얼굴은 창백해지고, 서로 껴안기도 했다. 여러 나라 취재진도 행동이 일순 느려졌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취로 감각은 사라지고 눈만 멍하니 뜨고 있는 것 같았다. 경찰의 고함, 구급대원의 외침,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만이 절망에 잠긴 파리의 밤을 애써 깨웠다.
총소리가 난지 대략 1시간 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갑자기 현장에 나타났다. 긴장감이 다시 돌았다. 취재진과 주민들이 도로에 뒤엉켜 있는데도, 별다른 예고 없이 대통령이 불쑥 나타났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어딘가를 방문할 때 얼마나 많은 사전 조치가 필요한지는 겪어본 사람은 다 안다.

올랑드 대통령은 총리, 내무장관, 경호원 몇 명과 함께 경찰 저지선 안으로 걸어서 들어갔다. 경호원들이 총을 감추지 않고 밖으로 꺼내 든 모습이 평소와 달랐을 뿐이다. 학살이 벌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근처에 테러범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등장은 의외였다.

파리 테러의 총책인 아바우드가 대통령이 나타나기 직전까지 그 근처에 있었다고 나중에 프랑스 검찰이 발표했다. 위험을 안고 대통령이 현장에 나타난 것이다. 대통령의 출현은 테러에 맞선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었을 것이다. 해석은 각자의 몫이다.

국가가 위기를 맞았을 때 정치 지도자가 말이 아닌 행동으로 현장을 지휘하는 용기를 보여줄 수 있다면 그런 계산은 언제든 또 보고 싶다.  

(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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